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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의 역사

이명수 경기향토사학부회장

월드컵의 태동(胎動)은 FIFA(Federation.Internationale.de.Football.Associarion
:국제축구연명 유래(由來)와 함께 시작되었다. 세계적인 축구연합(蹴球聯合)의 결성 필요에 따라 1904년 5월 21일 프랑스 파리에서 유럽7개국의 주도(主導)로 창설된 FIFA는 1904년 5월 23일 1차 총회를 갖고 로베르게링을 초대 회장으로 선출(選出)역사적인 첫 삽을 떴다. 저널리스트(Journalism:신문방송잡지 기자 편집 기고가)출신의 게링 회장은 부임(赴任)이후 세계 축구 선수권대회를 열어 오늘날에 월드컵을 탄생시키기 위해 노력 했으나 그렇게 쉽지는 않았다. 1906년 게링 회장의 바통을 이어받은 후임(後任) 잉글랜드 출신의 다니엘 울폴 FIFA 제2대 회장 역시 축구 규칙 표준화 작업에 열중하는 한편 세계 각국이 참가하는 범 지구촌 축구 대회를 개최하기 위해 무척 애를 쓰며 노력했지만 끝내 그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더군다나 1914년 제1차 세계 대전 발발로 월드컵에 대한 논의는 점차 수면(水面)아래로 가라앉고 말았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마침내 세계 축구사의 흐름을 바꾼 영웅으로 탄생 했다. 바로 월드컵의 창시자(創始者)인 줄리메가 장본인이다. 1920년대 초반 3대 FIFA 회장으로 취임(就任)한 프랑스 출신의 위대한 축구 행정가였던 그는 강한 리더쉽과 저돌적인 추진력을 앞세워 1926년 월드컵 개최(開催)를 한다는 내용의 안건을 마련했으며 1928년 FIFA 총회에 상정(上程)하여 압도적인 표차로 가결(可決)을 이끌어 냈다. 실로 20여년에 걸친 노력의 결실로 맺어지는 순간이였다. 줄리메는 1929년 FIFA 총회를 열어 우루과이를 제1회 월드컵 개최지(開催地)로 정했다. 우루과이 축구 협회는 월드컵의 원년(元年)인 1930년이 자국(自國)의 독립 100주년이며 우루과이가 1924년~1928년 올림픽 축구 종목에서 잇달아 금메달을 차지한 축구강국이며 시대를 잘 타고 났다는 점을 크게 강조(强調)하여 결국 FIFA는 우루과이의 끈질긴 요청을 받아들였다. 근대개념(近代槪念)의 축구가 한국 땅에 뿌리 내린지 120여년이 지났다. 한국 축구는 축구 종가(宗家) 영국의 피를 물려 받았다. 1882년 6월(고종19) 영국해군 군함‘플라잉피시’호가 인천 제물포항에 입항 연안부두가에서 볼을 찬 것이 한국 축구의 첫 걸음 이였다. 그리고 그 동안 한국 축구는 한민족의 울분과 눈물 감격과 환희를 함께 했다. 일제 식민지 시절 울분을 달랬으며 광복 이후에는 굶주린 서민들의 활력소 역할을 했다. TV가 없었던 시절 라디오를 통해 시시각각 전해 오는 태극전사들의 활약에 귀를 기울여 온 국민은 마음 조아려 가며 웃고 울어야 했다. 1954년 스위스 월드컵은 6월 16일부터 7월 4일까지 열렸다. 한국 축구 사상 처음으로 김용식 감독과 선수 12명이 취리히에 도착한 것은 6월 16일 대회는 이미 막이 올라 있었다. 한국 경기는 이튿날 오후3시에 벌어졌다. 쉬운 여정이 아니였다. 6.25 한국전쟁의 폐허(廢墟)속에 미군 수송기를 얻어 타고 예순 네 시간의 불편하고 어렵게 가야만 했다. 여행사의 실수로 12명이 먼저 도착한 후 2진은 경기 직전에야 스위스 땅을 밟을 수 있었다. 전쟁 휴전 직후 어려운 경제 사정 때문에 사전(事前)에 미리 현지에 도착해서 전지 적응 훈련을 할 수 없었다. 6월 17일 결전의 날 취리히 하르르푸름 경기장에서 헝가리 팀에게 0대9로 대패했다. 2차전은 6월 20일 벌어진 터키전에서 0대7로 패한 것에 만족해야 했다. 이로써 한국은 2전 전패로 조별예선 탈락이 확정 됐고 서독과의 마지막 예선경기는 열리지 않았다. 스위스 월드컵에서 얻은 가장 큰 수확은 세계의 축구의 벽을 확인 했다는 것이다. 또 월드컵 후광 효과는 국내 대회의 활성화로 이어졌다. 대한축구협회는 2,000년 히딩크 감독을 영입하는데 성공했다. 히딩크 감독은 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 네덜란드를 4강으로 이끈 세계 지도자중 한 사람이였다. 2,002년 한국 월드컵은 온 국민이 연호하는 가운데 붉은 악마의 다섯 박자는 선수들에게 활기(活氣)를 주어 태극전사들의 사기(士氣)는 하늘을 치솟아 월드컵 사상 4강이라는 신화(神話)를 낳았다. 2,006년 6월 13일 토고와의 일전(一戰)을 아드보카트 감독과 25명의 태극전사들 최선을 다하여 오! 필승 코리아 어게인(Again:다시한번)은2,002년의 올해로 이어져 2,006년 이번 독일 월드컵에도 4강의 신화를 낳아 훗날 세계 월드컵 역사의 한 페이지에 기록되었으면 하는 바램을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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