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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어긋난 길

최 창 남 글

 

비가 온다. 지난 밤부터 내리던 비다. 잠들어 있던 동안도 저 혼자 말없이 내리던 비다. 아침 창을 여니 비가 내리고 있다. 더웠던 여름이 지나고 있다.
가을이 오고 있다. 열린 창으로 바람이 들어온다. 선뜩하다. 선뜩한 바람이 살갗을 파고든다. 어느새 가을이다.
잊지도 않고 잘도 제 길을 찾아오는구나.
봄이 오고 여름이 지나면 늑장을 피우며 오는 모습도 여전하다. 겨울을 등에 업고 오느라 그런가. 늦게 와 서둘러 떠나는 모습도 한결같다.
단 한 번의 어긋남도 없이 잘도 제 길을 찾는구나.
어긋난 길로 들어섬도 없이 잘도 제 길로 찾아오는구나.
하기야 자연에 나 있는 길 중에 어긋난 길이란 없다. 그 길을 가는 사람이 어긋났을 뿐이다. 내가 어긋난 길을 갔을 뿐이다. 내 마음이 어긋난 것일 뿐이다. 제 길을 찾아가지 못하여 제 삶이 어긋난 것일 뿐이다.
어긋난 길이란 없다. 설사 어긋나 보이는 길이라 할지라도 그 길은 수 백 년 수 천 년 아니 수 만 년 수백 만 년 동안 거기 그렇게 있었던 길이다. 그 길을 지나며 수많은 사람들이 마음의 위로와 삶의 기쁨을 얻었던 길이다.
어긋난 길이란 없다. 어긋난 마음이 있을 뿐이다. 어긋난 삶이 있을 뿐이다. 어디서부터 어긋났을까. 내 삶은 어디서부터 어긋났을까. 알 수 없다.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다만 그저 조금 더 가난한 이들을 사랑하고자 했던 것뿐이다. 나를 희생하면 여러 사람들이 조금 더 행복해질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뿐이다. 그랬을 뿐이다. 그런데 내 삶의 계절은 언제부터인가 멈추었다. 나는 늘 봄을 기다리며 겨울의 황량한 벌판 위에 서있다.
겨울 숲의 깊은 고요함 속에 놓여 있다. 깊은 고요함 속에서 모진 겨울을 이겨내기 위해 몸을 움츠리고 움츠리며 살을 에는 겨울 숲의 바람을 견디고 있다.
나의 삶에도 아주 오래 전에는 따뜻했던 봄날이 있었음을 기억하면서 말이다. 그런 날들이 다시 오기를 기다리면서 말이다.
지난 7월이었던가. 우는 바위가 있다는 말에 지친 몸을 이끌고 산길로 들어섰다.
산길이라고 해도 소나무나 전나무들만 듬성듬성 자라고 있을 뿐이다. 사막의 한가운데에 솟아난 척박한 산이다.
섭씨 40도를 훌쩍 넘긴 뜨거운 날이다. 산길을 따라 걷고 걸어 산등성에 다다르도록 우는 바위는 보이지 않는다. 길을 잘못 들었다. 어긋난 길이었다.
땀에 절고 지친 몸을 내려놓고 바위에 기대어 앉는다. 바람이 불어온다. 때마침 불어온 바람에 땀을 씻어낸다.
고개를 드니 높이 솟은 바위산이 눈에 들어온다. 산등성에 나무 두 그루 서있다. 그 모습이 참으로 보기 좋다. 아름답다. 홀로 있지 않으니 말이다. 둘이 나란히 서있다.
혼자 있지 않으니 외롭지는 않겠구나.
둘이 함께 있으니 살아가는 날들이 외롭지는 않겠구나.
산등성에도 바람이 분다. 나무 가지가 심하게 흔들린다. 그 모습이 춤을 추는 것 같다.
잘못 들어선 길을 가느라 힘들었을 나를 춤추며 위로하는 것 같다. 어긋난 길로 들어선 나에게 힘을 내라고 말해주는 것 같다. 가는 발걸음을 멈추지 말라고 말해주는 것 같다.
어긋난 길이라는 것은 애초에 없다고 말해주는 것 같다. 어긋난 길이 아니라 마음이 어긋났을 뿐이라고 말해주는 것 같다.
마음 길 따라가면 제 길을 갈 수 있다고 말해주는 것 같다. 마음 길 따라가면 설사 어긋난 길이라고 할지라도 바른 길로 들어서게 된다고 말해주는 것 같다.
그런가. 정말 그런가. 산길을 걷더라도 산길을 따라 걷지 않고 마음 길 따라 걸으면 어긋난 길로 들어설 수는 없는가. 설사 어긋난 길로 들어섰더라도 곧 제 길로 가게 되는 것인가.
마음으로부터 마음에게로 가는 길이니 말이다. 그래, 그런가 보다. 마음 길에는 길이 없는가 보다. 모든 길이 다 제 길인가 보다. 그런가 보다. 그런가 보다.
산등성에 나란히 서있는 나무 두 그루 위로 구름이 지난다. 맑고 투명한 기운이 가득하다.
구름도 제 길을 따라 흐르는 것이겠지. 수많은 이야기를 담고 말이다.
뜨거운 햇볕을 받으며 길을 나서는 내 앞에 나비 한 마리 내려앉는다. 큰 나비이다. 호랑나비이다. 그 모습이 참으로 아름답다. 길 섶 풀 위에 앉아 날개를 접었다 폈다 반복한다.
발걸음을 멈추고 나비를 바라본다. 나비가 다시 날개를 펴고 날아오르기를 기다린다. 제 길을 떠나기를 기다린다. 내가 내 길을 가듯이 나비도 제 길을 가기를 기다린다.
새소리가 들려온다.
나비도 나도 길에 머물러 새소리를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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