아버지는 한마디로 법 없이도 사실 분이었다. 중학교 졸업 학력이었지만 필체가 좋으셨다. 아버지의 펜글씨를 보고 있자면 ‘아, 나는 왜 아버지 필체를 닮지 못했나!’ 안타까워했다. 필체를 빼고 나는 아버지를 빼다 박았다고 들었다. 아버지가 마실 나갈 때 따라나선 나를 본 동네 어르신들이 웃으며 말했다. “아이고 저 놈 보소. 뒷짐 지고 걷는 것도 지 애비를 닮았네.” 나는 그 말이 싫지 않았다. 아버지는 장흥에서 양복 가봉하는 일을 하다가 목포로 나가서 택시회사 경리를 하셨다. 몇 년 후 우리 식구들도 전부 목포로 이사했다. 아버지는 걸핏하면 새로 산 옷을 가난한 동료 택시기사들에게 벗어주고 들어오셨다. 월급봉투를 제대로 채워 들어오시는 경우가 없었다. 그런 아버지를 어머니는 타박했지만 아버지는 ‘허허’ 거리고 그뿐이었다. 아버지는 노래를 잘 하셨다. 요즘 유행하는 트로트 말이다. 한밤에 나는 이불속에서 동네 어귀에서부터 들려오는 아버지의 노래 소리를 들었다. 아버지의 손에는 빵 봉투가 들려있었다. 문제는 술이었다. 아버지는 술이 아무리 취하셔도 자전거를 타고 오셨다. 어쩔 때는 퇴근하는 택시기사님들이 집에 내려주고 가시기도 했다. 어머니의 ‘아이고 내 팔자야
정(情)이란 무엇인가? 인간의 본성 중 하나로 오랫동안 지내오면서 생기는 사랑하는 마음이나 친근한 마음, 느끼어 일어나는 마음으로, 심리학에서는 마음을 이루는 두 가지 중 이지적(理智的)인 요소에 대비되는 감동적인 요소를 말하며, 불가에서는 혼탁한 망념(妄念)으로 본다. 맹자는 ‘성(性)은 마음의 이치요, 정(情)은 마음의 쓰임이다’라고 말했는데 ‘잔잔한 마음에 무언가 움직임이 시작되면 그것이 곧 정’이라는 말이다. 미국에 ‘사랑’이 있다면 ‘정’은 한국적인 정서로, 친밀한 사람들 사이의 따뜻한 감정을 의미한다. 끈끈한 정이란 아껴주고, 함께 있으면 편하고, 오랜만에 만나면 반갑고, 잘못을 이해해주고, 흉허물 없이 굴 수 있는 마음이다. 어느 광고 카피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처럼 그런 마음이기도하다. 사자성어 한정담원(閑情淡遠)은 ‘큰 정은 영원하고 담백하다’는 말이다. 인간의 정이란, 주고받음을 떠나서 사귐의 오램이나 짧음에 상관없이 서로 만나 함께 호흡하다 정이 들면서 더불어 고락도 나누고 기다리고, 또한 반기기도 한다. 기쁘면 기쁜 대로 슬프면 슬픈 대로,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또한 아쉬우면 아쉬운 대로 그렇게 소담하게 살다가 미련이…
“수수료가 비싸도....울며 겨자먹기로 배달앱에 입점할 수 밖에 없어요.”(식당주인) 코로나사태가 장기화되면서 재택근무가 늘고, 사회적 거리두기로 사무실이나 집에서 음식을 시키는 경우가 일상화됐다. 그러다보니 스마트폰을 이용한 ‘배달앱’ 주문이 점차 대세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음식점이나 상가들은 코로나 공황속에 배달앱이 그나마 희망의 끈이라 할 수 있다. 문제는 배달앱 수수료다. 가게 주인들은 배달앱 등록료와 광고료, 배달료 등으로 보통 3~15%의 높은 수수료를 내야한다. 매출도 줄었는데 배달앱 수수료까지 부담해야 한다. 코로나사태 이전 같으면 음식점은 주문을 직접 받은 뒤 배달 수수료만 내면 된다. 