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시ㆍ도 청소년활동진흥센터에서 선발되어 온 대한민국 청소년자원봉사단들이 드디어 서울에 모이기 시작했다.
‘드디어 내일 출발 한다’, ‘속초에서 배로출발 19시간을 가야 러시아 자루비아항에 도착한데’, ‘또 러시아에 도착해서 버스로 9시간이나 간데, 그런데 도로는 비포장도 있고 화장실도 없데’ 하며 걱정과 기대하는 봉사단원들의 소리가 이곳저곳에서 이야기 꽃 피우는 모습들이다.
국가청소년위원회 산하 전국 시ㆍ도 청소년활동진흥센터(전 청소년자원봉사센터)가 준비한 “대한민국 청소년자원봉사단”이다.
174명이 지난 9월4일부터 11일 동안 러시아 연해주의 파르티잔스크에 캠프를 차렸다.
매년 여러 나라 오지를 돌아보면서 봉사활동과 청소년 교류를 했지만 이번 러시아도 100명이 넘는 대규모의 자원봉사단을 파견한 것은 처음 이였다.
청소년자원봉사단은 고려인들의 거주지 지역인 이곳에 폐교를 임대하여 문화회관 리모델링, 고려인 농장 일손 돕기, 한국문화체험관 설치 등의 봉사활동을 통해 고려인 한 사람 한사람 만남을 통해서 고려인의 증언은 조국의 소중함과 애국심을 깨닫게 해주는 소중한 계기가 되었다.
출발할 때의 두려움은 도착하면서 아침 안개가 조금씩 사라지듯 봉사단원들은 적응해가고 있었다.
문화회관의 리모델링 작업 중 페인트칠과 벽화그리기, 한국 문화체험관 설치 등을 하면서 우리들의 정은 서서히 러시아인들에게 감동의 물결을 전해 주는 것 같았다.
먹는 것부터 잠자리까지 매우 불편한 것은 물론, 벽지 장판 등 문화회관 리모텔링 하는데 자재구입이 어려웠고, 하지 않았던 노동일까지 하니 온 몸이 아프고 쑤시고, 가슴까지 턱턱 막혔다.
하지만 고려인의 가슴과 가슴이 움직이면서 ‘러시아 땅이든 한반도 땅이든 피는 한가지요’ 라고 하는 고려인 말 한마디와 ‘민족의 아픔을 안고 사는 고려인을 보니 지금 노동속에 겪는 작은 불편은 그저 호사일 뿐’ 이라며 이야기하는 청소년 자원봉사단을 보면서 그들은 더욱 열심히 활동했다.
자원봉사활동을 통해서 고려인 5천여명이 살고 있는 파르티잔스크엔 모처럼 신바람이 불고 있었다.
어렵게 살고 있던 고려인들은 우리가 문화회관을 리모델링 한다고 해서 조금씩 조금씩 모금을 해서 회관 건설하는데 도움을 주었고, 청소년자원봉사단은 국내에서 모금활동과 끼니도 잊은채 밤 늦게까지 봉사활동을 하면서 우리는 한민족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끼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매일 저녁마다 현지 고려인들의 증언을 통해 고려인의 역사를 배우고 마음속 깊이 민족성을 느끼게 하였다.
파르티잔스크시는 산 좋고 물 맑아 ‘수청’ 이라 불리는데 사실 ‘빨치산의 마을’ 이라는 뜻이다.
1860년부터 가난과 수탈을 피해 연해주로 건너간 조상들은 고향산천을 빼닮은 이곳에 ‘작은 한국’ 을 세웠다.
일제 강점기엔 안중근 의사, 홍범도 장군 등 독립투사의 거점 이였다.
1937년 스탈린의 강제이주 정책에 따라 동네 사람들은 중앙아시아로 끌려가야 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 나갔다.
그리고 1990년대에는 옛 소비에트연방이 해체되면서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등 신생국가가 출현, 쫒기다시피 연해주로 돌아와야 했다.
생활은 비참했다.
하지만 우리 고려인은 다시 일어나고 있다.
청소년 자원봉사단은 이번 러시아 연해주 지역에서 고려인 돕기 봉사활동과 고려인의 증언을 통해서 민족의 중요성, 매일 아침마다 애국가를 부르면서 국가관을 배웠고 현 생활을 만족하지만 자만하지 않고 우리의 민족을 뒤 돌아 보는 계기가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