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2.19 (목)

  • 맑음동두천 -3.8℃
  • 맑음강릉 -1.9℃
  • 맑음서울 -0.8℃
  • 맑음대전 -2.5℃
  • 맑음대구 -1.4℃
  • 맑음울산 0.2℃
  • 맑음광주 -0.9℃
  • 맑음부산 4.0℃
  • 맑음고창 -4.4℃
  • 맑음제주 5.1℃
  • 맑음강화 -3.1℃
  • 맑음보은 -6.1℃
  • 맑음금산 -4.8℃
  • 맑음강진군 0.0℃
  • 맑음경주시 -2.8℃
  • 맑음거제 1.1℃
기상청 제공

 

민선4기 경기호 선장으로 승선한 김문수 당선자. 그는 1970년대 암울했던 독재시대에 맞서 민주화운동, 농민운동, 노동운동을 통해 우리사회에 희망의 불씨를 지폈다. 눈앞에 닥친일에 비껴가지 않고 정면 돌파하는 행동하는 개척자의 길을 걸어왔다. 그는 '나의 길, 나의 꿈'이라는 저서에서 "평생동안 묵묵히 맡은 일을 성실히하는 노동자들에게서 삶의 기본자세를 배웠다"고 말한다. 현실 정치인으로서의 새삶도 여기에서 출발했다. 항상 노동자의 길을 강조해온 그의 정치인생은 약자와 함께했다. 김 당선자는 이제 '서민지사, 일꾼지사, 소신지사'로서 제2의 정치인생을 설계하고 있다.

#성장기
김 당선자는 1951년 8월27일 경북영천에서 고 김승헌씨와 고 조순조씨와의 사이에서 4남3녀중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경주김씨 문중의 대부로 모든 일에 엄격했다. 어머니는 문중의 큰 며느리로서 강하고 인자했다. 그러나 사흘이 멀다하고 찾아드는 제사와 손님접대에 가계는 바닥이 나지 않을 수 없었다. 김 당선자는 그러나 가난하기는 했지만, 결코 부끄럽지는 않았다고 회고한다.
김 당선자는 이런 부모밑에서 자랐고, 굽힘없는 그의 소신은 이때부터 싹텄다.

#학창시절
"나는 공부가 정말 재미 있었다." 그는 영천군에서 1등을 놓치지 않을 정도로 학업성적이 우수했다. 김 당선자는 "초등학교 5.6년 담임이었던 배인수 선생님이 문제집과 참고서를 따로 챙겨주시며 공부를 독려, 도회지 아이들에게도 뒤지지 않은 실력을 키울 수 있었다"고 했다. 그는 영천군 전체에서 3명만 합격한 대구 경북중학교에 무난히 입학했다. 그는 자연스럽게 경주김씨 문중의 '떠오르는 별'이 됐고, 그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경북고등학교에 입학하기에 이르렀다.

#고난의 시작
1969년 가을. 김 당선자가 서울대학교를 목표로 공부하던 고등학교 3학년 2학기때의 일이다. 당시 3선 개헌 반대시위가 한창이었다. 김 당선자는 어려움에 처한 나라를 구하자는 명분을 앞세워 친구들과 함께 3선 개헌 반대시위를 주동했다. 시위는 성명서를 낭독하고 해산하는 정도였지만 그에게는 닥친 것은 '무기정학' 처분이었다. 대학입시를 불과 몇달 남겨놓지 않은 상황이 그랬지만 그의 울분은 딴데 있었다. 무기정학을 받은 이유이다. 사회교과서를 뒤지며 (무기정학 처분)이유를 생각해 보았지만 어떠한 잘못도 찾아볼 수 없었다. 옳은 것을 끝까지 주장하는 것은 지금도 변화지 않은 성격이다. 그는 스스로 "쓸쓸한 바보처럼 갈림길마다 고독하고 가난한 길을 걸었다"고 말한다.

#대학입학과 위장취업
그는 무기정학 처분을 받는 우여곡절 끝에 서울대 상과대학 경영학과에 입학했다. 그러나 그의 대학생활은 이미 예고한 듯 순탄하지 않았다. 이듬해인 1971년 부정부패척결 전국 학생시위에 연루돼 제적 당한다. 사회에 눈을 떠 공인으로서 길을 걷기 시작한 것은 이때 쯤이다. 구로공단 옆 안양천 뚝방길 근처 논바닥에 자리잡은 '드레스 미싱공장'. 그가 택한 사회진출의 첫발이자 첫 직장이었다.
1970년 11월 대학1학년 때 발생한 전태일 열사의 분신사건이 계기였다. 그의 활동은 이후 고향에서의 4H운동, 야학, 청계천 피복공장 재단보조공 생활로 이어진다.


#구속과 석방
그는 24년간 노동운동의 길을 걸어왔다. 대학 1학년이던 1970년 민청학련 사건으로 제적된 때부터 94년 복학해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다. 이 기간 전국금속노동조합 한일도루코 노조에 가입하고 첫 감옥 생활을 경험했다. 이후 구속과 석방을 되풀이하다 86년 5.3 인천사태로 2년6개월간 복역했다. 90년대 이후에는 '경인지역 노동운동계의 대부'가 됐다. 그는 당시 "부패한 군사독재정권을 무너뜨리고 빈부격차를 심화시키는 자본주의 체제를 깨뜨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부인 설난영씨도 구로공단 내 한 공장의 노조위원장 출신이다.
그는 "노동자생활에 발을 들여 놓으면 놓을수록 밑바닥 생활을 참고 견디는 노동자에 대한 존경심이 더해갔다" 회고했다.

#정치입문과 도전
1994년 3월8일. 그가 현실정치에 뛰어든 날이다. 김영삼 대통령이 총재로 있던 민주자유당 부천소사지구당 조직책을 맡은 것이 시작이다. 그러나 어색했다. 주위의 반응도 그랬다. 급진 노동운동가가 어떻게 집권보수당에 입당했느냐가 이유이다. 그는 지금도 자신의 길을 "아직도 나는 넥타이가 어색하다"말에 비유한다.
그는 96년 4.11총선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되면서 부천 소사에서 내리 3번이나 국회입성에 성공했다. 10여년 동안의 짧지않은 기간이다. 의정활동 기간동안 한빛은행 대출관련 의혹사건, 김대중 정부 대북 뒷거래 진상조사 특위 등으로 활동하며 저격수 정치인으로서의 강한 인상을 남겼다. 그런 그가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고 있다. 할일 많은 경기도를 위해서다. /구대서기자 kds@kgnews.co.kr








COVER 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