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천 땅에 내린 건 해질녘이었다. 노모가 계신 집은 합천읍에서도 한 시간 남짓 걸어가야 하는 작은 시골 마을이다. 모처럼 지는 해를 보며 남정강을 건너 걸어가기로 했다. 읍내를 벗어나자 보리밭이 보였다. 해거름 밭둑 길을 쉼 없이 걸었다. 보리밭을 보니 불현듯 떠오르는 것이 있다. 어릴 적 나는 이렇게 보리밭 길을 따라서 시골 초등학교를 다녔다. 간혹 친구들을 만나고 밤늦게 집으로 돌아오는 길엔 늘 섬뜩한 두려움이 기다리고 있었다. 멀리서 들리는 늑대 울음소리였다. 우는 아이 소리 같기도 한, 밤하늘을 흔드는 늑대 울음소리가 어디선가 들렸다. 늑대를 두고 소문도 흉흉하였다. 어느 동네에선 늑대가 갓난아기를 물고 갔다는 둥, 자고 나면 늑대가 돼지우리를 덮쳐 새끼돼지를 물고 갔다는 소리도 들렸다. 그 소리가 그렇게 무서울 수가 없었다. 그래서 밤이면 혼자 삽짝 밖을 나서지 못했다. 어쩌다 이웃 동네 친구를 만날 일이 생기면 동네 아이들을 불러내어 무리를 지어 보리밭 고랑을 지나다녔다. 푸른 달빛 아래 보리밭 밭둑을 걷는 기분이라니…. 달빛 속의 밭고랑에서 불쑥 늑대가 나타날 것만 같은 공포에 우리는 절로 오금이 저렸다. 그런 늑대가 언제부터인가 사라졌다고 한다
정부가 4월부터 3개월간 무제한 유동성 공급에 나선다. 은행이나 증권사 등 금융회사가 보유한 우량 채권을 담보로 발행하는 환매조건부채권(RP)을 원하는 만큼 사들이기로 한 것이다. 이같은 조치는 1997년 외환위기나 2008년 금융위기 때도 사용하지 않았던 전례 없는 고강도 조치다. 코로나19로 유발된 실물·금융 분야의 경제적 충격이 단기간에 회복하기 어려울 정도로 크다는 판단에서 나온 한국형 양적 완화로 볼 수 있다. 사실 코로나19 사태로 글로벌 셧다운이 장기화하면서 기업들의 자금난은 가중되고 있다. 관광, 호텔, 외식, 항공업은 물론 수출 제조업까지 매출 급감으로 현금 유동성이 말라가고 있다. 정부는 최근 발표한 38조원 규모의 우량·비우량 회사채펀드 가동을 서두르길 바란다. 별문제가 없던 기업이 코로나19 사태 이후 경영난에 빠져 일시적 자금경색을 겪고 있다면 정부가 나서 도와줘야 한다. 생산과 투자, 고용의 주체인 기업의 위기는 곧 민생의 위기다. 하지만 정부가 부실 민간기업에 무작정 국민 혈세를 퍼부을 수는 없다. 무엇보다 경쟁력과 생존 가능성이 담보돼야 한다. 채권단이 지원 조건으로 제시한 것처럼 총수 일가, 법인 대주주 등 이해당사자들의 고통…
4월 6일로 예정된 개학 문제를 놓고 정부의 고민이 깊다. 개학하자니 코로나19 확산이 두렵고, 연기하거나 개학한 뒤 온라인 수업을 하자니 이것 또한 문제점이 많다. SBS 보도에 따르면 서울시교육청의 경우 4월 6일 개학에 대한 찬반 여부, 반대한다면 적절한 개학 시점을 묻는 여론조사를 실시했는데 유치원이나 초등학생 같은 어린 자녀를 둔 학부모일수록 4월 6일 개학에 부정적인 의견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개학 반대 의견을 낸 학부모들 사이에서는 ‘한 차례 연기하자’, ‘코로나19 종식 때까지 무기한 연기’, ‘온라인 개학’ 의견이 비슷했다는 것이다. 4월 6일 등교 개학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은 교원들도 같았다. 