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문은 객관적이어야 한다. 여기에 딴지를 걸 사람은 없다. 하다못해 일상생활에서도 두 사람이 대립각을 세우고 싸우면 양쪽 말을 다 들어 봐야 공정하게 판단할 수 있다고 생각되는 판에, 학문 세계는 오죽할까? 무릇 학문 연구란 불편부당(不偏不黨)해야지, 한쪽 입장만 대변하거나 연구자의 주관적 경험에 좌우돼서는 안 된다는 게 불문율이다. 하지만 과연 그런가? 과학의 보기를 들어보자. 19세기 유럽에서 인기를 끈 골상학의 경우다. 당시 유럽은 턱의 모양, 안면의 각도, 골격의 모양 등을 토대로 인종과 남녀를 구분하는 골상학이 유행했다. 이를테면 뇌의 무게를 비교해본 결과 여성의 뇌가 남성보다 가벼우므로, 여성은 지능이 낮으며, 그래서 대학교육을 받는 게 무리라는 식의 결론이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나아가 흑인의 뇌는 백인보다 가볍기에, 흑인이 백인의 지배를 받는 건 당연하다는 논리도 폭넓은 지지층을 확보했다. 과학연구라는 그럴듯한 외연을 입었지만, 속내는 사회통념을 재확인한 데 불과했다. 19세기에 대학교육을 받은 엘리트 백인 남성들은 남녀차별과 인종차별을 당연시한 자신들의 고정관념을 ‘과학의 이름으로’ 재가하는 데 열을 올렸다. 그런 시대적 분위기 속에서 탄생
나라 안팎에서 인플레(물가상승) 경보음이 울리고 있다. 지난 1월 통화량(M2·광의통화)이 전월 대비 1.3% 증가한 3233조원으로 사상 최대이고 증가율도 11년만에 가장 높다. 초저금리에다 코로나 지원금 등이 시중에 풀렸기 때문이다. 식탁 물가 등 각종 물가도 오름세를 지속하고 있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글로벌 경기회복 낙관론이 대두되면서 원유, 구리 등 원자재 가격도 상승세를 타고 있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 연준)가 미국의 올해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종전 4.2%에서 6.5%로 대폭 상향했다. 이는 1976년 이후 처음으로 중국의 성장률을 앞서는 고성장을 의미한다. 중국은 성장률을 6% 이상으로 제시했다. 이에따라 미국의 인플레 가능성, 금리 인상 압박 요인이 커지면서 주식시장 등 세계 금융 시장이 출렁이고 있다. 국제금융협회(IIF)에 따르면 선진국 채권금리가 오르면서 지난달 마지막 주 중국, 러시아, 인도 등 30개 신흥국 주식과 채권에서 하루 평균 약 2억9000만달러 규모의 자본이 빠져나갔다. 주간 기준 신흥국에서 자본이 이탈한 건 지난해 10월 이후 처음이다. 각국의 인플레 대응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다. 최근 브라질(2%->
살기 힘들다 해서 죽기를 바라서는 안 된다. 도덕적인 사람은 자신에게 지워진 무거운 짐을 벗기 위해 자신의 사명을 오로지 실천한다. 자신의 사명을 다했을 때 비로소 그 짐에서 해방될 수 있다. (에머슨) 현재의 삶만이 진정한 삶이다. 과거는 이미 없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다. 현재의 순간만이 존재할 뿐이다. 그러므로 현재의 이 순간을 잘 사는 것, 오직 그것에만 온 정신을 쏟아 노력하라. 내세를 위해 현세를 살아야 한다고 가르치는 사람이 있어도 믿어서는 안 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삶, 실제로 살고 있는 삶은 현재의 이 삶뿐이다. 따라서 이 삶을, 이 삶의 한 순간 한 순간을 가능한 한 잘 사는 것에 온 힘을 기울여야 한다. 