굳이 말한다면 음식점이 ‘갑’이고 배달은 ‘을’이다. 그러나 코로나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음식주문과 배달이 공인중개사처럼 배달앱(플랫폼)을 통해서 이뤄진다. ‘갑’이 배달앱이고 식당 주인은 하청을 받는 ‘을’의 위치로 바뀐다. 음식점의 가격이나 맛도 중요하지만 배달앱이라는 플랫폼에 이름을 올리고, 그것도 노출(광고)이 잘되느냐 하는 것이 더 중요해졌다. 그러니 배달앱이 갑이 될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이것이 끝이 아니다. 4차 산업혁명이 고도화되면 궁극적으로 어
불경의 핵심 경전 중 하나인 금강경은 초기 대승 경전의 대표적 경전으로 공 사상(空 思想)의 창고라고 할 만큼 불교사상의 근본 사조를 이루고 있다. 금강경의 한역본(漢譯本)은 여러 종류가 있으나 대표적인 금강경으로는 구마라습(鳩摩羅什)이 서기 402년에 산스크리트어의 경전을 번역한 ‘금강바라밀다경(金剛般若波羅密經)’이 있다. 이는 금강경 중에 가장 먼저 번역되어 나온 경전이기도 하지만, 구마라습의 번역문장이 매우 유려하기 때문에 많이 독송 되어 왔다. 금강경은 부처님과 제자 수보리(須菩提)의 문답형식으로 되어 있으며 부처님은 수보리를 통하여 사물의 실상을 바르게 알고 집착을 끊으라고 설법하셨는데 이 말은 중생으로 하여금 삶에 대한 의욕을 상실하도록 한 것이 아니라, 집착이라는 굴레를 벗어나 더 자유롭게 살아가라는 적극적인 삶의 방향을 제시한 가르침이다. “여시아문(如是我聞: 내가 이와같이 들었다)”으로 시작하여 수보리는 부처님께 “세존이시여, 최고의 진리를 배우고 닦으려는 마음을 낸 선남선녀는 마음 자세가 어떠해야 하며, 뜻대로 되지 않을 때는 어떻게 마음을 다스려야 합니까”라고 질문한다. 이렇게 주요한 가르침은 수보리의 질문과 부처님의 대답으로 엮어지고 있
승진하면 대부분 부서를 이동하여 새로운 마음으로 일을 하게 되고 승진은 아니지만 발전적인 자리바꿈도 당사자에게는 큰 기쁨이기에 동료들이 새로온 직원을 포함하는 송·환영회를 연다. 식사하기 전에 기념품 전달을 하기도 하는데 꽃다발을 주고 Y-셔츠, 벨트, 지갑, 상품권을 전달한다. 현직에 있을 때, 부서직원이 부서를 떠나면 복사지 6장을 연결해 붙인 장문의 소개글을 지루할 정도로 읽었고, 그 두루마리가 나중에는 술잔을 올리는 쟁반이 되기도 했다. 송별회는 함께 근무한 정을 담아 그간의 노고를 자화자찬하는 기회가 되기도 하고 새로운 부서에 가게되는 기대감을 마음껏 발산하는 모임이기도 했다. 아마도 기념품은 막내 후배가 챙겨서 다음날 새로운 부서로 이동할 때 이른바 후행 단원들이 함께 들고 가서 다시한번 전했던 기억도 있다. 이처럼 부서를 이동하는 이에게 함께한 마음을 담아주는 기념품에 대한 파격적인 아이디어를 냈다. 물론 1급 공무원 상사이니 이런저런 고민을 한 바 있다. 그래도 도에서 근무하다가 중앙으로 영전하는 분이니 의미있는 기념품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특히 함께 매주 간부회의를 열고 도정을 함께 고민하고 검토했던 국장들의 주머니돈을 모아서 기념품을…
