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시 팔달구 매교동 좁은 골목 오래된 건물 3층에 수원제일평생학교라는 곳이 있다. 1963년 수원제일야학으로 시작, 지금까지 55년 동안 졸업생 6천여 명을 배출했으니 그 공로가 크다. 그러나 예나 지금이나 경제적인 어려움 속에서 운영되는 건 마찬가지다. 건물에 불이 나 학교가 순식간에 사라지자 고등동성당 교리실 등을 전전하기도 했다. 이후 교사와 졸업생·재학생들이 십시일반으로 돈을 모으고, 일일 찻집을 열어 마련한 500만 원으로 수원 평동 개척교회의 한 층을 빌려 다시 학교 문을 열었다. 2011년부터는 수원 매교동의 한 오래된 건물 3층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세월이 흐르면서 야학의 학생층도 변화했다. 1980년대까지는 돈이 없어 정규 중·고등학교에 진학하지 못한 청소년과 청년들이 대다수였다. 1990년대에는 낮엔 일하고 밤에 공부하러 오는 근로 청소년들이 많았다. 그런데 2000년 이후로는 학령기에 배움의 기회를 얻지 못한 60~70대가 급증했다. 지난 8월31일 열린 수원제일평생학교 졸업식에서도 이런 현상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번 졸업생은 초·중·고등학교 학력을 인정받은 48명이었는데 최연소 졸업자는 30살(초등과정), 최고령 졸업생은 77
한 사소한 동기가 있어서 최근에 세계의 국기들을 검색해 열람해 볼 기회가 있었다. 첫눈에는 196개 국가들의 대표상징이 몹시도 다채로워 보였지만, 다양한 국기들의 면면들을 자세히 살펴보니 대동소이하며 오히려 단순함이 느껴졌다. 대다수의 국기들은 3개 정도의 색깔 줄로 구성됐고, 해와 달과 별 혹은 드물게 동물과 식물을 국가의 상징으로 한 경우가 있을 뿐이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하얀 바탕에 빨간 점만 달랑 하나 찍어둔 국기는 참으로 성의 없어 보이기도 했다. 물론 자국의 국기를 처음 디자인할 때에는 모두가 신중하고 엄격했을 테고, 국가의 표징을 담기위해 심사숙고했을 것이다. 하지만 필자의 생각으로는 국기도 유행처럼 먼저 만든 나라의 고정 틀을 벗어나지 못한 점도 있었을 것으로 유추된다. 하지만 196개의 국기 중에 유일무이하게 두드러져 보이는 국기가 있고 모든 국기들의 구성패턴과는 확연히 차이가 보이는 국기가 있으니 바로 태극기다. 태극기는 1883년에 고종의 왕명으로 ‘태극-4괘 도안’을 국기로 제정하여 공포했다고 한다. 흰색 바탕은 밝음과 순수를 뜻하며 평화를 사랑하는 민족성을 나타낸다. “태극은 지극히 존귀한 것으로 만물을
영화는 대중문화의 대표적 매체다. 일상에서 영화만큼 쉽고 편안하게 즐길 만한 경우가 있을까. 여러 사람이 동시에 특정한 영화를 감상하며 정서적 공감을 나누기에는 영화만한 것이 없다. 영화 탄생 100여 년을 훌쩍 넘기고, 텔레비전이나 게임 같은 새로운 매체들이 사람들의 흥미를 분산시켜도 영화의 위상은 굳건하다. 영화 작업을 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어려운 일은 제목을 정하는 일이다. 지금은 마케팅 작업이 여론조사나 빅데이터 등을 활용하는 경우가 많아 통계에 기반을 두는 경향이 강하지만, 조금만 되돌아보아도 ‘감’에 따라 움직인 시절이 있었다. 제작자나 기획자, 시나리오 작가 등이 이런 저런 이야기가 될 것 같다고 제안(추천)하면 그것을 영화 소재로 개발하는 것이다. 그것이 어떤 이야기이든 결국 제목을 정해야 하는데, 간결하면서도 영화의 인상을 결정지을 만한 호소력 있는 경우를 최고로 친다. 한국영화의 경우는 당연히 우리 식대로 짓는다. 소설이나 그 밖의 원작이 있는 경우라면, 그것을 차용하는 경우가 많다. 원작이 확보하고 있는 지명도를 활용하자는 것이 처음부터의 계산이었으니까. ‘춘향전’ ‘심청전’ ‘장화홍련전’ 같은 고전에서부터, ‘별들의 고향’
