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남자 아이스하키의 ‘간판’ 조민호(안양 한라)가 15일 오후 폐암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났다. 향년 35세. 조민호의 소속팀 안양 한라 측은 지난해 10월 폐암 진단을 받았던 조민호가 8개월간 항암 치료를 받아왔으나 삼성서울병원에서 눈을 감았다고 15일 전했다. 1987년 서울 태생인 조민호는 빼어난 실력으로 경기고 시절부터 주목받았으며, 고려대 4학년 시절인 2008년에는 첫 태극 마크를 달았다. 이후 지난해 8월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최종 예선까지 남자 아이스하키 대표팀의 핵심 공격수로 활약했다. 조민호는 한국 남자 아이스하키가 처음으로 올림픽 본선 무대를 밟았던 2018 평창올림픽 체코와의 조별리그 A조 1차전에서 선제골을 넣었으며, 이 골은 한국 아이스하키 사상 올림픽 본선 무대 첫 번째 골로 기록됐다. 2009년 안양 한라 입단 조민호는 정규리그 통산 393경기 124골, 324어시스트를 기록했으며, 아시아 리그 아이스하키 우승 6회를 경험했다. 한편 빈소는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 3호실(02-3410-3151)에 차려졌으며, 발인은 17일 낮 12시 30분이다. 장지는 서울 추모공원 수목장. [ 경기신문 = 김세영 기자 ]
췌장암이라는 병마와 싸워온 유상철 인천유나이티드 명예감독이 7일 오후 7시쯤 5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2002 한일월드컵 4강 등 대한민국 축구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영웅 유상철 감독의 마지막 길, 애도의 물결이 이어졌다. 유 명예감독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는 늦은 시간에도 불구하고 조문객들의 발걸음이 이어졌다. 4강 역사를 함께 쓴 황선홍 전 대전하나시티즌 감독, 최용수 전 FC서울 감독을 비롯해 이천수 대한축구협회 사회공헌위원장, 김병지 대한축구협회 부회장, 현영민 해설위원 등이 빈소를 지켰다. 황 전 감독은 “많이 믿고 따르고 그랬는데 미안하다. 잘 챙겨주지도 못했다”며 “젊은 나이에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는데 좋은 데 가서 편안히 있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남겼다. 최 전 감독 역시 “설마, 설마 했는데 이런 현실과 마주하게 돼 마음이 아프다. 한국 축구 발전을 위해 해줘야 할 몫이 많은 친구인데…”라며 안타까움을 표했다. 축구계 안팎에서도 추모가 이어졌다. 국제축구연맹(FIFA)은 월드컵 공식 계정을 통해 유 감독의 국가대표 시절 사진과 함께 “한 번 월드컵 영웅은 언제나 월드컵 영웅”이라는 글귀로 그를 추모했다. 제주유나이티드와
대한민국 축구 역사 속 최고의 선수를 꼽는다면 많은 선수들의 이름이 거론될 것이다. 하지만 한국 축구 최고의 멀티플레이어를 뽑는다면 한 사람의 이름만 거론된다. 골키퍼를 제외한 모든 포지션에서 자신의 재능을 유감없이 보여주던 선수, 2002 월드컵 4강의 주역, 이제는 별이 된 한국 축구의 영웅 유상철의 발자취를 돌아본다. 1971년 10월 18일 서울특별시 은평구 응암동에서 태어난 유상철은 응암초등학교, 경신중학교, 경신고등학교를 거쳐 건국대학교에 진학해 1994년 드래프트 1순위로 울산 현대에 입단했다. 당시 울산 현대를 이끌던 차범근 감독은 미드필더인 유상철에게 오른쪽 수비를 맡겼고, 그는 26경기에 나서 5골 1도움을 기록, K리그 베스트 11에 오르며 성공적인 데뷔 시즌을 치렀다. 1998년 공격수로 포지션을 바꾼 유상철은 15골 3도움의 성적을 내며 득점왕에 올랐다. 유상철은 울산에서 보낸 9시즌 동안 142경기 37골 9도움을 올리며 1996년과 2005년 팀의 K리그 우승에 기여했다. 유상철의 멀티포지션 소화능력은 처음엔 독으로 작용했다. 여러 포지션을 맡은 탓에 주전 경쟁에서 어려움을 겪었다. 하지만 자신의 장점인 중거리 슈팅과 체력, 몸싸움
