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설렘이다. 아니 여운(餘韻)이다. 진정한 여행이란 새로운 풍경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다. 새로운 눈을 가지는데 있다. 29년간 결연을 맺어온 한·중 간의 적십자교류에 나섰다. 경기적십자 회장을 맡고 4년만의 나들이다. 6명으로 방문단을 꾸려 선양(沈陽)홍십자회를 지난 4월13일 찾았다. 공항에서 비서장의 영접을 받고 숙소로 가면서 4년간의 선양 도심의 발전상을 다시 볼 수 있었다. 마치 ‘내가 이렇게 변했다’는 듯 다양한 모습의 건물들이 앞 다퉈 내 시야에 다가왔다. 랴오닝성의 성도(省都)인 ‘예전의 선양이 아니다’ 라는 걸 직감할 수 있었다. 선양 홍십자회 수석부회장이 주최한 만찬은 떠나기 전의 설렘과 5일간 펼쳐질 일정의 기대감 속에 정감이 넘쳐흘렀다. 어느 새 동화되는 순간들이었다. 이튿날 선양시홍십자회를 방문, 양측 대표단이 마주 앉아 공식행사가 진행됐다. 지난 1991년부터 양국의 직원, 청소년적십자단원, 봉사원의 정기교류가 이뤄졌다. 인도주의 정신을 효율적으로 실천하기 위한 방법을 연구하고, 시대변화에 발맞추어 새로운 사업경험을 교류해왔다. 서로 간의 장점을 배우고, 재난구호시스템을 선진화하는 방안에 대한 논의도 진행됐다. 선양시 혈액센터를…
배 후 /이용한 당신이 떠난 배후는 자욱하다 남은 것들이 무거워서 나는 잠시 가라앉는다 가랑이 사이로 한 움큼 비가 내리고 이따금 눕지 못한 추억이 움튼다 밑줄이 다한 정거장에서 앙상한 결론에 도달할 때까지 가버린 골목은 묘연하다 이곳에선 누구나 휘어진다 문 닫은 것들은 어느새 녹슬었다 발바닥이 먼저 달그락거릴까봐 나는 뒤꿈치를 들고 살았다 입김만으로 충분했던 모퉁이와 겨울 사이 흘러내리기 위해 오늘은 흐린 구름을 닦는다 - 이용한 시집 ‘낮에는 낮잠 밤에는 산책’ 우리는 무수한 만남과 헤어짐 속에서 산다. 수없이 반짝이는 별들처럼 그렇게 빛나다 사라지는 빛들, 그 빛에 한순간 몰입되었다 풀려나는 것이다. 그리고 그 풀려남 후에는 그 사람이 남기고 간 이미지가 남는다. 그러한 쉽게 지워지지 않는 그림자로 인해 당신을 보낼 수밖에 없었던 사람은 한동안 무거워지며, 그 무거움의 경중에 따라 헤어날 수 없는 시간을 살기도 한다. 이미 문 닫고 녹슬어버린 시간, 그것을 알면서도 가랑이 사이로 비가 내리고 이따금 눕지 못한 추억이 움튼다. 당신이 떠난 이유를 정확히 모른 채 바라보는, 당신이 떠난 저 골목, 누구나 그 뒷모습을 바라보아야만 했던…
인천시가 경인아라뱃길(경인운하)~한강을 연결하는 유람선 뱃길 개통 방안을 다시 추진하고 있다. 인천시는 ‘경인아라뱃길 기능재정립 공론화위원회’에 한강∼경인아라뱃길 유람선 운항을 건의할 예정이다. 아울러 유람선 업체 등과도 개별 접촉해 구체적 운항 가능 규모 등을 협의하겠다고 밝혔다. 위원회는 물류 기능을 상실한 채 애물단지로 전락한 경인아라뱃길 기능을 재정립하고자 지난해 환경부가 구성했다. 인천시가 적극적으로 유람선 운항을 추진하는 이유는 관광객 증가와 아라뱃길의 접근성 제고 효과 때문이다. 아라뱃길 개척의 역사는 매우 길다. 800여 년 전 고려 고종 때 안정적인 조운항로를 개척하기 위해 인천시 서구 가좌동 부근 해안~원통현~지금의 굴포천~한강을 직접 연결하는 우리 역사상 최초의 운하를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지난 1966년에도 서울 가양동~인천 원창동 율도까지 운하 건설이 추진되다가 중단됐고, 1995년도부터 경인운하사업을 시작했지만 환경문제와 경제성 논란 등으로 지연됐다. 그러다가 2012년 이명박 정부 때 개통됐다. 아라뱃길 조성에 투입된 예산은 총 2조6천700억원이었다. 그러나 물류·여객을 수송하는 뱃길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돈 먹는 하마’가 됐다
더불어민주당과 정부, 청와대는 20일 일반 경찰의 수사 관여를 통제할 국가수사본부 신설을 추진하고 정보경찰의 정치관여와 불법사찰을 원천차단하겠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경찰개혁안을 확정했다. 당정청은 이날 국회에서 ‘경찰개혁의 성과와 과제’를 주제로 협의회를 열고 이런 내용의 경찰개혁안을 확정했다고 밝혔다. 가장 먼저 관심을 끄는 것은 “일반경찰의 수사관여 통제와 자치경찰제의 조속한 시행을 통해 경찰권한을 분산할 것”이라며 “당정청은 관서장의 부당한 사건개입을 차단하기 위해 개방직 국가수사본부 신설을 추진하기로 했다”고 정책의장이 밝힌 내용이다. 이는 일반 경찰과 수사 경찰을 분리하는 것으로, 사실상 그동안 관서장의 부당한 수사 개입 관행을 인정한 셈이다. 개방직 국가수사본부를 신설해 일반경찰의 사건 수사관여를 통제함으로써 원칙적으로 지방청장이나 경찰서장 등 관서장이 구체적인 수사 지휘를 할 수 없게 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어 그 의미가 매우 크다. 이날 협의회에서 당정청은 정보경찰의 통제를 위해 정치관여·불법사찰에 대해서는 법령상 ‘정치관여시 형사처벌’을 명문화하고 활동범위를 명시해 정보경찰의 정치적 중립을 확보하겠다고 밝혔다. 사실 어느 권력, 어는 정권