여름 한가운데를 달리던 무더운 날씨가 백로를 앞두고 선선해졌다. 긴 장마와 태풍의 습하던 날씨도 이젠 상쾌해질 때가 왔다. 어느새 9월이다. 그러고 보니 한여름 나무에서 요란하게 울어대던 매미 울음소리가 많이 잦아들었다. 입추가 지나고 한동안 매미는 더 정열적으로 울어댄다. 빨리 짝을 만나 이승에서의 사랑을 나누고 떠나야 하기 때문이다. 녹음이 짙은 나무에는 여기저기 매미 껍질이 붙어있다. 꿈꾸던 우화를 마친 매미의 남은 흔적이다. 우화를 마친 매미의 빈 껍질을 보며 매미의 일생 중 한 과정이겠지만, 내 삶의 흔적도 이렇게 한 부분으로 남겨질 것이라는 생각에 잠시 젖어본다. 며칠 전 우리 집 아파트 창문 방충망에 매미가 날아왔다. 방충망에 붙어서 꼼짝을 하지 않는다. 어떻게 30층 높은 아파트에까지 날아왔을까? 호기심이 들어 이리저리 살피며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는 매미 울음소리를 기다렸다. 그런데 이 매미는 암컷인 벙어리 매미인 듯 울지 않았다. 하루 반나절을 우리 집 창문에 붙어있다가 어느결에 날아가 버렸다. 어제는 사마귀 한 마리가 창문 방충망에 거꾸로 매달려 있었다. 이 높은 곳까지 어떻게 날아왔나 신기해서 자꾸만 들여다보았다. 그 사마귀도 하루 지나
2005년 8년만에 국내 개인전을 하면서 작가노트에 이렇게 썼다. “黑-black project는 35cm☓50cm의 비단에 신라시대 서수형 토기의 용의 모습을 인간으로 상징하는 의미를 부여해 실크 프린팅하여 그 형태가 사라질때까지 흑색 염색물감으로 수천번의 붓칠로 그렸다. 8년동안 일년에 한번 수원화성에 설치미술을 하는 것을 빼고는 거의 매일 그림을 그리며 살아온 세월이고 지역의 한계를 넘어 세계를 향한 꿈을 키워 온 세월이다. 깊이 있는 사고를 섬세한 감수성과 정확하고 세련된 언어로 그림을 풀고자 했던 그간의 노력들은 그리는 것이 주는 순수한 기쁨과 성취감을 얻었다. 또한 어떠한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나만의 일관된 인생관과 세계관을 갖추게 해주고, 이는 예술관으로 확립되었다. 타협하지 않은 나만의 그림언어로 획득한 자유는 어느 공간에 있든지 세상을 파악하고, 견디고, 인간과 삶을 사랑하게 만든 나의 가장 큰 힘이 되어준 작품이다.” 1998년 경기문화재단 설립 최초로 한국흑색 논문을 쓰는 것을 지원을 받아 일본 쿄토로 향했다. 1997년부터 한국전통 흑색을 염색물감을 혼합하여 그림을 그리면서 한국전통 흑색과 색명 발굴과 그 색을 고서에 의거 하여 재현
“신청인이 2017년 벌금형 등 판결을 선고받은 사실을 인정할 수 있는데, 신청인 개명 전력과 범행 전과·개명신청 경위 등 제반 사정을 종합하면 개명을 허가할 만한 타당한 이유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 이미 2차례 개명을 한데다 벌금형 전력이 있는 사람이 또 개명을 신청하자 부산가정법원이 지난해 6월 이를 불허(항소심 기각)한 판결문이다. 보수야당인 미래통합당이 지난 4·15총선을 2개월여 앞두고 개명한지 반년만에 ‘국민의힘’으로 다시 간판을 달았다. 1987년 개헌 이후 3당합당으로 태어난 민주자유당(1990년)을 시작으로 보수정당은 신한국당(1995년)-한나라당(1997년)-새누리당(2012년)-자유한국당(2017년)-미래통합당(2020년)까지 단명(短名)의 연속이었다.