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3.04 (수)

  • 맑음동두천 0.0℃
  • 구름많음강릉 2.6℃
  • 맑음서울 3.3℃
  • 맑음대전 3.5℃
  • 흐림대구 5.9℃
  • 흐림울산 5.3℃
  • 맑음광주 5.8℃
  • 구름많음부산 6.3℃
  • 맑음고창 2.3℃
  • 맑음제주 8.9℃
  • 구름많음강화 2.8℃
  • 맑음보은 1.6℃
  • 구름많음금산 2.7℃
  • 맑음강진군 3.2℃
  • 흐림경주시 5.5℃
  • 흐림거제 5.7℃
기상청 제공

박수근 화백과 ‘굴비’

김 이 경 수필가

 

손가락 하나는 족히 들어갈 듯 싶게 가슴이 움푹 패어 있다. 살점을 도려내듯 파고 들었던 상흔이 생생하다. 패인 가슴 아래라 배는 더 불룩해 보인다. 해산을 앞둔 임부였을까, 분만이라도 할 것 같은 배를 가누지 못해 온몸을 힘없이 늘어뜨렸다. 한쪽 구석에 흐릿한 동공의 흔적, 덮어줄 눈까풀조차 없는 안구는 무채색의 허공이다.
박수근 화백의 ‘굴비’를 보고 있다. 꼼꼼히 훑어본다.
두 마리 굴비를 검은 선으로 구분해 놓았지만, 그런 붓질로는 그들을 떼어놓지 못한다. 경계선은 오히려 뒤편에 누운 녀석의 살 속을 파고드는 몸부림이 된다. 그것을 뒤에 있는 녀석이 온몸으로 싸안아준다. 꼬리지느러미까지 쳐들어 받쳐주고 있다. 그러나 표정만큼은 서로 다르다. 한 줄에 엮여진 후 피를 말리고 살을 말리는 시간을 함께 했을 그들이 아닌가. 굴비 두 마리의 표정에서 눈을 뗄 수가 없다.
움푹 꺼진 눈만큼이나 지쳐 있는 어순이, 앙다문 입술만큼이나 노한 어돌이, 뒤에 있는 녀석은 어쩌면 앞에 있는 녀석의 지아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 이름을 붙여보다 고개를 흔든다. 모두가 알배기를 엮어놓았을 터이니 그들은 모녀 사이거나 자매간 일지도 모른다. 그러면 어떠랴. 두 녀석의 이름은 그냥 어순이, 어돌이라 부르자.
‘굴비’는 캔버스 대신 하드보드지에 그린 겨우 3호짜리 그림이다. 캔버스가 비싸 하드 보드지를 사용했고, 물감이 많이 들어 작은 그림을 그렸다는 화가 박수근. 오늘날에는 가장 한국적이면서 가장 현대적인 화가로 평가되고 추앙받는 화가이다. ‘굴비’처럼 작은 그림도 수억을 호가한다고 한다.
그러나 그의 삶은 가난이라는 질곡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1914년 강원도 양구에서 부농의 아들로 태어났으나 일곱 살 되던 해에 부친이 광산사업에 실패해 보통학교밖에 다니질 못했다. 독학으로 이루어낸 화가의 길에서 그의 천재성과 함께 가난의 그늘을 본다.
‘굴비’가 누워있는 곳도 역시 화강암의 돌바닥이다. 다른 점이라면 식당에 걸어 놓으면 사람들이 진짜 굴비인 줄 알만큼 너무나 사실적이라는 것이다.
다른 그림들이 입을 다물고 침묵하며 그 속에 빠져드는 사람에게 천천히 말을 거는 대신, ‘굴비’는 상처와 분노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며 말을 걸어온다. 그러나 누가 선뜻 그들의 분노와 절망에 답을 줄 수 있을 것인가? 평생 가야 기름진 굴비살 한 점 입에 넣어볼 수 없는 가난한 사람들. 분노와 기다림은 그들 자신의 것인지도 모른다.
대갓집 부엌에나 걸려있음직 한 어순이, 어돌이를 보고 그들의 심경을 헤아리기도 전 먼저 노한 것은 아니었을까.
그림 속에 조용한 평화를 담았던 박수근 화백이 이 그림에 이토록 강렬한 원망과 분노를 담은 것도 어순이가 가려준 어돌이의 상흔과 그들의 분노와 절망 그것은 바로 박수근 자신의 모습은 아니었는지.
가난 속에 병마를 이기지 못하고 간 박수근 화백의 화강암 마티에르는 햇살을 받은 운모와 석영처럼 반짝인다. 마른 물고기라도 금세 파닥이며 살아 뛰어오르게 할 것만 같다.








COVER 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