대지에 생명력이 넘치는 5월이다. 신록의 푸르름이 좋고 푸르름의 기대감은 우리의 마음조차 새롭게 한다. 그럼에도 우리가 보고 듣고 느끼는 주변의 소식은 밝은 것만이 아니어서 우리를 우울하게 한다. 모두가 상식과 원칙을 무시하고 변칙을 적용하는데서 빚어지고 있는 일들이다. 그 일들의 실체와 원인이 있을 것인데 아무도 그 일들에 대한 책임을 지거나 자신의 부덕함에서 비롯된 것이라 말하지 않는다. 오월이 가정의달이라고 표현하기에 무색 하리 만큼 가정 폭력 그리고 사건 사고들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아울러 영세 소상공인들의 어렵다는 일성은, 더불어 사는 우리가 감당해야할 시대적 소명처럼 당연함으로 포장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정치와 경제의 공학적 프레임에 따라 민생의 문제들이 해결되고 경제 활성화가 되어 그저 살만한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국민들의 희망 또한 여의도의 출구 없는 정쟁으로 인해 감감무소식으로 답답할 뿐이다. 우리 사회에는 책임의식이라는 것이 있다. 자신으로 인해 빚어진 일이거나 자신이 행한 일의 결과에 대해 응당의 책임을 소명할 수 있는 최소한의 양심이라 여겨진다. 그런데 우리 사회의 일반적으로 여겨지는 책임의식은 그리 찾아보기가 쉽지 않…
박찬호, 류현진, 박지성, 손흥민, BTS, 유재석, 강호동, 김재동…. 열거된 이름들만 봐도 이들의 공통점이 무엇인지는 삼척동자도 알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 예체능계에서 내로라하는 사람들이다. 모두 각자 분야에서 알아주는 전현직 예체능 스타들이다. 지금은 우리나라 청소년들의 최고 꿈이 유튜버라고 하지만 불과 얼마전까지만 해도 이들은 우리나라 청소년들에게 절대적인 영향을 끼치는 예체능계 스타들이다. 한때 우리집 아이들이 어릴 때 속으로 간절히 바라던 일이 있었다. 제발 예체능 쪽으로는 가지 말아달라고. 교육 현장에 있으면서 그 분야가 경제적으로, 정신적으로 얼마나 힘이 드는지 두 눈으로 똑똑히 봤기 때문이었다. 돈이나 정신은 둘째 치고 가장 두려웠던 것은 미래가 불투명했기 때문이다. 설상가상으로 예체능 분야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희생해야 할 것들이 또 너무 많았다. 즉, 인생에서 한 가지를 얻기 위해 나머지 99가지를 포기해야 하는 이 분야에서 내 아이들이 자라나는 것을 나는 절대로 원치 않았다. 그리고 지금 2019년. 상황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 정확하게 무슨 프로인지 기억은 안 나지만 출연진인 강호동이 프로그램에 참여한 농구선수에게 하…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한국의 ‘SNS 쏠림’ 현상은 유별나다. 그래서 카카오스토리와 페이스북, 트위터의 앞글자를 딴 ‘카·페·트 중독’이란 유행어도 나왔다. 하지만 ‘중독은 피해를 낳는다’고 했던가. 미국 UC샌디에이고 연구팀이 최근 페이스북 이용자 대다수가 남들의 과시용 게시물에 ‘좋아요’ 버튼을 누르면서 상대적 박탈감에 시달리고 있다는 연구 결과를 내놨다. 지난해엔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대 교수팀이 “SNS를 오래 사용할수록 자존감이 떨어지고 우울증을 앓을 확률이 높아진다”고 밝히기도 했다. 허구의 세계를 진실이라고 믿고 가공된 언행을 반복하는 ‘리플리 증후군’도 ‘SNS 쏠림’의 피해 중 하나다. 그리고 나이가 어릴수록 심각하다. 이런 현상들은 대부분 스마트폰의 과다 사용으로 부터 시작된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인터넷·스마트폰 이용습관에 문제가 있는 청소년 비율이 매년 증가해 전체의 16%에 달한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여성가족부는 초등(4학년)·중등(1학년)·고등(1학년) 청소년 128만6천567명을 설문조사한 결과 이 중 20만6천102명(16.0%)이 인터넷·스마트폰 과의존 위험군에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고 밝혔다. 20만명을 넘어선 것은 처음
