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러 측면에서 닮아있는 그들과 내년에는 더욱 더 발전된 모습으로 독자들의 앞에 설 것을 약속해 본다.
-편집자 주-.
# "전통은 지키되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2002년 본보 탄생과 함께 사단법인 화성재인청보존회도 힘차게 출발했다.
우리의 것이 점차 사라지고 경시되던 그 시기에 한국의 혼을 고집하며 정신적 혼을 그대로 보존·보급하기 위해 화성재인청 기예들의 후손들이 뭉친 것이다.
'재인청'은 광대청(廣大廳)·장악청(掌樂廳)·신청(神廳)·풍류방(風流房)·공인청(工人廳) 이라고도 했었다.
과거에는 창악(唱歌)·기악(妓樂)·무악(舞樂)·재담·줄타기곡예 등 한 두 가지 기예를 가진 직업예능인들의 연예활동을 행정적으로 관리하던 곳이었다.
재인청은 경기도·충청도·전라도 등의 각 군(郡)에 자리해 있었으며 이 가운데 경기도의 재인청은 화성군(지금의 수원)에 그 뿌리를 두고 있었다.
현재 수원 북수동 소재 전수회관에 자리잡은 화성재인청이 갖는 의미는 여기서 출발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과거 수원지방에 거주하는 재인은 물론 안성·용인·광주·청주·안산 등지에 사는 재인들까지 재인청에 의무적으로 입계(入契)해야 했다.
그 방대한 인원들이 풀어내는 각종 기예들이 모여지고 풀어지던 화성군 재인청 바로 그곳에서 태동했기 때문이다.
화성재인청의 마지막 예인이었던 운학 이동안 선생은 수원의 화령전(수원시 신풍동 소재, 사적 115)에서 옥당 정경파 선생에게 화성재인청류의 춤과 장단을 사사했고, 1991년 화성재인청류의 춤인 승무와 살풀이춤이 경기도무형문화재 제8호로 지정됐다.
이후 운학과 옥당 선생의 뜻을 이어 받은 현 경기도무형문화재 제8호 승무, 살풀이 춤의 예능보유자인 송악 김복련 선생이 화성재인청의 정신을 되살릴 수 있는 (사)화성재인청보존회를 설립했다.
현재 보존회는 학술연구부와 교육개발부, 그리고 무용·풍물·민요·정가·기악의 5개 예능분과로 구성돼 있다.
화성재인청 계열의 기예 뿐만 아니라 가무악을 총체적으로 다루며 학술적인 연구와 전문교육인 양성을 병행하고 있다.
최근에는 경기도무형문화재 제8호 전수조교인 신현숙씨가 수원대 강사로 활동하며 학생들에게 전통을 알리고 그들이 습득한 전통을 펼칠 수 있는 공간을 직접 마련했다.
기예를 배운 수원대와 한국체대 학생들이 직접 출연해 펼치는 기예 공연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경기도문화의전당 대공연장 무대에서 27일 펼쳐지는 '가무악으로 풀어보는 화성재인청' 공연은 우리의 전통을 지키려는 학생들의 열정을 한 눈에 볼 수 있다.
전통의 가치를 알고 그것을 고수·전수하면서도 시대의 변화에 따라 신선한 시도를 하고 있는 것이다.
# "시행착오는 무섭지 않다. 이를 바탕으로 나는 '최고'가 되리라!"
최근 수원미술전시관의 신진작가 기획전에서 만난 이호철(29)씨는 아직 작가라는 말이 어색한, 그러나 무한한 가능성과 열정 만큼은 가히 '최고'라는 수식어가 어울리는 사람이다.
마치 오랜 지령(紙齡)을 자랑하는 타 지역지들의 연륜에는 못 미치지만 독자사랑 마음과 열정은 결코 뒤지지 않는 본보처럼 말이다.
경상남도 마산에서 태어난 이 작가는 모든 면에서 언제나 '1등'이었다고 한다.
가난한 어린시절 남들에게는 '안타까운' 환경이었을 지도 모르지만, 그에겐 그런 상황이 오히려 지금의 자신을 있게한 자극제였다고 회상한다.
그는 그렇게 자신에 대한 확신과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끝없이 노력하는 등 자기관리를 게을리하지 않는 작가다.
'서울 입성' 과정과 앞으로의 '미국 진출기'만을 봐도 그렇다.
어려서부터 그림을 그려 재능을 뽐냈고 그 어떤 대회 든 나가면 최우수상을 거머쥐면서 자신만만하게 대학에 들어갔다.
그러나 같은 시기 누나의 추천으로 서울에서 대학 시험을 보고 떨어지면서 자신이 '최고'가 아님을 깨달았다고 한다.
