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사람들은 똑같이 자연의 혜택을 누릴 권리와 존중받을 권리를 가지고 있다. 오늘날 기독교는 너무 왜곡되어 있고 주요 가르침이 전혀 실천되지 않고 있다. 그건 모든 사람은 하느님의 자녀이자 형제자매이고 각각의 생명은 신성불가침하다는 가르침이다. 진정한 평등은 신분 제도와 칭호와 특권의 폐지를 요구할 뿐만 아니라, 불평등을 낳는 최대의 무기인 폭력의 근절을 요구한다. 평등은 사람들이 생각하고 있듯이 사회적인 수단에 의해서만 실현될 수 없으며, 신과 인간에 대한 사랑에 의해서만 실현된다. 이 신과 인간에 대한 사랑은 정치적인 수단에 의해서가 아니라 참된 종교적인 가르침에 의해서만 이루어진다. 남들보다 강하고 똑똑한 사람들이 반드시 있기 마련이므로, 평등 같은 건 어차피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이 보다 강하고 영리하다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사람들의 평등한 권리가 더욱 필요하다고 리히텐베르크는 말했다. 왜냐하면 강하고 똑똑한 강자들의 약자에 대한 박해가 무서운 것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권리의 불평등까지 자아내기 때문이다. 백성들은 나라의 근본인 바, 근본이 깎이면 나라 역시 쇠잔해지는 법이다. 그러니 잘못되어 가는 나라를 바로잡
2018년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본 궤도에 올랐던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의 비젼은 “평화로운 한반도, 번영하는 동아시아”이다. 첫째 원칙은 평화와 경제의 선순환이고, 둘째 원칙은 남북협력과 국제협력의 조화이다. 이를 위해 한국이 취할 기본전략은 첫째, 비핵화-평화체제-관계정상화. 둘째, 남북관계 발전전략의 다변화이다. 2018년 개시된 평화프로세스는 관련국들 간 일련의 정상외교로 비핵화-평화체제-관계 정상화임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2019년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결렬이후 2021년 현재까지도 별다른 진전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북한은 2021년 1월에 개최한 제 8차 당대회에서 경제 실패 성찰속에 대내외 어려운 상황에도 자력갱생과 자강의 기틀을 마련하고, 핵무력 건설 완성 등으로 국방력 강화로 병진 노선으로 승리후 적극적 대외활동 전개를 밝혔다. 경제와 핵 병진노선은 2019년 12월 말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5차 전원회의에서 제시된 것으로 하노이 노딜 이후 정리된 북한의 전략이다. 국제사회의 제재에도 불구하고 북한 경제가 버틸 수 있음을 보여주는 한편, 핵무력을 지속적으로 강화하여 미국의 태도 변화를 이끌어 내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미 북한 경제에 부
오월은 멀었는데 ‘임을 위한 행진곡’ 이 들린다. 노랫말의 모태가 된 시 ‘묏비나리’를 지은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이 세상을 떠났다. 평생을 노동자, 빈민의 편에 서서 독재와 싸우고 통일 운동에 헌신했던 그의 족적이 노래의 장엄함을 더한다. ‘민중의 애국가’가 된 이 노래는 국경을 넘어 미얀마, 태국, 말레이시아, 캄보디아 등 독재와 탄압에 맞서는 시위현장에서 울려 퍼지고 있다. 아이돌 가요처럼 한류를 만든 민중가요다. 2년 전, 홍콩시민의 범죄인 송환 법안 반대 시위 현장에서도 불렸던 이 노래를 두고 한 신문은 ‘임을 위한 행진곡은 아시아 각국에서 불리는 스텐카 라진(Stenka Razin)’이라고 소개했다. 스텐카 라진도 낯선 단어지만 임을 위한 행진곡과는 또 무슨 관계일까. 스텐카 라진은 70년대 대학을 다닌 이들의 시위 현장에서, 더 멀리 가면 광복 전 독립군들 사이에서 불렸던 러시아 민중가요로 17세기 중반의 러시아 농민반란 지도자 이름이다. 우리나라 동학혁명 지도자 녹두장군 전봉준 같은 존재이기에 그를 기린 민중의 노래 ‘새야 새야 파랑새야’와도 비견된다. 러시아 남동쪽 국경지방인 카자크(Kasak) 부농의 아들로 태어난 스텐카 라진은 차르 폭정…
건강한 뉴스소비자로 살아가기가 쉽지 않다. 심각한 정파적 편집증을 앓고 있는 언론들 때문이다. 뉴스를 액면 그대로 믿어도 되는지 한 번 더 생각한다. 일종의 ‘뉴스 의심증’이다. 억지춘향식으로 짜맞춘 기사는 아닌지, 필요한 부분만 취사선택해 꾸민 기사는 아닌지…지향이 다른 신문이나 방송을 보고 판단해야 완전한 뉴스를 얻게 된다. 이런 불편함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개선될 기미가 없어서다. 중병을 앓아도 진단과 처방이 정확하고 환자가 잘 따르면 희망이 있다. 검진결과는 ‘저널리즘 원칙 무감각증’이다. 처방전은 “환자(언론)가 처방약(저널리즘 원칙 준수)을 상당기간 꾸준히 복용하고 기다려야 살 수 있다”는 게 공통된 진단이다. 그러나 이 처방전을 따르는 언론사는 거의 없다. 과거 선배들이 했던 경험요법에만 집착한다. 가장 손쉬운 방법들이다. 이런 식이다. 힘 있는 자를 최대한 비틀고 자극적으로 보도한다. 그 대상은 대통령이 가장 좋다. 신임 미국 대통령과 전화통화가 일본보다 늦으면 한국이 무시 당하고 있다고 비아냥거린다. 바이든에 앞서 시진핑과 통화했다고, 왜 미국에 앞서 중국이냐고 힐난이다. 미·중 강대국 사이에서 줄다리기를 해야 하는 현실은 안중에 없다.
