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 정읍 내장산 끝자락. 가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사람 손이 매우 적게 탄 곳이다. 적어도 나 어릴 적은 그랬던 것 같다. 지금은 보고 싶어도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힘든 광경을 연출해 주는 곳이었으니 말이다.
사시사철 뛰어 놀 수 있었던 거대한 놀이터이기도 했던 산과 냇가와 밭, 그리고 논은 지금 나를 만들어 놓은 가장 강력한 자양분임을 난 믿어 의심치 않으며, 인간으로서 갖추어야 할 가장 기본적인 심성을 그 곳에서 배웠다고 새삼 느낀다.
어는 여름이었을까? 서울로 올라 왔던 난 학교 앞 동네에 사시던 고모님께 놀러 갔다. 평소에는 그렇게 환하던 달이 그날따라 자취조차 없었다. 달이 완전히 기울던 날이었던가 보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노느라 정신없었던 난 늦은 것도 모르고 마냥 놀고 있었다. 이윽고 충분히 늦었다고 생각했을 무렵 이젠 집에 가야겠다는 생각에 집을 나섰다. 그런데 동네 어귀를 빠져 나올 무렵-우리 고모님 댁은 양계장을 하셔서 동네에서 좀 떨어져 있었다- 난 내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도무지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것이다. 눈을 떠도 까맣고 눈을 감아도 까맣다. 완전히 칠흑 공간 속에 혼자 남겨진 것이다. 결국 울음을 터트렸고, 사촌형이 후레쉬를 들고 달려 나왔다.
난 지금도 칠흑같은 그 밤하늘을 헤매고 있다. 빠르게 변하는 세상, 믿을 수 없을 만큼 진보하는 문명, 그리고 그만큼 빠른 속도로 변해가는 나 자신을 보며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 없을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하지만 늘 선택의 기로에 섰을 때 나를 지탱해 주는 것은 바로 별로 가득한 밤하늘처럼 꿈으로 가득한 나의 밤하늘이다. 밤하늘의 무수한 별들처럼 나의 꿈도 무수히 많지만, 은하수처럼 나의 꿈도 한 곳을 향해 흐르고 있다.
그래서 난 늘 우리 아이들에게 ‘꿈’을 강조한다. 칠흑과 같은 어둠을 헤쳐 나갈 수 있을 만큼 강한 꿈을 가지고 있다면 누구나가 자신이 원하는 만큼의 추진력을 가지고 그 꿈을 갖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 믿는다.
그리고 우리 아이들의 꿈들이 내 꿈의 밤하늘 속에 하나하나 그 빛을 밝힐 때 나는 비로소 내 칠흑 같은 밤하늘에 장엄한 은하수를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그 은하수가 완성되는 날, 아마도 난 나의 꿈이 무엇이었는지, 시리도록 투명한 그 꿈을 비로소 바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난 오늘도 지금 이 자리에 서서, 사랑하는 나의 아해들을 보며 웃을 수 있다. 그리고 사랑할 수 있다. 나의 아해들이 곧 나의 꿈이기에. 나의 아해들이 이 칠흑 같은 어둠을 헤쳐 나갈 수 있게 해주는 힘이기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