한국 바둑의 거목인 김인 9단이 4일 오전 지병으로 별세했다. 향년 78세. 김인은 위암으로 오랜 기간 투병했고 간암으로 전이돼 최근 병세가 악화, 이날 오전 9시쯤 생을 마감했다. 2004년부터 한국기원 이사를 지낸 그는 투병 중에도 바둑 대회 현장을 떠나지 않았다. 중국 등 해외에서 국제 바둑대회가 열리면 늘 한국 대표 선수단의 단장으로 동행했다. 1958년 10월 제8회 입단대회를 통해 바둑계에 입문한 김인은 1960년대부터 1970년대 중반까지 그의 시대를 열었다. 1962년 일본으로 건너가 기타니 미노루(木谷實) 9단의 문하에서 1년 8개월 동안 유학한 후 1963년 귀국했다. 이후 1966년 제1기 왕위전 우승을 시작으로 7연패와 통산 8회 우승을 거머쥐었다. 특히 23세의 김인은 1966년 10기 국수전에서 조남철 9단을 3-1로 꺾고 우승을 차지, 국수 타이틀을 가져오며 현대바둑 사상 첫 세대교체를 이뤘다. 이후 1971년 15기까지 국수전 6연패를 달성했다. 바둑계 김인은 ‘김국수’, ‘영원한 국수’라는 별호로 통했고, 변치 않는 청산으로 불렸다. 그가 9단으로 승단한 건 1983년이다. 63년 간 한국기원 전문기사로 활약하며 통산 1568전
25일 오후 7시 26분쯤 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이 故 이건희 회장을 조문하기 위해 서울 강남구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에 도착했다. 노영민 비서실장은 이호승 경제수석과 함께 조문하기 위해 빈소를 찾았다. 청와대는 이날 앞서 문재인 대통령이 이 회장의 빈소에 조화를 보낼 예정이라고 밝혔다. 덧붙여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에 대한 문재인 대통령의 메시지는 노영민 비서실장이 구두로 유족에게 직접 전달할 예정이라고 해 관심을 모았다. 조문을 마친 노영민 비서실장은 취재진들의 질문에도 침묵을 지키며 자리를 빠져나갔다. [ 경기신문 = 신연경 기자 ]
한국 경제사에 한 획을 그은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장기 투병 끝에 25일 향년 78세를 일기로 별세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이 회장이 치료를 받던 삼성서울병원의 장례식장은 인파로 북적였다. 그의 별세 소식이 알려진 오전부터 장례식장 관계자와 삼성 측 직원들이 이 회장의 빈소 마련을 위해 분주한 모습이었다. 검정 양복을 입고 장례식장에서 대기하고 있는 일부 삼성그룹 임직원들의 모습도 보였다. 아직 빈소가 차려지기 전이었지만, 취재를 위한 취재진이 모여들었다. 지하 2층 출입이 제한된 상황이라, 취재진들은 1층 로비에 포토라인을 설치하고 조문객들을 취재하기 위해 준비했다. 몰려든 취재진 때문에 장례식장 출입구에는 코로나19 확산에 따라 상주와 조문객의 안전을 위해 출입을 제한한다는 안내문이 부착됐다. 삼성 측은 이 회장의 사망 소식을 전하며 “고인과 유가족의 뜻에 따라 장례는 간소하게 가족장으로 치르기로 했다”고 밝혔다. 빈소 내부도 50명 이상 조문은 어려울 것으로 보였다. 이 회장의 빈소는 장례식장 지하 2층 17호, 18호, 19호에 마련될 예정이며, 이날은 가족과 친지들의 조문을 받으며 외부조문은 26일 오전 10시 삼성 사장단을 시작으로 진행된다.
25일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빈소가 차려진 삼성서울병원으로 고인을 추모하는 각계 각층의 조화가 배달되고 있다. 하지만 유가족 측은 “장례는 고인과 유가족의 뜻에 따라 간소하게 가족장으로 치르기로 했다”며 ”조화 정중히 사양하오니 양해해 주시기를 바란다”고 밝혀, 조화가 옮겨지지 못하고 있다. [ 경기신문 = 신연경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