이스라엘에선 군대에 갔다 오지 않으면 정상적 사회생활이 힘들다. 그래서 젊은이는 누구나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군대에 가려고 한다. 자폐증 청년들도 병역면제는 차별이라고 주장할 정도다. 고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로마인들도 그랬다. 뿐만 아니라 병역의무를 신성시했다. 힘 있는 귀족이든 힘 없는 평민이든 병역을 치러야만 비로소 한 사람의 시민이 된다고 여긴 탓이다. 특히 귀족들의 솔선수범은 강한 군대를 만든 원천이었다. 그들은 전쟁터에 맨 먼저 달려나가고 최전선에서 군대를 이끌었다. 로마가 1000여 년간 번성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로 로마의 ‘강한 군대’를 꼽는 역사가도 있다. 어떤 나라도 그 수준을 넘는 군대를 가질 수 없다.”라는 진리를 새삼 되새기게 한다. 우리나라는 어떠한가? 부끄럽게도 병무행정이 병역기피자들과의 싸움으로 점철돼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도덕적 해이가 심하다. 1960년대부터 지금까지 어느 한해 병역문제로 시끄럽지 않은 해가 없었다. 잊을만 하면 터지는 지도층 자녀들과 유명인들의 병역비리는 사회를 온통 뒤집어 놓기 일쑤였다. 덕분에(?)병역을 면제받는 수법도 기발할 정도로 진화했다. 그런 가운데 45년전 운동선수들을
촉한 제갈량의 북벌을 막아낸 위나라 중신인 사마의 손자 사마염이 건국한 왕조 서진(西晉)의 위항(衛恒)이 쓴 ‘사체서세(四體書勢)’에서 동한(東漢)의 서예가 장지(張芝)의 서예를 논할 때 나오는 구절이 있으니, ‘臨池學書(임지학서)/ 池水盡黑(지수진흑)- 연못에 가서 붓글씨를 연습하니/ 연못의 물이 온통 까맣게 되었다’ ‘사체서세’는 중국 최초의 서예 이론서로서 문자 변천의 역사와 여러 가지 서예의 이론을 상세히 논하고 있는 귀중한 문헌이다. 장지는 붓글씨를 연습하기 위해 집에 있는 모든 옷감은 먼저 붓글씨를 연습한 뒤에 빨았다고 하며 쉼 없이 연못에 가서 종일토록 글씨를 연습하여 연못의 물이 온통 검은색이 되었다고 한다. 그는 특히 초서에 뛰어나서 초성(草聖)이라 불리었다. 동진(東晉)의 왕희지(王羲之) 또한 장지의 경지를 따라잡기 위해 붓글씨를 하도 열심히 연습하는 바람에 나중에는 연못의 물이 완전히 먹물 색이 되고 말았다고 하는 일화도 있다. 당송팔대가의 한 사람인 북송의 증공(曾鞏)은 왕희지의 고사와 관련이 있는 임천(臨川)의 연못을 방문하여 ‘묵지기(墨池記)’라는 명문장을 남겼다고 한다. 글 속에서 증공은 왕희지가 만년에 이르러서야 서예의 완숙한 경
젤소미나 /강영은 젖은 기억은 언제나 오지 않는 기차를 기다리네 비테르보 해안의 작은 마을, 삼류 극장 자막 위에 내리는 비가, 눈 속에 내리는 비가, 빗방울 튀기지 않는 비가, 기차를 기다리네 영화가 끝나도 사람들이 흩어져도 기차는 오지 않네 오지 않는 시간이 빗방울을 굴리네 빗방울 바퀴가 덜거덕 덜거덕 토마토 씨를 심네 가엾은 토마토야, 너의 낡아빠진 북을 잡고 세 번 돌아라. 네 슬픔이 빨갛게 익을 때까지- 시집 ‘상냥한 시론’ / 2018 오후 2시, 마르고 건조한 지중해의 바람이 구름을 몰고 온다. 간헐적으로 들리는 파도 소리에는 아프리카 먼 바다에서 여기까지 흘러온 이국적인 슬픔 한 덩어리가 박혀 있다. 삶이 있으므로, 우리는 그 삶을 어떠한 방식으로든 지속해야 한다. 그때 시인은 비테르보 해안의 작은 마을을 산책하고 있었는데, 변덕스러운 날씨가 몰고 온 소나기를 피하기 위해 잠시 간이역에 들어선다. 시인은 역사 내부에 배치된, 기묘한 중세풍의 건축물과 장식품들을 보면서 비현실적 이미지들이 펼쳐놓은 몽환 속으로 빠져든다. 어느 틈에 ‘젤소미나’의 가늘고 묵직한 곡조를 흥얼거리기 시작한다. 먹고살기 위해 짐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서훈 국가정보원장을 주축으로 하는 대북 특별사절단의 방북(5일)이 다가왔다. 4·27 판문점 선언, 6·12 북미정상회담으로 순항하던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정착 논의가 북미 간 뿌리 깊은 불신 속에 다시 교착에 빠진 현 상태에서 이번 특사단 방북의 의미는 각별하다. 북한이 특사단에 내놓을 메시지는 가깝게는 이달 중 있을 3차 남북정상회담의 성공 여부를 점칠 수 있고, 장기적으로는 한반도 정세의 향배를 알려줄 방향타 역할을 할 것이다. 객관적 환경이 지난 3월 대북 특사단의 방북 때보다 더 녹록하지 않은 엄중한 상황에서 특사단의 어깨에 놓인 짐은 더 무거워졌다. 그리고 남북관계 개선을 통해 북미관계를 견인하겠다는 뜻을 밝힌 만큼 성과도 있어야 한다. 남북정상회담 날짜 확정 및 의제 논의, 남북관계 발전방안 논의,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및 항구적 평화체제 논의 등 특사단이 논의할 의제들이 많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비핵화 문제의 실질적 진전이다. 이런 측면에서 북한의 입장 변화 여부를 주목하고자 한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특사단과 만나 ‘선(先) 종전선언-후(後) 비핵화’라는 기조에 유연성을 보이면서 핵 신고, 핵물질 생산시설…
