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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워경기 2006)승무로 일궈낸 ‘춤사위 훈장’

초등학교때부터 북장단에 맞춰 몸짓
결혼후 정경파선생 만나 전통춤 도전
보존회 설립하고 이수자배출에 온힘

 

마음 깊은 곳에서 술렁이던 고뇌를 잠재우듯 목탁소리가 울려퍼진다. ‘얇은 사(紗) 하이얀 고깔’을 머리에 쓰고 천천히 고개를 든다. 땅의 기운을 이끌어내 하늘로 올리듯 온 몸을 세우고 흰 장삼을 휘날린다. 가녀린 몸, 그 구석구석의 응어리진 한을 쏟아내는지 양 손에 든 북채로 둥둥 깊은 울림을 만든다. 화성재인청류 승무를 추는 송악 김복련(58)<사진>은 사라지고 산사의 한 승녀가 무대위에 서 있다.
경기도 무형문화재 제8호 승무와 살풀이춤 예능 보유자 송악 김복련은 춤 없이 살 수 없는 이다. 초등학교 5학년때부터 김정희 선생에게 춤을 배웠고, 집에 돌아가면 할아버지 북 장단에 맞춰 몸짓을 익혔다. 하지만 어려서 배운 그 몸짓이 삶의 전부를 차지할 줄은 몰랐다. 20대 초반, 비교적 일찍 결혼을 하고 춤 추는 것을 멈췄기 때문이다. 수원에 터를 잡고 아이들을 키우며 평범한 주부의 삶을 채워나갔다.
하지만 그의 몸은 춤이 없는 삶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아니, 안했다. 일어서지 못할 정도로 몸이 아팠던 것이다. 병원에서도 그 원인을 찾지 못했다. 고작 ‘신경성이다’라는 것이 그가 받은 진단, 전부였다.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무당을 찾아가기도 했다. 춤을 춰야겠다. 막연히 죽음의 문턱에서 든 생각이다.
지친 몸을 이끌고 당시 승무와 살풀이춤 보유자였던 옥당 정경파 선생이 있는 수원 화령전으로 향했다. 그 때가 1985년, 그의 새로운 인생이 시작된 시점이다.
“(정경파 선생님이)화령전 마루에 앉아서 무섭게 쳐다보는데 움직일 수가 없었어요. 근데 날 보고 딱 한 마디 하시는거예요. ‘신빨이 굉장한데 몸이 많이 아프구만, 이리와 봐’라고...”
그렇게 맺은 인연을 시작으로 승무와 살풀이를 3개월만에 익히고 첫 무대에 섰을 때 친척과 친구들은 박수를 치면서 울었다고 한다. 곧 죽을 사람처럼 걷지도 못했던 그가 하얀 장삼을 휘날리며 춤을 췄기 때문이다. 이후(95년) 지병을 앓고 있던 옥당 정경파 선생 아래에서 전수조교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서울을 오가며 화성재인청 마지막 예인이었던 운학 이동안에게 재인청의 기본무와 승무 등을 사사받았다.
“무형문화재가 뭔지도 몰랐어요. 그저 발품 팔면서 살기 위해 춤을 배웠고, 내 안의 액과 다른 사람의 살을 모두 풀어버리는 것이 내가 춤을 춘 전부였죠.”
춤을 추지 않으면 살 수가 없었기 때문에 무형문화재 지정에는 욕심도 없었다. 하지만 무형문화재로 지정되기 위한 춤꾼들의 치열한 ‘전쟁’이 벌어졌고 그런 상황을 견디다 못해 99년에 오산으로 터를 옮겼다. 하지만 그가 말하듯 춤이 ‘팔짜’였는지 1년후 정경파 선생이 세상을 뜨고 그 빈 자리를 메우기 위해 ‘흥행에 성공한’ 오산의 학원을 버리고 다시 수원으로 올라왔다.
2002년 무형문화재 제8호 승무·살풀이 보유자로 지정받은 그는 많은 선생을 통해 익힌 화성재인청 기예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경기도 예인의 맥을 이어가기 위해 춤은 물론 장단부터 학술적 내용까지 모든 것을 총망라하는 작업을 시작했고, 2003년에 (사)화성재인청보존회를 설립하며 더욱 전통문화살리기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현대·창작춤에 대한 지원에 비해 전통춤은 버림받은 듯하지만 그 맥을 이어가야한다는 의무감과 책임감을 버릴 수 없습니다. 승무와 살풀이 등 경기도의 전통춤은 그 어느 것에 비교해도 가치가 높다고 확신합니다”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에, 이미 25명의 이수자를 배출한 그가 전통춤을 가르치고 확산하는데에 ‘올인’하는 이유다. 살기 위해 시작했던 그의 춤은 이제 경기도 전통춤의 큰 맥을 이루고 다른 이들의 고통을 풀어주는 몸짓으로 승화됐다. 그가 더 큰 맥, 더 깊은 몸짓을 보여주기를 응원해본다.

/류설아 rsa@kg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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