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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보약] 몸의 균형을 회복하는 일

 

어떤 시간은 멀게 느껴지다가도 때로는 바로 눈앞의 장면처럼 또렷하게 떠오른다. 30년 전 한의과대학에 합격했던 순간도 그렇다. 향우회 선배의 소개로 고향에서 개원 중이던 대선배를 찾아뵙고 식사를 함께한 자리에서 선배는 한의학 책을 건네주셨다. “내 동기가 쓴 책이야.”라며 건넨 책 가운데 한 권의 제목은 ‘음양이 뭐지’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책은 설명이라기보다 질문에 가까웠던 것 같다.

 

서양 과학과 논리에 익숙했던 나에게 음양이라는 개념은 낯설고 막연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공부를 이어가면서 그 의미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고 점차 생생한 개념으로 다가왔다. 그럼에도 진료실에서 환자에게 설명하려 하면 처음 이 개념을 접했을 때의 낯섦이 떠올라, 어떻게 하면 더 쉽게 전달할 수 있을지 고민하게 된다.

 

음양이라는 말은 해가 비치는 언덕의 밝은 쪽을 양, 그늘진 반대편을 음이라 부른 데서 시작되었다. 밝은 쪽이 생기면 자연히 그늘이 생기듯 이 개념에는 상대성이 담겨 있다. 낮과 밤이 교대로 오고 계절이 순환하듯 자연은 늘 두 흐름 속에서 움직인다. ‘주역(周易)’에서는 이를 두고 “일음일양지위도(一陰一陽之謂道)”라 했다. 한 번 음이 되고 한 번 양이 되는 그 끊임없는 변화의 움직임 자체가 곧 대자연의 질서이자 도(道)라는 뜻이다. 한의학에서는 이러한 조화로운 동적 평형이 유지되는 상태를 건강이라 본다.

 

최근의 생리학 연구들은 음양을 인체 조절 시스템의 항상성(Homeostasis)이라는 관점에서 재해석하고 있다. 특히 신경-내분비-면역(NEI) 네트워크 연구는 이를 잘 보여준다. 우리 몸의 뇌와 호르몬, 면역계는 독립된 기관이 아니라 서로 긴밀하게 신호를 주고받으며 하나의 통합된 조절 시스템으로 작동한다.

 

예를 들어 외부의 위협이나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을 때 교감신경이 활성화되는 것은 ‘양’의 급격한 항진으로 볼 수 있다. 이때 분비되는 아드레날린과 코르티솔 같은 호르몬은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에너지를 집중시키지만, 이러한 상태가 장기화되면 면역 기능을 억제하고 만성적인 염증 반응을 유발할 수 있다. 반대로 충분한 휴식과 이완을 담당하는 부교감신경의 활성화는 ‘음’의 보충과 회복에 해당한다. 결국 음양의 조화란 교감신경과 부교감신경, 활동과 휴식, 염증과 항염 반응이 균형을 이루며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해 가는 생리적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임상에서 만나는 많은 환자들은 검사상 뚜렷한 이상이 없는 기능저하 상태를 나타낸다. 피로와 불면, 소화불량, 통증을 호소한다. 오랜 스트레스와 긴장 속에서 자율신경과 호르몬, 면역 조절의 균형이 흔들린 경우가 많다. 이런 상황에서 치료는 과잉된 양을 덜고 음을 회복한다. 단순히 증상을 없애는 데 그치지 않고 몸이 스스로 균형을 회복하도록 돕는 과정이 된다. 충분한 수면과 휴식, 규칙적인 생활, 호흡과 이완 같은 기본적인 회복 과정이 중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황제내경’에서는 음양을 천지의 도이자 만물을 다스리는 근본이라고 말한다. 음양은 서로 다른 힘이 균형을 이루며 끊임없이 변화하는 동적 평형을 보이는 자연의 상태를 표현하는 개념이다. 진정한 건강이란 더 강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몸이 원래 가지고 있던 조화와 균형을 회복하는 것이 아닐까. 이 오래된 지혜는 지금도 여전히 살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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