지난 8월15일 광복절 기념식이 서울 용산에 위치한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렸다. 용산이 내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과 9월 평양에서의 남북 정상회담을 앞둔 시점에서 상징적인 장소였기 때문이다. 용산은 일제강점기 일본의 군사기지였으며 광복 후에는 미군기지가 들어선 착취와 분단의 상징이었다. 광복절 기념식이 이곳에서 열린 것은 역사의 질곡에서 벗어나, 대륙으로 향하는 기점으로 삼고자 하는 이 정부의 의지를 나타낸 것이라고 해석된다. 실제로 문 대통령은 이날 북한이 완전한 비핵화 조치를 한다면 올해 안에 철도 연결 공사를 시작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아울러 경의선과 경원선의 출발지였던 용산에서 동북아 6개국(남한·북한·중국·일본·러시아·몽골)과 미국이 함께 하는 ‘동아시아철도공동체’를 제안했다. 이 제안이 성사된다면 “우리의 경제지평은 북방대륙까지 넓히고 동북아 상생번영의 대동맥이 될 것”이라는 기대감도 숨기지 않았다. 4·27판문점 선언에도 남북 철도와 도로들의 연결 등 10·4선언 합의 사업의 이행이 명시됐다. 경원선은 과거 서울~원산을 이었던 철도였지만 현재는 용산~신탄리 까지만 운행된다. 경의선은 서울~개성~평양, 신의주 등 우리나라 서북부의 대도시
수원화성의 시설 중 가장 멋진 것을 꼽으라고 하면 누구든지 공심돈을 가장 먼저 생각할 것이다. 당시에는 수평적인 건물이 많았는데 그와 달리 공심돈은 높아서 어디에서든지 볼 수 있어 랜드마크 역할을 하였다. 특히 서북공심돈 입면은 다른 공심돈에 비해 더 세장(細長)하여 멋있었다. 남공심돈의 입면은 하부 치성(雉城)과 분절되어 높이감은 없고, 한 칸의 작은 평면은 팔달문과 대비되어 웅장함보다는 소박한 느낌이 앞선다. 동북공심돈은 성곽 내부에 위치하여 치성과 연결되지 않고 평면이 커서 수직적인 맛보다는 오히려 수평적인 면이 보인다. 서북공심돈이 세장하게 보이는 것은 공심돈과 하부 치성이 일치되어 외관상 한 몸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서북공심돈의 위치는 화서문의 동측으로 화서문의 보호와 그 주변을 방어하는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높이 제도는 치성과 공심돈을 하나로 만든 일체형으로 높이는 치성 15척과 공심돈 18척이고 상부에 와가(瓦家) 높이까지 더하면 총 40자(12.32m)가 된다. 내부 공간은 3층이며 수직동선은 동북공심돈의 계단이 아닌 남공심돈과 같은 사다리가 설치되었다. 주공격 무기인 불랑기포(佛朗機砲)를 발사할 수 있게 층별로 20개의 포혈(砲穴)을 뚫었다.
공자는 말년에 다음과 같이 술회했다. 그에 나이 70대 때다. 첫 회고는 육십이이순(六十而耳順) 즉 ‘내 나이 육십에 귀가 순해졌다’고 한 것이다. 이 말은 60세가 되니 거슬리는 남의 말도 이해되고 용서되어 편안하게 들을 수 있게 되었다는 뜻이다. 공자의 말처럼 후대에 많은 사람들은 “우리인생에 있어서 산전수전의 인생사를 겪으며 살아온 60대는 세상사와 사람에 대한 너그러움과 여유가 생긴다”고 한다. 또 역지사지(易地思之)하여 상대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지고 불쾌한 말을 들었어도 젊을 때처럼 조급하게 화를 내거나 서운해 하지 않고 이해하게 된다는 고백도 한다. 그러면서도 점점 귀를 틀어막고 완고해지고 자기고집만 내세우는 마음이 있는 것도 감추지 않는다. 현자들은 나이를 먹을수록 노욕(老慾), 노여움, 노파심(老婆心)의 ‘3노’를 삼가라고 했지만 말이다. 공자는 나이 70에 대해서도 언급 했다. 칠십이종심소욕불유구(七十而從心所慾不踰矩). “내 나이 칠십이 되니 마음이 하자는 대로 해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았다”라고 술회한 것이 그것이다. 70세를 종심(從心)이라고도 했다. 나이 70이 되면 어떤 행동을 하거나 결정을 해도 실수가 없다는 의미인데, 그만큼 산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