교사단체인 좋은교사운동이 26~27일 유치원과 초중고 교사 4천2명을 설문조사한 결과 73%가 등교 개학을 ‘4월 6일 이후로 연기’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또 4월 6일 개학을 전제로 개학방식을 묻자 응답자 59%가 ‘온라인 개학을 먼저 해야 한다’고 답했다. 교육부가 27일부터 29일까지 전국 유초중고 교원을 대상으로 실시한 인터넷 설문조사에서도 대부분이 4월 6일 개학이 ‘부적절’하다는 응답을 했다고 알려지고 있다. 대구시교육청은 교육부
후보자의 이름이 인쇄된 투표용지는 1850년대 호주에서 처음 사용됐다. 하지만 투표용지는 나라마다 다르게 발전해 왔다. 문맹률에 있어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인도에서는 정당을 상징하는 다양한 그림들이 투표용지에 등장한다. 일상생활 속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연꽃, 자전거, 손바닥, 자명종, 낫, 코코넛 등등. 1960년대 우리나라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문맹률이 높다 보니 출마 후보의 기호를 1·2·3 같은 아라비아 숫자 대신 막대 개수로 표시 했기 때문이다. 당시 치러진 참의원 선거엔 후보가 28명이나 출마해 막대를 28개나 그려 넣었다니 후보의 기호를 찾아 정확히 찍는 것도 쉽지 않았을 듯 싶다. 후보자 간 헷갈리는 것을 막고, 정보를 더 많이 주기 위해 후보자 얼굴을 인쇄하는 나라도 있다. 그런가 하면 일본은 유권자들이 후보자 이름이 인쇄된 투표용지에 기표하지 않고 투표용지에 후보자 이름(지역구 의원)이나 정당명(비례대표)을 적도록 하고 있다. 이른바 세계 유일 자서식(自書式) 투표용지다. 투표이후 개표방법은 세계가 거의 공통이다. 수(手)개표 혹은 전자개표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1948년 첫 선거이후 수작업으로…
향년 88세이신 아버지가 췌장암으로 광주보훈병원에서 영면했다. 전대병원에서 가족들과 작별인사를 주문한 주치의 말해도 아버님은 산소호흡기에 의지하면서 병마의 고통은 오래갈 것만 같았다. 그러던 아버지가 돌아오질 못할 아주 먼 길을 떠나셨다. 산소호흡기에 의존한 호흡은 파도가 일렁이는 바람처럼 크고 무서웠다. 지켜보는 가족들은 얼마나 힘드실까 하루하루 병간호의 긴장된 나날이었다. 좀 더 오래 지상에 머물면서 가족들과 생전에 가보지 못한 여행도 하고 맛있는 음식도 나누고 싶었지만 병세는 깊고 깊었다. 어머니가 담석으로 일찍 돌아가신 후로, 허공을 바라보는 모습들이 엊그제 같다. 아버지는 신안군 증도초교에서 교육에 몸담으신 후로는 마산, 서울, 고향인 해남에서 대부분 정착하셔서 6남매를 성장시켰다. 어머님과 오래전 별리후로 마냥 허허로운 공간에다 초점 잃은 시선을 걸쳐놓았을 뿐이란 것을 뒤늦게 알았다. 허공을 좇는 아버지의 눈길은 세월이 지날수록 더욱 깊은 슬픔에 빠져있는 듯 보였다. 작은형님 내외는 극진하게 아버지를 모셨고, 읍내에 나가서 게이트볼도 치시고 전국대회에 출전하시기도 했었다. 어르신들과 어울리시면서 그 초조한 모습은 사라졌지만, 허공을 바라보는 모습은