인생은 고뇌도 아니고 쾌락도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끝까지 성실하게 수행해야 할 사명이다. (토크빌) 너는 아무리 노력해도 마음먹은 대로 잘 되지 않아, 뭔가 다른 생활이라면 더 쉽게 할 수 있을 텐데 하며 괴로워한다. 그러나 그 생활 속에서, 네가 현재 놓여 있는 조건 속에서, 너는 언제나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할 수 있다는 진리를 알아야 한다. (칼라일) 사람들 속에서 세속적인 목적을 위해 사는 자에게도, 혼자서 정신적인 목적을 위
영화만큼 진실을 알리는 매체도 없다. 아니 영화가 유일하게 진실을 알리는 매체이다. 다만 그것이 조금 늦을 뿐이다. 영화는 언론과 달리 실시간으로 사건을 중계하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올리버 스톤은 1991년 논란의 영화 'JFK'를 만들었다. 영화 'JFK'는 1963년 11월 텍사스 댈러스에서 암살당한 미국 제35대 대통령 존 F. 케네디의 범인을 추적하는, 일종의 미스터리 드라마다. 35mm와 16mm, 슈퍼 8mm를 동원해 다큐멘터리 식으로 찍었으며 컬러와 흑백촬영을 동시에 하고 대규모의 장면전환과 별도의 시각처리가 동원된 올리버 스톤의 정치적 야심작이다. 그러나 그는 정작, 자신의 작품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JFK'는 정치영화가 아니다. 철학적인 영화이다. 사실이 무엇인지를 더 이상 모르게 될 때까지 진실이 조작되는 과정을 보여 주고 있기 때문이다.” (대중들이)사실이 무엇인지를 더 이상 모르게 될 때까지 진실이 조작되는 과정은 고도의 음모집단이 언론과 함께 벌이는 일종의 군사첩보작전이다. 지난 2년간 우리 안에서 벌어진 소위 ‘조국 사태’와 지금 전개되고 있는 서울-부산 시장 보궐선거의 과정을 보면 오래 전의 사건인 JFK의 암살과 그걸 영화로
지난 1월 8차 당대회에서 김정은은 ‘새로운 전략무기’ 고도화를 공언한 데 이어, 바이든 행정부와 앞으로 있을 협상 우위 선점을 위해 적절한 시점에 ‘새로운 무기’를 선보일 것이란 관측이 대세이다. 여기서 생각해 볼 점은 ‘새로운 전략무기’가 무엇이며, 그 발전은 어느 정도이고, 이에 대해 우리 군은 효과적인 방어태세를 갖추고 있느냐는 점이다. 그간 북한이 언급한 것과 발사한 내용들을 토대로 추론하면, ‘새로운 전략무기’는 세 가지로 압축된다. MIRV(다탄두각개목표 재돌입체), SLBM(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 SLV(우주발사체) 등이다. MIRV는 다양한 목표물에 대한 동시공격이 가능하고 적성국의 미사일 방어 체계를 약화시킬 수 있다. SLBM은 2차 타격능력을 확보하고 한미연합군에 대한 군사적 대응옵션을 확대하는 장점을 갖고 있다. SLV는 평화적 목적을 가장하고 일기예보·통신·GPS 등 군사적 목적을 위해 활용이 가능하다. 그러나 기술적 관점에서 보면 MIRV 보다 SLBM과 우주 발사체가 ‘새로운 전략무기’로 등장할 가능성이 크다. SLBM은 실전배치까지 시일이 걸릴 수 있으나, 2019년에 바지선을 활용하여 비행시험까지 마쳐 기술축적이 상당함을 과시
