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 경기음악협회·난파연보공동연구위원회 편저
'울 밑에 선 봉선화야 네 모습이 처량하다'로 시작하는 '봉선화'는 일제 강점기 나라를 빼앗긴 우리 민족의 울분을 대변하는 대표 음악으로 자리했다.
불후의 명작인 봉선화는 우리나라 근현대 음악의 기초를 다지고 발전시키는 데 산파역을 담당한 난파 홍영후의 작품이다.
최근 정부의 과거사청산작업 이전까지 만 해도 홍난파는 일제 강점기 우리 민족의 양심적인 음악인, 지식인으로 추앙받아왔다.
1937년 지식인들을 대상으로 일제에 의한 소위 대대적인 '사상전향'이 진행되면서 민족의 양심으로 자리매김했던 홍난파는 친일의 대표적 지식인으로 급전직하하는 불운을 맞게 된다.
반일 양심 인사에서 친일 지식인으로의 전향 논란을 빚고 있는 홍난파의 영욕에 점철된 인생역정을 기록한 '새로 쓴 난파 홍영후 연보'가 난파연보공동연구위원회 편저로 출간돼 눈길을 끈다.
이 연보는 홍난파의 전 생애에 걸친 행적을 정확한 자료를 기초로 객관적 입장에서 규명하는 것을 목적으로 출간됐다.
때문에 연보에는 그의 사상의 변화, 친일 행적 등 논란이 되고 있는 주제에서 비켜나 한국 음악사에서 이룬 업적들을 위주로 하는 삶을 담고있다.
연구자들의 주관적 입장을 반영하지 않기 위해 구술이나 증언만으로 알려져 있는 그에 대한 많은 사실들은 제외했고 오로지 문서화된 자료를 토대로 완성한 것이 특징이다.
책 앞머리에 1939년의 난파 홍영후의 자필이력서 등을 실은 것도 문서화된 자료만을 연보의 자료로 활용했음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연보는 남양군 둔지곶면 활초동(현 화성시 활초동)에서의 출생을 시작으로 1941년 44세의 일기로 생을 마감하기까지 홍난파의 삶을 순서대로 기록하고 있다.
'아이구아이구' 울음 소리가 가득 찼던 1919년.
22세의 난파 홍영후는 편집 겸 발행인으로 잡지 '삼광'을 출간하게 된다.
그는 '우리 조선은 깨는 때 올시다... 암흑에서 광명으로 부자유에서 자유로 나가야 합니다.... 비노니 우리 2천만의 형제여, 같이 힘쓰십시다'는 내용의 창간사를 담기도 했다.
지금까지 이뤄진 대부분의 연구에서 홍난파가 '2·8 독립선언'이나 '3·1운동'에 어떤 식으로 든 관계한 것으로 해석되고 있지만, 어디까지나 추측일 뿐 사실여부가 확인된 것은 아니다.
다만 그가 잡지 '삼광'의 창간사처럼 그의 생각을 피력한 글들이 그의 행적을 추측할 수 있을 뿐이다.
1937년 그의 나이 40세.
홍난파는 같은 해 11월께 '사상전향에 관한 논문'을 제출한다.
여기서 '민족운동을 표방하는 단체에 가맹한 적이 있는 필자는, 그 동기여하와 그 활동유무를 막론하고 후회가 막급할 뿐 아니라 민중의 지도자의 지위에 있는 사람으로서 차제에 부끄러움을 금할 수 없다'고 서술했다.
이제 그를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 죽은 자는 말이 없다.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장은 발간사를 통해 "이 책은 홍난파에 대한 막연한 선입견 또는 주위 의견에 의해 전개되는 풍토에 비춰 하나의 모범적인 선례가 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고 밝혔다.
홍난파를 역사의 치욕적인 인물로 또는 한국 음악사에 큰 족적을 남긴 음악가로 구분하고 판단하는 것은 이제 독자의 몫으로 남겨졌다.
/윤상연기자syyoon@kgnews.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