현관을 나서며 나는 별 생각 없이 어제 신었던 신발을 또 신는다.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마지막 준비과정을 위해 몸에 장착하는 신발. 그 신발로 하여 나는 바깥세상으로 발을 내딛고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나를 확인하고 다시 돌아올 것이다. 마치 한 몸인 듯 내 몸에 붙어 다니며 지저분함으로부터 또는 차가움으로부터 때로는 통증으로부터 나를 지켜주는 신발. 그 신발이 처음부터 그렇게 편안했던 것은 아닐 것이다. 갓 돌을 넘기고 있는 조카 ‘현’이의 작은 발에 신발을 신기자 금방 얼음처럼 몸이 굳어 꼼짝을 못한다.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아 신발을 이리저리 쥐어뜯기 시작하는 ‘현’이. 누구에게나 처음의 신발은 그렇게 어색하고 불편하지 않았을까 싶다. 마치, 사회의 일원으로 스며들기 위해 첫 발을 내딛던 그 날처럼 말이다. 처음의 어색함이 점점 익숙해지고 결국엔 한 몸인 듯 되어가는 ‘신발 길들이기’ 과정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마치 우리 삶과도 닮은 듯하다. 동대문 지하상가를 지나가다 문득 눈에 들어오는 구두를 산 적이 있다. 벚꽃 만발하던 그 날, 나는 잔뜩 멋을 낸 치마를 입고 그 구두를 신었다. 그 날 그 여의도에는 폭죽처럼 꽃잎이 흩날렸고 늦도록 휘청거리는 바람과 더불
속임수를 잘 써서 믿을 수 없다는 뜻의 ‘교활(狡猾)’은 상상 속의 두 마리 동물 이름이다. 중국의 기서(奇書) ‘산해경(山海經)’에 등장한다. 내용은 이렇다. ‘교(狡)’는 모습은 개와 같고 몸에는 표범 무늬가 있으며, 소처럼 뿔이 나 있는 짐승으로 개 짖는 소리를 낸다. ‘활(猾)’은 생김새는 사람 같은데 온몸에 돼지털이 숭숭 나 있으며 뼈가 없는 동물이다. 그런데 이들은 길을 가다가 호랑이를 만나면 몸을 똘똘 뭉쳐 조그만 공처럼 변신하여 제 발로 호랑이 입속으로 뛰어들어 내장을 마구 파먹는다. 호랑이가 그 아픔을 참지 못해 뒹굴다가 죽으면 그제야 유유히 걸어 나와 미소를 짓는다. 그래서 생겨난 말이 교활이라는 것이다. 자신을 먹이로 덫을 놓는 간교함이 말 그대로 얼마나 교활한가? 영국의 작가 조앤 롤링의 ‘해리포터’ 시리즈의 첫 번째 책인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에 ‘악마의 덫’ 이라는 덩굴식물이 나온다. 부드럽고 탄력 있는 덩굴손과 촉각이 예민한 덩굴 덩어리로 이뤄진 이 식물은 자신의 몸에 닿은 모든 것을 감아서 질식사 시켜버린다. 빠져나오려고 몸부림치면 더 빠르고, 더 단단하게 감아버린다. 인간의 탈을 쓴 악마도 마찬가지다. 달콤한 말을 건네는가…
꿈은 살아있는 사람의 의무이자 권리입니다. 꿈에는 한계가 없습니다. 여전히 너나없이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코로나19)로 힘들고 어렵습니다. 세계 인구의 70%이상이 감염돼 집단면역이 생기기 전에는 끝나지 않을 것이란 암울한 전망도 있습니다. 한국이 공격적인 검진으로 방역의 모범을 보이고 있다지만 안심하긴 이릅니다. 삶의 현장에서 묵묵히 최선을 다하는 도민들에게 보내는 위로와 격려의 글이 눈에 들어옵니다. “꿈을 이루는 건 언제나 땀입니다.” 경기도가 도민과 소통을 위해 내건 첫 희망글판 문구입니다. 봄을 나눈다는 춘분(春分)도 저만큼 지나갔습니다. 중국 우한에서 발생하여 세계적으로 번지고 있는 코로나19로 인해 모든 게 멈춰 서 버린 듯합니다. 