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당명 역사도 큰 차이가 없다. 정당정치가 오래된 미국 민주당(1828년~)과 공화당(1854년~), 영국 노동당(1900년~)과 보수당(1834년~), 독일 기민당(1945년~)과 사민당(1863년~) 등은 200~70여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과거 ‘3김’(김영삼 김대중 김종필)시대처럼 인물 중심으로 창당·운영되거나, 선거를 앞두고 이합집산 등 임시방편의 실리로…
이름에 돼지가 들어가지만 몸 길이 30센치 정도의 쥐목에 속하는 설치류다. 쥐와 함께 의료 실험체로도 많이 쓰이는데, 최근 코로나19 치료제와 백신 개발을 위해 많은 희생을 하고 있다. 애도를 표한다. 갑자기 웬 기니피그 얘기를 꺼내는지 의아해 할 것 같다. 풀어보자. 문재인 정부가 부동산 시장 안정화를 위해 내놓은 정책은 무려 20여차례가 넘었다. 역대 이런 정권이 있었을까? 특히 지난 6·17 부동산 대책은 고가주택 보유자와 실거주 1주택자, 무주택자 등 모두로부터 만족할 만한 평가를 받지 못했다. 오히려 '사회주의 국가'라는 비난까지 듣고 있다. 작금의 모습은 일단 해보고 안되면 다른 것으로 해보자는 식이다. 마치 기니피그에게 이것저것 바이러스와 치료제를 주입해 보고 가장 효과적인 약품을 찾는 것과 흡사하다. 그런데 국민들은 기니피그가 아니다. 실험실에서 최적의 치료제나 백신을 찾는 실험체가 아니란 것이다. 수많은 부동산 전문가들과 정책 전문가들의 의견을 수용해서 정책을 결정한다면, 국민들이 이처럼 정부의 '무능함'을 한탄하지는 않을 것이다. 불도저식 정책 밀어붙이기가 불러온 폐해다. 이런 비난을 알아차린듯 정부는 시각을 코로나19로 돌렸다. 꺼질듯 했
나는 어릴 때부터 약골로 살아왔다. 어디가 크게 아픈 것도 아닌데 심심하면 감기 고뿔이 찾아왔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하는 일이라곤 컴퓨터 앞에 앉아서 글을 쓰는 일 뿐이니 병이 안 올 리가 없다. 허리가 아프더니 어깨도 아프다. 몸이 아프면 마음도 아픈 법이다. 시간이 가면 해결되는 일인데도 마음은 늘 초조하고 불안하다. 코로나 19로 인하여 외출을 자제하면서 신경이 예민해졌다. 작은 일에도 짜증이 난다. 그냥 지나가 갈 일도 예사롭게 느껴지지 않는다. 이러다 죽을지도 몰라, 덜컥 겁이 날 때도 있다. 때로는 하늘이 무너질까, 땅이 꺼질까 괜한 걱정도 한다. 잠시 주춤한듯하더니 인터넷이나 텔레비전만 열면 질병 소리다. 핸드폰은 또 어떻고. 종일 삐삐거리며 귀찮게 울려 오는 건 질병 안전 안내 문자뿐이니, 사람마다 마스크를 쓰고 거리 두기를 하며 산다. 종일 집안에만 갇혀 사니 멀쩡한 사람도 병이 들 지경이다.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 하나를 잡지 못하고 아비규환이다. 오늘도 사람들은 코로나 19의 공포에 잠겨 있다. 감염을 막기 위해 직장인도 재택근무를 한다. 소위 언컨텍트 문화에 젖어 산다. 그것도 몇 달째이다. 모두가 바깥에 나가길 바란다. 사람을 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