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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비틀린 나무

최 창 남 글

 

살아간다는 것은 참으로 고단한 일이다. 제게 주어진 삶의 조건과 자연적 환경 속에서 하나의 생명으로 삶을 지켜가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수많은 다른 생명들과 때로는 경쟁하고 때로는 어울리며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 뿐인가. 자연의 일부로서 살아가는 삶도 있다. 자연으로부터 생명을 받았기 때문이다. 자연으로부터 생명을 받은 삶이 자연의 일부로 살아가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때로 자연과도 경쟁하고 때로 순응하며 말이다. 조화로운 삶을 위한 노력이다. 살아가는 일에서 경쟁은 조화의 하나이다. 조화를 이루기 위해 경쟁하는 것이고 조화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또한 경쟁하기도 하는 것이다. 더 나은 삶을 위해서 말이다.
삶은 조화이다. 그러나 조화를 이룬 삶의 모습이라고 해서 늘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때로 경쟁하고 때로 순응하며 살아가는 삶이니 어찌 늘 아름답겠는가 말이다. 어찌 늘 즐겁고 행복했겠는가 말이다. 얼마나 말 할 수 없는 깊은 사연과 아픔들이 많았겠는가 말이다. 남 몰래 눈물 흘린 밤은 얼마나 많았을 것이며 지난 날 돌아보며 깊은 회한으로 가슴 저몄던 순간들 또한 얼마나 많았겠는가 말이다. 제 마음 잃고 어디로 가야할지 몰라 망연자실 바위에 기대 앉아 흐르는 구름만 바라본 시간들이 얼마나 많았겠는가 말이다.
제 삶을 잃고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우두커니 바닷가에 서있던 순간들은 또 얼마나 많았겠는가 말이다. 그렇게 가슴 저미는 아픔을 안고 남 몰래 눈물 흘리며 살아온 삶의 모습이 어찌 아름다운 모습만 있겠는가 말이다. 삶의 모습이 언제나 아름다울 수는 없는 일이다. 아름답기보다는 힘들고 괴롭고 추한 모습이기 십상이다. 비틀리고 갈라지고 터진 모습이기 십상이다.
그랜드 캐년의 어느 등성에서 만난 비틀린 나무처럼 말이다. 비틀리다 못해 갈라지고 갈라져 온 몸이 다 터져나간 나무처럼 말이다. 밑동에서부터 다섯 방향으로 뻗어 나간 나무는 자라며 서로의 몸을 휘어감아 때로 하나가 되고 때로 둘이 되기도 하고 때로 셋이 되기도 하였다. 쥐어짠 빨래처럼 서로를 휘감았다. 밑둥치에서부터 가지 끝까지 껍질이란 껍질은 모두 다 터졌다. 비틀리고 비틀리다 못해 모두 터졌다. 손을 대자 나무껍질들이 비늘처럼 떨어져 내린다. 실타래에서 실이 한 가닥씩 풀려나듯 풀어진다. 그렇게 비틀리고 갈라지고 터진 모습이지만 나뭇잎 무성하다. 무성하게 달린 나뭇잎들이 잔바람에도 소리를 내며 흔들린다. 그 모습이 마치 ‘나는 살아있어요’하고 말하는 것만 같다. 비틀린 나무의 곁에 비틀린 모습 그대로 죽어 넘어진 나무가 놓여 있다. 꺾여 넘어져 휑뎅그렁하게 둥치만 남아 있다. 그 모습이 사뭇 쓸쓸하다. 마음이 아파온다. 온 몸 비틀고 제 살갗 찢으며 살아남으려고 애썼을 모습을 생각하니 말이다.
밑둥치만 남아 있는 쓰러진 나무를 타고 작은 도마뱀이 지나간다. 참으로 그 모습이 날렵하다. 쫓아오는 이도 없는데 재빠르기가 그지없다. 그 모습 또한 제 삶의 조건과 자연 속에서 살아남은 생명의 모습이리라. 잠시 머물러 쉬지 못하고 재빠르게 지나가는 도마뱀의 모습이 말이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괜스레 서글퍼진다. 그들은 모두 제 삶을 살아가는 것일 뿐인데 나 홀로 그들을 바라보며 서글퍼진다.
가을이 온다.
가을이 오고 있다. 가을바람에 여름 내내 지쳤던 마음을 씻으며 지난 여름 먼 이국땅에서 만났던 비틀린 나무를 생각한다. 제 몸 스스로 비틀고 찢으며 살아가고 있는 나무를 생각한다.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때로 저리도 힘든데 잃어버린 제 삶을 찾는 일이 어찌 쉽겠는가 말이다. 제 삶을 새롭게 하는 일이 어찌 쉽겠는가 말이다. 어긋나고 비틀렸던 제 삶을 다시 온전히 회복하는 일이 어찌 쉽겠는가 말이다. 제 삶을 온전히 지키는 일이 어찌 쉽겠는가 말이다.
비틀린 나무를 바라본다. 온 몸 비틀리고 살갗이 찢어진 나무를 바라본다.
나무도 저렇게 살아가는 것을...
나무도 제 삶을 위해 저렇게 살아가는 것을...
그 모습이 참으로 아름답다. 비틀리고 갈라지고 찢어진 모습일지라도 참으로 아름답다. 근사하다. 눈물이 나도록 근사하다. 나도 그렇게 살 수 있을까. 온 몸 비틀리고 터지더라도 제 삶을 지키며 살아갈 수 있을까. 제 삶을 회복할 수 있을까.
노을이 진다.
비틀린 나무에 노을이 깃들이면 얼마나 아름다울까. 갈라지고 찢어지고 터진 살갗 하나하나에 노을이 깃들어 살면 그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울까. 지나는 이들마다 얼마나 마음 가득 기쁨을 안고 돌아갈까 말이다. 제 삶 또한 얼마나 기쁠까 말이다.
지는 노을을 따라 가을이 오고 있다.
비틀린 나무가 서 있는 등성에도 노을을 따라 가을이 오고 있다.
내 삶에 가을이 오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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