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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가을나무

최 창 남 글

 

가을이다. 마음 깊어지는 가을이다.
가을이 오면 사람의 마음만 깊어지는 것이 아니다. 숲의 마음도, 나무의 마음도 깊어진다. 여름 숲은 마음을 넉넉하게 하지만 가을 숲은 마음을 깊게 한다. 가을 숲은 숲길을 걷는 중에도 발걸음을 멈추어 세운다. 멈추어서 지나 온 발걸음을 돌아보게 한다. 지나온 길들을 절로 돌아보게 한다. 살아온 날들을 마음 기울여 들여 보게 한다.
내 삶은 어떠했을까. 내 삶은 행복했을까. 내 지나온 삶은 아름다웠을까.
단풍으로 곱게 물들고 있는 나무의 향기에 취해서가 아니다. 숲의 아름다움에 마음을 빼앗겨서도 아니다. 숲이 마음 기울여 자신의 지난 날들을 돌아보기 때문이다. 나무들도 모두 발걸음을 멈추고 제 삶을 돌아보고 있기 때문이다.
가을이 되면 나무들은 성장을 멈춘다. 지나 온 삶을 돌아본다. 살아갈 날들을 바라본다. 지난 봄 생명이 움트던 날들에 대한 설렘과 기쁨과 그리움 때문이다. 지난 여름 숲으로 들어오는 모든 생명들을 넉넉하게 품어 주던 풍성함에 대한 아쉬움 때문이다. 지나간 시간들에 대한 성찰이다. 제 삶에 대한 돌아봄이다.
제 욕심으로 인해 지나쳤던 것은 없었는지 말이다. 제 어리석음으로 인해 제 삶을 무너뜨린 적은 없는지 말이다. 제 어리석음과 슬픈 아집으로 인해 제가 사랑하는 이들에게 깊은 상처를 입힌 적은 없는지 말이다.
그래서 가을 나무는 봄의 나무와 다르다. 여름의 나무와 다르다. 봄의 나무는 생명력이 가득하고 여름 나무는 차고 넘치지만 가을 나무는 넘치는 생명력을 차분히 내려놓는다. 차고 넘치는 모든 것들을 내려놓는다. 말없이 내려놓는다.
봄이나 여름의 나무는 오직 성장할 뿐이지만 가을나무는 성장하지 않는다. 성장하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지니고 있던 것들을 내려놓는다.
자신을 돌아보며 살아오는 날들 동안 짊어 졌던 모든 무거운 짐들을 내려놓는다. 지난 봄과 여름을 지나며 소중히 키우며 살펴왔던 제 몸을 내려놓는다. 나뭇잎들을 내려놓는다.
지난 여름 무서웠던 태풍에도 매달려 있던 나뭇잎들을 소리도 없이 떨어뜨린다. 가을은 나무에게 있어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성찰의 시간이다. 그래서 가을이 되면 나무는 모든 것을 멈춘다. 지나는 가을을 불러 세워 고요히 가을에 머무른다. 고요히 머무르며 지나온 삶을 돌아본다.
다가올 겨울을 준비한다. 혹독한 겨울이 올 것을 알기 때문이다. 모진 겨울을 이겨내기 위해서다. 생명 가득한 아름다운 봄날을 다시 맞이하기 위해서다. 기쁨 가득한 행복한 날들을 다시 품어 안기 위해서다. 겨울을 보내고 다시 맞이하게 될 봄 날 새로운 생명을 움트게 하기 위해서다. 더 아름다운 생명을 품기 위해서다. 그래서 가을이 되면 나무는 나뭇잎 우수수 떨어뜨리며 멈추어 서서 제 삶을 돌아보는 것이다.
그래서인가. 그래서인가 보다. 나무들도 제 발걸음 멈추고 제 삶을 돌아보기 때문인가 보다. 가을 숲에 들어서면 마음이 절로 깊어지는 이유가 말이다. 발걸음 멈추고 지나온 삶을 돌아보게 되는 이유가 말이다.
왜 그랬을까. 왜 행복하지도 않은 삶을 그렇게 지켜내려고 애썼을까.
왜 그랬을까. 왜 마음이 원치 않는 삶을 그렇게 지켜내려고 애썼을까.
어리석은 일이다. 제 욕심에 마음을 빼앗겨서 일까. 욕심에 마음의 눈이 가려져 제 삶의 모습을 보지 못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제 삶을 돌아보는 일이 괴로워 차마 볼 수 없어서였을까. 그래서 제 삶을 외면했기 때문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무엇 때문일까. 나 같은 생이야 아무려면 어떠랴. 그래서 제 삶을 포기했기 때문일까.
나무도 아는 것을 사람만 모르나보다.
나무도 가을이 되면 제 삶을 돌아보며 무거워진 삶의 짐들을 내려놓는 것을 사람만 제 욕심에 채우고 채우나 보다.
가을이다. 마음 깊어지라고 숲도 깊어지는 가을이다.
지나 온 삶을 차분히 돌아보라고 마음을 깊게 해주는 가을이다.
지난 날 살아오느라 짊어졌던 무거운 짐들을 이제 내려놓으라고 말해주는 가을이다.
이제 마음과 몸을 가볍게 하라고 말해주는 가을이다.
이제 제 마음의 말을 듣고 마음 길 따라 살라고 말해주는 가을이다.
깊어진 마음으로 제 삶을 돌아보라고 말해주는 가을이다.
깊은 마음으로 사랑하라고 말해주는 가을이다.
가을 숲을 지난다.
하늘이 맑다.
숲은 깊다.
가을나무 늘어선 가을 숲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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