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래 마을 주민은 아니었지만 1997년 말 마을 어귀에 자리한 사찰을 다니며 부래미 마을 주민과 인연을 맺었다. 이후 98년 순박한 마을 사람들에게 끌려 삶터를 이 곳으로 옮겼고 단독으로 도예 프로그램을 실시했다.
2003년 농촌체험마을로 지정되면서 본격적으로 친구들을 불러모아 마을에 그림을 그리고, 각 농가마다 주인의 이름과 재배식물을 기록한 목간판을 만들어 세우는 등 마을 곳곳에 문화 내음이 풍기도록 발품을 팔았다.
부래미 마을이 농촌생체체험프로그램의 ‘모범사례’가 될 수 있도록 물꼬를 튼 것.
하지만 그는 “제가 만든것이 아니죠”라며 겸손의 말을 먼저 꺼낸다.
이어 “마을 주민이 주인으로서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마을도 가꿔야 진정한 농촌생체체험마을이 가능하고 계속 이어갈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해요”라고 덧붙인다.
어쨌든 마을 조성에 정성을 쏟았던 그에게 섭섭하지 않냐고 재차 물어봤더니 그제서야 속내를 드러내보인다.
“섭섭한 것은 없죠. 종합개발사업으로 목간판같은 것은 사라지고 도식화된 표지판들이 계획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런 것이 아쉽고 안타까울 뿐이죠. 도시화되는 것을 선호하는 농촌사람들의 마음이야 다 알잖아요. 다만 도시민들이 이곳을 찾는 이유가 전형적인 농촌의 멋과 여유를 느끼기 위해서라는 사실을 기억하고 지금의 전통을 지켜갈 수 있기를 바랄 뿐이죠.”
/류설아기자 rsa@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