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시대의 회의제도에 화백(和白) 이라는 것이 있다. 그 기원이 원시집회소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이는데 국가체제의 성립과 더불어 발달되어 처음에는 6촌(村)이 모여 나라 일을 의논하다가 나중에는 군신합동회의. 귀족회의. 백관회의의 성격을 띄어갔던 것으로 보여 진다.
그런데 이 화백제도는 만장일치제도라는데 그 특징이 있다.
한사람이라도 반대를 하면 결론을 내릴 수 없는 회의 제도인 것이다.
이러한 특징만을 높히 평가해 우리 민족은 수 천년 전에 이미 훌륭한 민주적인 제도를 갖고 있었다는 얘기도 과거에는 흔히 있었다. 그러나 이를 좀더 심사숙고해 보면 동전의 한 면만을 지나치게 확대 해석한 느낌이 없지 않다.
만장일치제라는 것은 사실 그럴듯해 보이기는 하지만 그 나름의 많은 모순과 위험을 내포하고 있는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는 일이다. 모든 사람의 의견이 하나로 일치할 때까지 소모해야하는 시간의 낭비도 낭비지만 어떠한 권위나 물리적인 힘에 의해 악용당할 소지도 그만큼 많기 때문이다.
만장일치라는 것이 민주주의가 정착되어 있는 서구 사회보다 공산주의나 전제주의 국가에서 오히려 성행하고 있는 것도 제도란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결국은 그것을 운용하는 방법과 사람의 양식에 달려 있음을 말해주는 좋은 예가 아닐 수 없는 것이다.
대한민국은 법치국가이다. 즉 정치는 법률에 바탕을 두어야 한다는 법치주의에 의해 운영되는 국가라는 의미이다. 대부분의 현대 국가는 법치국가라고 할 수 있다. 절대군주가 법을 무시하고 자의적인 정치를 하는 경찰국가에 대응하는 말이다
그런데 지금 법치국가인 대한민국은 헌정 사상 초유의 헌법재판소장 공백 사태가 빚어졌다.
전효숙 헌법재판소장 후보자에 대한 임명 동의안이 정치권의 거부에 따라 국회본회의에 상정되지 못하면서 헌법재판소가 사상초유의 소장 공백 사태를 맞게 된 것이다.
임명동의안 거부에 대한 주요사항은 절차와 방법이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헌법재판소는 헌법을 구체적으로 실현하여 공권력 행사가 남용되는 것을 방지 하고, 공권력에 의해 침해된 국민의 기본권을 회복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따라서 헌법재판소장은 소외된 사람들의 관점에서 인권의 가치를 실현하고 복합적이고 다원화되어가는 우리사회를 대변하는 기관의 장이 되는 것이다.
나름대로의 이유와 타당성이 있겠지만 자칫 임명권자와 임명의 절차에 대한 키를 지닌 양자의 힘에 의한 명분 없는 오기가 지나친 것은 아닌가 우려된다.
민주사회는 반목과 질시가 아니라 화합과 조화를 궁극적인 목표로 삼는다. 따라서 명분 없는 이기와 배타는 청산되어야 옳다.
국민이 헌재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헌재가 국민을 위해 존재 하는 것처럼 정치와 제도는 국민을 위해 존재한다는 사실을 새삼 일깨울 필요가 있다.
아무리 좋은 제도라 할지라도 그것을 운용하는 방법과 사람의 양식에 달려 있다는 원칙을
생각할 때 좀 더 지혜로운 처리방법이 아쉽게 여겨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