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19년 전인 1987년 6월 10일, 민주시민들이 전두환 군사독재 정권과 맨주먹으로 맞서서 7년제 체육관 대통령제를 폐기하고 현행 헌법인 87헌법체제를 쟁취해 낸 역사적인 날이다. 사실상 군정을 종식시킨 민권 승리의 날이다.
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본부의 호소에 따라 시위에 나선 시민 학생 노동자들은 이 날만 해도 서울을 비롯한 전국 22개 지역에서 24만명에 이르렀다. 이후 당시 민정당의 노태우 대통령후보가 6.29선언을 발표하기 전날인 28일까지는 전국에서 180만명이 시위에 가담한 것으로 역사는 기록하고 있다.
6월항쟁의 시발점은 서울대생 박종철의 고문치사 사건이 알려진 그 해 2월 7일이었다. 박정희의 암살로 군사 독재시대가 종지부를 찍는 줄 알았던 민주시민들은 더 포악스런 전두환 독재시대를 맞으면서도 좌절하지 않고 끈질긴 항쟁을 계속하고 있었다. 이때 터져 나온 사건이 한 대학생의 고문치사라는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야당까지 아우르는 재야 세력은 즉각 반정부단체인 '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본부'를 결성하고 6월 10일을 기하여 전국적인 항쟁에 나서라고 국민에게 호소했다. 이 날 서울시청 앞에 10여 만 시위군중이 모여든 데는 바로 전날 연세대생 이한열이 학교 앞 시위 도중 머리에 최루탄을 맞아 중태에 빠졌다는 소식도 크게 작용하였다.
6월 항쟁의 결과물이 지금의 헌법이다. 당시 정국의 주도권을 쥔 군부와 3김 씨가 서둘러 만들어낸 미완의 헌법이다. 대통령은 5년 단임이고, 국회의원은 4년 임기인 중앙권력 창출시스템이 문제로 대두된 것이다. 이 때문에 경제도 어려운데 선거를 자주 해야하는 고통이 생겨난 셈이다. 요즘 정치권에서 간헐적으로 흘러나오는 개헌론은 이 87헌법을 시대에 맞게 다시 손질하자는 의미이기도 하다.
6월 항쟁 이후 19년 동안 우리나라는 정치적으로는 크게 변하고 발전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양극화 문제를 포함한 경제 민주화는 전혀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다시 우리 주변의 4대 강국이 한반도에 군침을 흘리고 있는 시대에서 6월 항쟁의 정신은 민족자주를 지향하는 우리 민족에게 큰 교훈이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