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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지계(百年之計)와 권의지계(權宜之計)

정호순(경기도 국악당 교육연구팀장)

어느 화창한 토요일 오후, 초등학교와 골목 하나로 연결되어있는 아파트가 술렁거렸다. 초등학교 특기적성 발표회에 참석하기 위해 한껏 차려입고 카메라를 둘러 맨 가족들의 얼굴은 기대감에 부풀어 있었다. ‘우리 아이가 오늘 무대에 서는데 이 정도 성의는 보여야지.’ 예쁜 꽃다발까지 품에 안은 꼬마들까지 가히 작은 졸업식 분위기였다. 그런데 발표회장에 들어서면서 가족들의 기대는 무너졌다. 평범한 교실에 간이 의자를 놓은 발표장. 음향장비며 진행 준비가 불충분한 상황에서 몇 십분 씩 기다려야 했다. 우여곡절 끝에 시작된 발표회 첫 순서는 마술이었다. 발표장을 가득 메우고도 들어서지 못한 가족들은 까치발을 들어야했다. 천이 펄럭이고 솜씨를 자랑하는 아이의 모습이 보일 듯 말 듯, 준비한 카메라로 사진이라도 한 장 남겨야 한다는 의지로 이리저리 틈을 비집고 자리를 옮겨봤지만 허사였다. 급기야는 여기저기서 불만의 소리가 터져 나왔고 발표회는 중단되었다.
그 다음은 어떻게 되었을까? 진행 관리를 하는 담당 교사가 나갔다 들어오더니 강당으로 발표장을 옮긴단다. 그리고보니 심각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나시던 분이 교감 선생님이었던 것도 같다. 의자를 하나씩 들고 옮겨간 발표장은 한결 나았다. 무대 위에 선 아이들의 모습은 보였으니까 말이다. 그 덕분에 두 시간 정도 예정이던 발표회 시간이 길어졌으나 몇 달씩 배우고 준비한 솜씨는 찰나로 끝났으니 허무하기 이를 데 없었다. 한 어머니는 당장이라도 건의하고 싶지만 아이를 맡겨 논 죄인이라며 발걸음을 돌렸다. 어떤 초등학교 특기적성교육 발표회장에서 있었던 일이다.
특기적성교육은 전국에 있는 초중고등학교의 90% 이상이 실시하고 있다. 청소년의 소질과 적성을 개발하기 위한 특별교육을 정규학교에서 운영하여 창의적 인재를 육성하겠다는 의지이다. 과거와 같이 학교 교과과정만으로는 21세기형 교육을 감당할 수 없다는 합의가 제도적으로 실천되고 있는 셈이다. 컴퓨터나 영어와 같이 교과과정의 연장이랄 수 있는 실용적 교육부터 연극, 음악, 미술, 무용과 같은 예술교육까지 참으로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운영되고 있다. 저렴한 비용으로 믿을 수 있는 학교에서 운영하는 것이니 일석이조요, 아이의 특기가 발견되어 진로를 결정할 수 있다면 일석 삼조가 아닌가!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학교의 기반 시설 미비, 비정규 지도교사, 질 높은 프로그램 개발과 운영의 문제 등은 차치하고라도 교육운영주체의 불철저한 인식이 수정되어야 한다. 물론 학력증진에 몰두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특기적성교육의 실행 자체는 큰 의미를 지닌다. 그러나 산재한 문제를 핑계로 형식적인 진행에 만족하는 것은 교육을 백년대계(百年之計)로 생각해온 한국민에게는 어울리지 않는다. 특기적성교육을 수학능력에 도움을 주는 보조적인 역할로 규정하고, 교육정책에 따라 형식적으로 운영한다면 그야말로 시류에 영합하는 권의지계(權宜之計)에 머물게 될 것이다.
특히 문화예술교육에 대한 패러다임 전환이 얼마나 힘겹게 이루어졌는가를 되돌이켜 본다면 실행 그 자체로 만족해서는 안 된다. 문화예술교육은 단순히 한 가지 악기를 배우고 다루는 기능교육이 아니다. 감성을 일깨워 자아를 찾아가는 창의적 과정이며, 차이를 인정하고 다양성을 수용하는 열린 교육의 근원이다. 문화예술교육을 받은 어린이의 경우,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더 뛰어난 학습능력을 보인다는 결과보고는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그리고 교육의 성과는 한순간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 해 말 제정되어 올해 6월, 시행에 들어간 문화예술교육지원법에 다시 한번 큰 기대를 걸게 된다. 지역의 공공기반 문화기관과 학교를 연계하여 협력체제를 구축하고, 전문예술인들과 청소년들이 만날 수 있도록 다각적이고 실제적인 문화예술교육지원을 펼치기 바란다. 문화예술교육은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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