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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날이 험난할 ‘진실화해위원회’

 

서울 중구 필동1가 매경미디어빌딩 2층에는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라는 대통령 직속 기관의 간판이 걸려 있다. 위원장은 노대통령의 정치적 스승으로 알려진 부산 출신의 송기인신부이다. 이 기관은 ‘진실화해위원회’ 또는 ‘진실위원회’라고 줄여서도 부른다. 지난해 12월 1일, 문을 열었다. 이 기관의 한 회의실에서는 지난 7월 중순께부터 ‘민간인 피학살자 전국유족협의회’ 소속 대표단 30여 명이 ‘조사 인력의 조속한 증원’을 요구하며 농성을 벌이고 있다. 이들이 농성까지 들어간 것은 6.25 전후 민간인 피학살자는 남쪽에만도 수백만이나 되는데 조사 기간은 고작 4년인데다(물론 국회를 통해 2년을 더 연장할 수 있다), 조사 인력도 겨우 10여 명에 불과하고, 더구나 만일 한나라당이 집권하게 되면 위원회의 역할이 유야무야 되지 않을 가를 걱정하기 때문이다. 것이다. 송기인 위원장은 이들을 설득하고 있지만 쉽게 물러설 태세가 아니다. 이 위윈회는 지난 해 12월 1일부터 올 11월 말까지 피학살자 조사 대상자의 신청을 받고 있다. 신청이 끝나봐야 조사 인력 증원 문제를 정리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진실위원회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에 따라 설치된 기관이다. 이 법의 제1조(목적)를 보면 무슨 일을 하는 기관인지 알 수 있다. “항일독립운동, 반민주적 또는 반인권적 행위에 의한 인권유린과 폭력· 학살· 의문사 사건 등을 조사하여 왜곡되거나 은폐된 진실을 밝혀냄으로써 민족의 정통성을 확립하고 과거와의 화해를 통해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국민통합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이 법을 제정한다고 쓰여 있다. 이 법은 지난 2004년 정기국회에서 여야 3당의 발의로 상정되었는데. 한나라당은 처음엔 한사코 반대하다가 여론에 밀리면서 법안 심의에 참여했다. 이 당은 참여는 했지만 이거 빼라 저거 넣어라를 반복하며 법을 누더기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마침내 파빼고 고춧가루 뺀 설렁탕 꼴이 된 이 법은 2005년 5월 말일, 국회를 통과했다. 이 법이 정한 조사대상은 아주 광범위하나 특히 ③호인 “1945년 8월 15일부터 권위주의 통치 시까지 헌정질서 파괴행위 등 위법 또는 현저히 부당한 공권력의 행사로 인하여 발생한 사망· 상해· 실종사건, 그밖에 중대한 인권침해 사건과 조작의혹 사건”과 ⑤호인 “1945년부터 8월 15일부터 권위주의 통치 시까지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거나 대한민국을 적대시하는 세력에 의한 테러· 인권유린과 폭력· 학살· 의문사”가 핵심을 이룬다. ⑤호는 반공통치로 이력이 난 한나라당의 주장이 관철된 것이다.
지금 진실위 사무실에서 농성 중인 사람들은 모두 6.25전후 발생한 양민 집단 피학살자들의 유족대표이다. 그들은 빨갱이 자식이라는 누명을 쓰고 연좌제에 걸려 자유당 때는 입도 뻥끗 못하다가 가해자인 자유당 정권이 망하고 민주당 정부가 들어서자 진상 규명 요구 등 신원운동(伸寃運動)에 나섰다. 그러나 박정희정권은 이들을 여전히 좌경으로 몰면서 철저한 탄압을 가했다. 신원운동은 김대중정부 때부터 다시 시작되었지만 결실을 보지 못했었다. 이들은 다행히 노무현정부가 탄생하면서 ‘한국전쟁 전후 민긴인 학살 진상규명 범국민위원회(http://www.genocide.or.kr)’를 조직, 관련 법의 제정을 요구하며 데모와 단식을 밥 먹듯이 펼친 걸과로 이 기본법의 시행을 보게 된 것이다. 6.25 한국전쟁의 민간인 희생자는 얼마나 되는지 아무도 모른다. 학자마다 주장이 다르다. 일반적인 견해는 그 당시 남북 총인구의 12~15% 가량이 희생된 것으로 추정한다. 어떤 기록에는 남북한 합쳐서 민· 군· 관 모두 5백20만 명 정도라고 나타나 있다.
한국전쟁 전후로 발생한 양민(순수 민간인)학살의 형태는 여러 가지다. 북한인민군이나 토착공산세력에 의한 학살도 있고, 남한군이나 남한경찰 또는 반공세력에 의한 학살도 있고, 최근에는 노근리사건에서 밝혀졌듯이 미군에 의한 학살도 있었다. 모두가 피해자다. 가해자는 국가 권력이다. 진실은 밝히되 서로 용서하고 화해한다면 남남 간의 갈등도 해소되고, 남북이 통일되어도 서로를 원망하지 않고 무탈하게 화합할 수 있는 길이다.
과거사 정리 기본법의 입법 취지인 진실과 화해 정신은 남아공화국의 넬슨 만델라대통령이 처음 실천한 것이다. 만델라는 27년간의 옥살이에서 풀려나면서 남아공의 과거 청산 방법으로 복수보다는 화해를 선택했다. 동티모르의 사나나 구스마오대통령도 인도네시아로부터 해방되면서 복수는 안 된다고 국민을 설득했다. 우리나라도 화해의 길을 가고 있다. 그러나 전도가 밝은 것만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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