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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8일 저녁 프레스 센터에서는 한 노학자의 절필식(絶筆式)이 있었다. 한국 진보 지식인의 대부인 리영희(77) 선생의 50년 연구가 시대의 사명을 마치고 퇴장하는 자리였다. 그것은 한국 진보의 한 시대가 종막을 고하는 자리와 다름없었다.
지난 70년대 이후 리영희라는 이름만큼 무게감이 있었던 인물은 없었다. 우상의 시대라고 부르던 그 시절에 우리가 왜 저항을 해야 하는지를 그는 명쾌하게 분석하고 논증해 주었다.새는 결코 우측 날개만으로 날지 못하는 것처럼 국가도 좌우의 균형적 발전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그에 영향을 받은 청년들은 분연히 일어서 불의에 항거하고 한국 민주주의의 완성에 기꺼이 희생을 마다하지 않았다. 유럽에서 68년 투쟁이 마르쿠제의 이론적 영향 없이는 불가능했던 것처럼 리영희 없는 한국 민주주의는 상상하기 어렵다 할 것이다.
그가 쓴 <전환시대의 논리>는 대학 신입생의 필독서였고 그를 통해 비로소 이 사회의 모순을 깨닫고 내가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자각케 했다. 금서(禁書)였던 이 책은 원가의 10여배를 더 주고도 구할 수가 없는 진짜 금서(金書)였다. 청계천 헌책방들은 이 책으로 어려움을 넘어설 정도였다. 모두가 침묵하고 그것이 당연시되던 우상의 시대 그는 분연히 일어나 우상을 고발했다. 진실을 가린 허위를 통박했다. 그 때문에 선생은 네번에 걸친 구속과 두 차례의 해직을 당해야 했다. 그러나 그가 고발한 우상과 금기는 청년들의 정의감으로 무너질 수 있었다. 그것이 리영희 선생이 평생을 추구한 이성의 시대였고 시대의 진실이었다.
그래서 그 시절 리영희 선생은 자신의 의도와 상관없이 다른 차원에서 수많은 젊은이들의 우상이 되었다. 살아있는 영웅이었다. 아직도 우리 사회 일부는 선생을 의식화의 원흉이니, 감상적 마르크스주의자라는 비난을 하고 있다. 그러나 그 누구도 리영희 선생만큼 치열하게 시대를 분석하고 올곧게 양심의 소리를 낸 지식인은 없다. 오늘의 민주화된 사회에 리영희에 감화된 청년들의 역할을 부인치는 못할 것이다. 절필식에서 선생은 자신을 고발하고 감시하고 탄압한 자들에게도 감사하다고 했다. 그것이 자신을 경거망동하지 않고 성찰할 수 있게 만들어 주었다는 것이다. 얼마나 겸허하고 이성적인가.
리영희 선생은 자신이 추구하던 진실의 세상은 이제 한 50% 정도는 된 것 같다고 했다. 여기까지가 자신의 몫이고 이제 족함을 알고 물러난다고 했다. 나머지 50%의 과제는 후학들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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