사람은 아직 젊고 사려가 깊지 못한 때일수록 자신의 생명의 근원이 육체에 있다고 믿기 쉽다. 그러나 나이를 먹고 예지가 깊어짐에 따라, 자신과 온 세상의 생명의 근원이 정신 속에 있음을 알게 된다. 우리의 눈에 보이는 육체적인 생활은 인생이라는 건물을 짓기 위한 비계와 같은 것이다. 비계가 필요한 것은 건물을 짓는 동안뿐이다. 건축이 끝나면 용도가 다하여 제거된다. 우리의 육체생활도 그와 같다. 육체는 정신적인 생활의 집을 짓기 위해서만 필요할 따름이며, 그 집이 다 지어지고 나면 육체는 폐기되는 것이다. 하늘과 땅을 보고 생각하라. 산도, 강도, 온갖 형태의 생명도, 자연이 만들어낸 것도, 모두 덧없이 지나가 버린다. 바로 제행무상(諸行無常)이다. 네가 그것을 이해하기만 하면 당장 한 줄기의 빛이 나타나, 상주불변(常住不變)하는 것의 존재를 인식하게 될 것이다. (부처) 죽는 것은 네 자신이 아니라 네 육체이며, 사는 것은 네 육체가 아니라 육체 속의 정신이라는 것을 기억하라. 네 육체가 네 정신으로 하여금 네 생활과 전 세계의 생활을 이해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네 속에 살고 있는 정신이 육체를 움직이고, 느끼고, 생각하고, 예견하고, 네 육체와 네 행위
사람은 양심이 있어야 한다. 앞선 부모들이 늘 그렇게 말씀하시며 살았다. 식민지와 전쟁을 겪었던 세대였던 만큼 하루하루가 위태로웠을 것이다. 눈앞에서 코 베어가는 세상이었을 것이다. 그들이 기대했던 삶의 해결방식은 양심이었다. 사람이 양심이 있어야지 원. 근데 그 기준은 늘 애매했다. 그래서 상식적으로 해결하는 게 다였다. 상식은 기준이 없다. 원칙적이지는 않다. 하지만 기묘하게도 그 ‘상식’으로 분쟁이 해결될 때가 적지 않았다. 일종의 ‘무질서의 질서’인 셈이다. 지금은 오히려 ‘질서의 무질서’의 행태들이 넘쳐 나고 있지만. 영화평론가인 만큼 이번 달은 영화 얘기를 두어 편 하겠다. 하드 보일드 작가로 유명한 미국 보스톤의데니스루헤인은 지금까지 연인 탐정 ‘켄지&제나로’ 시리즈를 딱 5권만 썼는데 그중 꽤나 유명한 작품이 '가라 아이야 가라, Gone baby gone' 이고 2007년 배우 벤 에플렉에 의해 영화로 만들어졌다. 주인공 패트릭켄지 역은 케이시에플렉이, 앤지 제나로는 미셸 모나한이 했다. 이 소설과 영화의 핵심은 4살짜리 아이 아만다의 유괴범을 잡는 일인데 처음엔 미해결로 보였던 (그래서 아이가 이미 사망한 것으로 종결처리된) 사건이…
천성적인 소박함과 예지에서 오는 소박함이 있다. 이 둘 다 사랑과 존경을 불러 일으킨다. 인생의 문제는 대부분 대수방정식과 같다. 즉 가장 간단한 형태로 바꿈으로써 풀리는 것이다. 진실한 말은 언제나 꾸밈이 없고 단순하다. (마르실리우스) 가장 위대한 진리는 가장 간결하다. 어린아이와 동물이 지닌 매력은 바로 소박함에 있다. 자연은 사람들이 자기네들끼리 조작한 차별이라는 것을 모른다. 자연은 신분이나 부에 관계없이 모든 사람들에게 정신적인 자질을 부여한다. 자연스럽고 선량한 감정은 오히려 서민들 가운데서 더욱 많이 볼 수 있다. (레싱) 사람들이 교활하고 화려한 미사여구를 늘어놓는 것은, 우리를 속이거나 잘난척하기 위함이다. 그런 사람들을 믿어서는 안 되며 흉내를 내서도 안 된다. 좋은 말은 언제나 간결하고 누구나 알기 쉬우며 논리적이다. 솔직함이란 인간으로서 자신의 존엄성을 의식하는 것이다. (부아스트) 솔직함은 언제나 고상한 감정에서 생긴다. (달랑베르) 언어는 사람들 사이의 거리를 좁혀준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들이 너를 이해할 수 있도록, 그리고 네가 이야기하는 것이 모두 진실이 되도록 말하는데 힘써야 한다. / 주요 출처: 똘스또이 '인생이란 무엇인가
