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먼저 탕과 면을 드신 다음에, 밥을 넣어서 드시면 돼요.”
“고향이 어디에요?”
“화성 팔탄면인데요.”
그제야 어죽(천렵국)의 정체를 알아챘다.
직장 동료들과 사무실 근처의 약간은 외진 느낌이 드는 식당에서 식당 주인과 주고받은 이야기이다.
며칠 전 그 집에서 먹은 ‘도리뱅뱅이’를 자랑하던 지역 기자의 이야기를 들었던 터라 최소한 보통 수준의 맛은 기대를 했던 터이다. 바람을 잡은 직장 동료와 선배 한 분을 모시고 퇴근 시간을 기다려 찾은 그 식당은 한갓지다 못해 조용했다. 앉아서 음식을 기다리면서 소주를 한 두 잔씩 주고받았다.
찬품을 드는 주인 아주머니와 ‘천렵’이 맞다느니, ‘철렵’이 맞는다느니 하면서 잠깐의 실랑이를 하는 사이에 어죽이 나왔다. 알맞게 붉은 색과 냄새가 회를 진동한다. 시장했던 터라 허겁지겁 붕어인 듯 보이는 놈의 살점과 수제비를 떠서 입에 넣었다. 내 기억이 맞다면 함께한 식객들이 이구동성으로 “어라? 옛날에 먹던 맛이네”라며 한마디씩을 보탰던 것으로 안다.
나는 정말 오랜만에 천렵국 한 그릇을 감사히 먹었다. 천렵국. 늘 고팠던 내 어린 날, 여름날의 천렵국은 별미(別味)였다. 그뿐 아니다. 천렵은 수렵과 놀이의 정점이 아니었던가. 나는 이 천렵국의 맛을 얼마나 자주 잊고 살았던가. 장사도 안될 듯 싶은 후미진 식당에서 이 맛을 보면서 생애 ‘최대의 풍경’이었던 유년을 떠올릴 수 있었다.
여하튼 맛 치레를 빙자해서 주인에게 물었다. “어떻게 어죽집을 하시게 되었냐”고.
주인 아주머니 왈, “어렸을 때 오빠가 팔팔 끓여준 어죽을 자주 먹은 것이 인연이 됐다”고 했다. “장사가 될 듯해서 요즘 젊은 사람들 취향에 맞게 붕어와 잡고기를 뼈가 삭을 정도로 팔팔 끓였다”고 했다.
촌 출신이라면 누구나 그렇듯이, 나 또한 동네 형님들이나 아저씨들이 끓여준 어죽 한 대접을 먹은 기억이 있다. 그때 먹은 어죽 맛은 아직도 혀끝에 남아 있다.
취한 눈으로 식당의 벽을 보니, 판화 한 점이 눈에 띄었다. 故 오윤의 ‘천렵도’였다. 당대 최고의 판화가였던 오윤 역시 천렵의 추억을 간직하고 있었으리라. 냇물에 족대를 들이대고 물고기를 잡는 사내, 지긋이 그 모습을 관망하는 듯한 사내, 그 옆에는 솥단지에 불을 지피는 모습과 함께 수박 한 덩이와 술 몇 병이 가지런히 놓여 있다.
소주 한 잔 들이켠 얼굴로 오윤의 ‘천렵도’를 바라본다. 저 판화에 새겨진 소주의 이름은 뭐였을까? 샛별소주, 아니면 두꺼비? 생각의 고리들이 이어지다 화성 팔탄의 한적한 냇가에서 천렵을 하는 사람들의 활기찬 표정이 어른거린다. 아마도 식당주인의 오빠는 아버님 세대 혹은 동네 형들에게서 일종의 ‘문화 내림’을 받았을 터이다. 오빠의 손맛을 이어받은 주인 아주머니의 어죽맛에 나 또한 ‘감염’되지 않았던가. 그리고 나는 이 어죽맛을 직장 동료는 물론 우리 자식들에게도 ‘유전’시킬지 모를 일이다.
천렵하는 기분으로 몇차례 더 들렀다. 단골 손님도 제법 있는 듯해서 마음이 좀 놓였다. 국적불명의 외식산업이 활황이라고는 하지만, 우리 마음과 기억에는 저 ‘천렵의 추억’이 아직은 살아 있는 모양이다.
모르기는 해도 오윤 선생 역시 자신의 판화가 그 어죽집의 풍경과 썩 잘 어울릴 것이라고 생각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퍼뜩 스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