인간에게 육체와 정신 가운데 무엇이 중요할까? 몸을 쓰는 일보다 정신을 쓰는 일이 많은 현대인에게는 육체노동은 거리가 멀다. 몸으로 일하는 업무가 점점 줄어들며 정신과 육체가 분리되어 간다. 사람들은 육체노동은 힘들고 정신적인 일은 숭고하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책상머리에 앉아서 일하지 않았던 나는 온 몸을 부딪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리스의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의 주인공처럼 말이다. 거침없는 조르바, 근심이나 염려가 전혀 없는 조르바는 자유의 상징이다. ‘그리스인 조르바’의 줄거리는 단순하다. 화자인 ‘나’와 조르바가 우연히 만나 크레타 섬에 가 탄광 사업을 벌였다가 완전히 망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책만 읽으며 지적인 사유 속으로 파고들었던 엘리트 지식인 ‘나’는 조르바를 통해 진짜 삶을 깨닫는다. 조르바는 육체적인 삶, 바로 노동의 현실이 오히려 정신을 뛰어넘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온종일 읽고 쓰며 영혼과 결투를 벌인다고 생각했던 ‘나’는 조르바가 육체를 사용하는 방식에 감복하고 오히려 진정한 진리를 깨닫는다.…
각급 학교에 사서교사(사서)가 배치됨에 따라 도서관 활용 수업이나 도서 대출에 대한 수요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지만, 통계로 바라본 독서실태조사는 녹록치 못하다. 문화체육관광부가 만 19세 이상 성인 6,000명과 초등학생 4학년 이상 및 중·고등학생 3천여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17년 국민독서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2016년 일반도서(교과서·학습참고서·수험서·잡지·만화를 제외한 종이책)를 1권 이상 읽은 사람의 독서율은 성인 59.9%, 학생 91.7%인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015년에 비해 성인은 5.4%, 학생은 3.2%가 감소했으며, 책을 1권 이상 읽은 사람 중 ‘매일’ 또는 ‘일주일에 한 번 이상’ 읽는 독자는 성인은 24.5%, 학생은 49.6%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교육부, 각시·도교육청은 학교독서진흥을 위한 대책 마련에 분주한 모습이다. 경기도교육청이 학생(2019. 3. 28.~4. 4. 응답 : 관내 초·중·고 학생 2천1명), 학부모(2019. 3. 28…
산벚꽃 /김선태 온통 적막한 산인가 했더니 산벚꽃들 솔숲 헤치고 불쑥불쑥 나타나 저요 저요! 흰 손을 쳐드니 불현듯 봄 산의 수업시간이 생기발랄하다 까치 똥에서 태어났으니 저 손들 차례로 이어보면 까치의 길이 다 드러나겠다 똥 떨어진 자리가 이렇게 환할 수 있다며 또 한번 여기저기서 저요 저요! 다시 봄이다. 도처에 깃든 봄의 소리들은 이제 막 잠에서 깨어난 듯 수런거린다. 이파리 하나가 뒤채더니 다른 이파리들이 따라 보챈다. 밝은 초록이 바깥을 살피면서, 더 밝은 초록들이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햇빛이 다가오고 먼지 더께가 켜켜이 쌓인 남루한 어깨에 내려앉아도 그 발랄함은 전혀 멈추지 않는다. 겨울 숲의 적막이란 소요의 전조다. 예비이고 징후다. 봄은 초록에게, 초록이 살아갈 장소를 내어주며 또 다른 색의 공화국으로 이동하기 직전이다. 시인은 봄 산의 파릇파릇 돋아나는 생기를 ‘수업시간’에 비유한다. 질문과 답이 이어지고, 다시 질문에 또 질문이 터진다. 무거운 얼음-흙을 뚫고 수직으로 고개를 드는 손! “저요, 저요”하는 학생들의 뚜렷한 이목구비가 불현 듯 눈길을 끈다. /박성현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