최근 우리가 겪는 문제는 어느 한 분야나 한 주체만의 힘으로 해결하기 어렵다. 국제적으로는 경제발전, 사회통합, 환경보전이라는 각 분야의 과제에 대해 그 분야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는 점을 인식했다. 1972년부터 시작된 고민의 결과물이 ‘지속가능발전(sustainable development)’이라는 개념이다. 이는 문제해결을 위한 새로운 틀, 즉 ‘거버넌스(governance)’다. 비판이 아니라 문제해결 중심의 관점인 것이다. 1987년 유엔환경개발위원회의 ‘우리 공동의 미래’ 보고서는 경제, 사회, 환경문제를 통합적으로 포괄하고, 미래세대까지 고려해 ‘지속가능발전’ 개념을 정립했다. 1992년 유엔환경개발회의에 모인 각국 정상은 지속가능발전을 위한 ‘의제21(Agenda 21)’에 합의했고, NGO와 지방정부를 비롯한 9개 주요 그룹이 지역에서부터 실천해야 한다는 ‘지방의제21’을 국제사회에 권고했다. 1990년대 말부터 지방자치단체가 수립한 우리나라의 지방의제21은 2002년 유엔 지속가능발전회의에서 모범사례로 소개됐고, 전통과 경험이 축적된 우리나라는 100여 개 지자체 민관협력 사무국이 유지되고 있다. 2012년 유엔지속가능발전회의에서는 의제21
“공직자가 부동산 투기로 불로소득을 얻고자하는 것은 가렴주구로 백성을 착취하는 행태”이자 “망국의 지름길”이란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말에 공감할 수밖에 없다. 신도시개발을 하는 이유는 서민 주거 문제 해결을 위한 것인데 사전 정보를 알고 있는 공무원이나 LH와 같은 공기업 직원, 의원 등이 투기목적으로 몰래 사들인다면 우리 사회의 공정과 신뢰는 사라진다는 이혜원·송치용 경기도의원(정의당, 비례)의 말도 백번 맞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땅 투기 사태는 이제 광명·시흥 지역만의 문제가 아니다. 공직자들의 부동산 비리 의혹은 전국적인 현상이 됐다. 이 나라 곳곳에서 공직자와 공기업 직원, 선출직 공직자 등 투기 의심자들이 추가로 확인되면서 국민들의 분노가 거세게 일고 있다. 2018년 3기 신도시로 지정된 계양 테크노밸리 사업 예정지의 토지 거래자 상당수가 허위로 농지취득 자격을 증명해 농지법을 위반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인천 검암역세권 공공주택지구와 3기 신도시 주변 지역 등에서도 투기의혹이 일고 있다. 부산 가덕도 신공항 부지와 관련한 정치인 투기 의혹도 제기돼 부산시와 여야 정치권이 부산 선출직·고위 공직자의 부동산 비리를 조사하는 특별기구를 구성
“금병동(琴秉洞)”이라는 이름은 한국 사회가 잘 알지 못하는 이름이다. 그가 남긴 저서로는 '조선인의 일본관', '일본인의 조선관' 단 두 권이 번역되어 있을 뿐인데 뒤의 책은 지금은 아예 품절이다. 여기서 번역이라는 대목이 “뭔가?” 싶을 텐데, 금병동은 재일사학자이고 저서는 일본어로 쓰인 까닭이다. 2008년 타계한 그의 최초 업적은 1923년 관동대지진 당시 조선인들에 대한 학살 조사였다. 일본정부의 조직적 관여를 밝혀낸 것이다. 한일관계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관동대지진 학살 문제는 아예 언급조차 되지 않고 있는 것이 지금까지의 현실이라는 것을 떠올려보면 그야말로 선구적 작업이다. - 금병동, 강덕상이 쓴 역사 1963년에 출간된 '관동대지진과 조선인'은 역시 같은 재일사학자로 여운형 전기를 쓰게 되는 강덕상 등이 함께 한 책이다. 강덕상의 '여운형 평전'은 조선 독립운동사 전체의 맥락을 짚어볼 수 있게 정리된 탁월한 저작이다. 한문으로 된 박은식의 '한국독립운동지혈사'는 1972년 일본어로 먼저 번역되는데 그 번역자가 바로 강덕상 선생이다. 한국어 번역은 1년 뒤인 1973년이다. 박은식 선생의 책이 1920년 출간되었다는 걸 안다면 기가 막힐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