결국 그는 안전한 틀을 깨고 서울로 올라와 미술입시학원의 '기초반'부터 다시 시작했다. 또 1년간 원하는 학과 성적을 얻기 위해 모든 것을 잊고 공부에만 매달렸다.
그렇게 입학한 홍익대 판화과에서도 그는 교수들에게 '눈엣가시'였다고 한다.
그도 그럴것이 변변한 작업실도 없던 그는 끝없이 샘솟는 창작욕구 해결을 위해 늦은 밤 학교로 숨어들어 '위험한' 작업을 시시때때 실행했다.
이같은 열정은 드디어 빛을 발했고 최근 열린 전시회에서는 '수목화'라는 새로운 장르의 작품을 선보여 주목받았다.
'수묵화'를 잘못 쓴 것 아닌가? 아니다.
그가 개척한 '수목화'는 물과 나무를 이용해 작품을 만드는 새로운 장르의 출발이다.
당초 판화를 하던 그는 불을 활용해 새로운 작업을 시도했지만 머릿 속 계획과는 달리 불이 맘대로 조절되지 않았다.
이것저것 새로운 것을 시도하던 그는 물로 원하는 형상의 그림을 그리고 그 나머지 부분을 불로 태워 나타난 나무의 고유 색깔과 그을린 판의 색 차이를 통해 명암이 있는 작품을 완성하기에 이렀다.
"문턱낮은 미술관을 이야기하지만 점점 권위적인 전시장이 되어가는 것 같아 안타까워요. 미술은 정말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미국에 가서 또 새로운 것을 추구하고 얻어 올
꺼예요. 힘든 그곳에서의 생활이 저를 더욱 강하게 만들어 줄 것이라 확신합니다."
그는 이제 또 다시 새로운 길을 나선다. 더 나은 미래를 확신하며....
# "학연·지연이 없는 순수함을 추구하며, 온·오프라인을 모두 석권하는 그날까지."
사람들의 감수성과 삶의 진리를 전하는 인문서적 등 문학은 가장 대우 받았던 서점에서조차 참고서와 수험서에 자리를 내주고 한 귀퉁이에 방치(?)돼 있는게 현실이다.
게다가 인터넷의 보급으로 70∼80년대 활자문화에만 머물 수 없는 절체절명의 상황에 처해 있다.
이제 문학도 달라져야 할 때다. 폐쇄적인 활동으로 특정 작가들만 모여 활동하며 우월감을 가지기보다는 직접 독자들을 찾아 문학의 정감을 전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같은 문학계의 변화를 위해 도전을 두려워 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나선 '문학파'들이 있다.
'대한문인협회'로 태동해 2000년 창립된 (사)창작문학예술인협의회 회원들이 바로 그들이다.
이들은 처음 '문학의 기본법칙을 세우자'는 목표 아래 온·오프라인에서 활동하는 순수한 작가들끼리 만남을 갖다가 조직화된 지금의 문인협회를 결성하게 됐다.
모임 성격이 이러하다보니 한국의 고질병에 속하는 학연·지연을 따지는 회원도 없으며 온·오프라인 두 가지 성격의 통로를 적극 활용하는 '신세대' 문인협회로 성장할 수 있었다.
이제 창작문학예술인협의회는 산하단체로 대한문인협회·대한시낭송작가협회·대한멀티영상아티스트협회를 거느리게 됐다.
문학창작 및 시낭송인 발굴·영상매체의 활성화 등 종합예술단체로써의 이름에 걸맞게 다양한 활동을 벌이기 위한 기본 인프라다.
이들은 2004년 5월 대전엑스포 내의 국제회의장에서 펼쳐진 종합예술제에서 신진작가들을 위한 문학대회를 주관하고, 시낭송대회를 열기도 했다.
이후 대중에게 가까이 다가가기 위한 시도로 전국 문인단체로는 처음으로 서울상암월드컵경기장 앞에서 시화전을 열고 전국 곳곳에서 시낭송대회를 진행했다.
이달에는 전국의 시인들을 대상으로 '전국창작육성시낭송대회'도 열 예정이다.
문인협회 경기도지부도 신인들로 구성된 창작문학예술인협의회의 변화 움직임에 동조, 이들이 진행하는 행사들을 적극적으로 후원하며 함께 하고 있다.
전국지부 가운데 가장 많은 회원작가수를 자랑하며 변화를 꾀하고 있는 그들의 행보가 주목받는 이유다.
"한국 문단의 화두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는 그날까지 독자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서 쉽게 문학을 알리는 것이 궁극적 목표"라고 말하는 그들에게서 문학계의 새로운 희망이 피어오르고 있음을 느낀다. /류설아기자 rsa@kgnews.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