사회적 파장과 경제적 후유증이 감당키 어려울 정도로 큽니다. 179개 나라 하늘길이 막혀 대한민국이 가장 피해를 보고 있습니다. 19일 현재 누적확진자수가 9천137명에 사망자도 131명에 이르고 있습니다. 이 중 경기도 확진자수는 모두 387명에 사망자는 4명입니다. 참으로 어렵고 힘든 시간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국민 모두가 생명의 위험과 경기 침체로 이중 삼중의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이 시간에도 온…
걷기가 몸에 좋다는 걸 모르는 바보는 없다. 그러나 도회지에서, 특히 서울에서 걷기운동은 사실 좀 어렵다. 우선 공기가 안 좋아 매연 속을 쉽게 걸을 마음이 안 생긴다. 그보다 더 어려운 건 우리 몸은 편한 것을 좋아한다는 것이다. 사람의 몸은 표면에 닿는 면적이 넓을수록 편안함을 느낀다. 서 있는 것보다 엉덩이를 걸치는 것이 편하고, 그보다 좀 더 편한 자세는 반쯤 몸을 누이고 앉아 텔레비전을 보는 것이다. 그보다 더 편한 자세는 말할 것도 없이 자리에 삐딱하게 눕는 것이다. 결국, 가장 평안을 느끼는 자세는 눈감고 숨 안 쉬는 죽음의 세계다. 죽지 않으려면, 병들지 않으려면 사람은 움직여 줘야 한다. 원시사회는 물론 농경사회에서도 사람들은 부단히 육체노동을 했다. 산업화가 이뤄지면서 사람의 손발 대신 그 자리를 기계가 맡게 되었다. 이때부터 사람들은 편한 것을 좇게 되었다. 그러나 육체의 건강을 위해서는 우유를 받아먹은 사람보다 우유를 배달하는 사람이 훨씬 더 건강하다. 그만큼 발로 뛰기 때문이다. 발로 걸으면 우선 온몸에 활기를 불러일으킨다. 발끝에서 두뇌까지 온 세포를 다 활성화시킨다. 디스크 환자도 걸으면 낫는다. 골다공증도 걷기운동을 규칙적으로 해
올해 들어 미세먼지가 예년에 비해 대폭 줄었다. 올해 1월부터 3월 24일까지 전국 각 지역에 발령된 미세먼지 주의보·경보 횟수는 모두 132번이었다. 그나마 경보는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런데 지난해 같은 기간에는 주의보·경보가 무려 630회나 됐다. 특히 3월 1일부터 24일까지는 총 13회만 내려졌는데 지난해 같은 기간엔 232번이었다. 이유는 노후 석탄발전소 가동 중단, 풍향 등의 기상여건 변화 때문이라고 한다. 아울러 코로나19의 영향도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코로나19가 경제활동을 급격히 위축시키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를 확인시켜주는 지역이 대구다. 대구는 코로나19 확산으로 미증유의 환난을 겪고 있지만 올해 3월 미세먼지 평균 농도는 21㎍/㎥였다. 지난해 같은 달의 64% 수준이다. 이는 외국의 사례에서도 확인된다. 코로나19 발원지인 중국 우한 지역과, 통제 불능 상태에 빠진 이탈리아 북부 미세먼지 농도가 급감했다는 것이다. 어쨌거나 미세먼지는 전염병 바이러스와 함께 인류가 퇴치해야 할 대상이다. 이에 중앙정부와 지방정부들도 미세먼지를 줄이기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다. 24일엔 미세먼지 저감 및 관리에 관한 특별법 개정안이 국무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