미쓰비시 기금교수로 하버드 법대에 채용된 존 마크 램지어. 그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는 매춘부(prostitute)" 라고 칭한 논문(태평양 전쟁에서 성매매 계약 : Contracting for sex in the Pacific War)의 파장이 일파만파다. 한국은 물론 미국 내에서도 격렬한 논쟁이 뒤따르고 있다. 아니나 다를까 박유하 교수가 나섰다. 램지어의 글을 "아직 읽어보지 못해서 정확한 건 말할 수 없지만... 이 교수의 주장이 역사적 디테일에선 크게 틀리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자기 페이스북에서 밝힌 것이다. 텍스트에 기초한 접근은 모든 객관의 기초다. 그럴진대 논문 자체를 안 읽었다면서도 해당 주장이 “틀리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저 무모한 용기는 어디서 나오는 걸까. 크레스웰(Creswell, 1998)의 지적대로 역사적 연구에서는 해석학적 입장, 즉 사료(史料)에 대한 연구자의 주관적 관점이 중요하다. 그러나 이에 앞서 확보되어야 할 것은 자료 수집과 분석에 있어 최소한의 실증적 근거다. 학문으로서 역사학이 개인의 소감을 나열하는 ‘에세이’와 구별되는 곳이 바로 이 지점이다. 지난 2014년 박유하교수가 '제국의 위안부'란 책을 통해 점화시킨…
2021년도 한달이 훌쩍 지났다. 매년 이맘때면 그해의 할 일에 대한 계획 다듬기와 실행 준비에 여념이 없을 때다. 그러나 올해는 예년과 다르다. 다가오는 시간에 대한 예측과 전망이 암흑 속에 있는 것 같다. 코로나19 때문이다. 그러나 트랜드 읽기는 꼭 필요하다. 작년 2월부터 시작된 코로나19는 각 분야에 걸쳐 많은 변화를 가져왔고, 관광은 유독 심했다. 2020년의 여행 트렌드는 ‘주말보다 평일’, ‘성수기보다 비수기’, ‘관광지보다 소도시’, ‘대규모보다 소규모’의 키워드로 정리해 볼 수 있다. 이 키워드의 근간은 안전이다. 안전 확보의 최선책은 대면의 최소화이며, 이런 영향은 여행 전반에 걸쳐 변화를 가져왔다. 작년 일주일 중 숙박가격이 가장 비쌌던 요일은 주말이 아니라 수요일이었다. 주말을 피해 주중인 수요일에 여행을 떠난 이들이 많았던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또한 우리가 관광지라 할 수 있는 대도시를 벗어나 지역 소도시로 향하는 이들도 많았다. 여행지 선택에서 그동안의 지명도보다는 안전과 개인의 취향이 점차 중요해짐을 알 수 있다. 최근 여행의 핵심 키워드로 떠오르고 있는 ‘기억할만한 관광경험(MTE:Memorable Tourism Experi
최근 국정원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의하면 지난 2011년도에도 나는 사찰 대상이었다. 이명박 정부 출범 시절에 정부가 맺은 미국소고기 수입 조건이 과학이나 국제기준에 의한 것이 아님을 지적하는 과정에서 당시 국정원 사찰 대상자였던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국정원 특명팀에 의해 소위 '종북좌파연계 불순활동혐의자'라는 특정 30여명 중의 하나로 2011년에도 관리되었다는 것은 매우 낯설었다. 과연 2011년 나는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그 해에는 ‘민주화를 위한 전국 교수협의회’의 상임의장으로서 쌍용차 사태와 함께 한진중공업 김진숙 민노총 지도위원의 크레인 고공농성에 연대하기 위해 희망버스를 탔다. 정동영, 이정희 등 당시 야당 정치인들과 함께 경찰의 초록색 물대포를 맞은 기억이 있다. 그 김진숙이 '복직 기원 희망 뚜벅행진'의 이름으로 부산을 출발해 34일 만에 청와대에 도착해 기자 회견을 하고 있다는 소식이 이 글을 쓰는 내게 들린다. 청와대 앞 발언문 첫구절은 ‘민주주의는 어디로 갔는가’였고, ‘36년간 나는 유령이었습니다. 자본에게 권력에게만 보이지 않는 유령이었습니다’라는 절실한 언급이 있다. 검찰의 조국 법무부 전 장관에 대한 끈질기고 과도한 의도적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