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3.04 (수)

  • 맑음동두천 0.0℃
  • 구름많음강릉 2.6℃
  • 맑음서울 3.3℃
  • 맑음대전 3.5℃
  • 흐림대구 5.9℃
  • 흐림울산 5.3℃
  • 맑음광주 5.8℃
  • 구름많음부산 6.3℃
  • 맑음고창 2.3℃
  • 맑음제주 8.9℃
  • 구름많음강화 2.8℃
  • 맑음보은 1.6℃
  • 구름많음금산 2.7℃
  • 맑음강진군 3.2℃
  • 흐림경주시 5.5℃
  • 흐림거제 5.7℃
기상청 제공

‘공판중심재판’ 빠를수록 좋다

이 동 희 <경찰대 교수/법학박사>

일제 악습 ‘조서재판’
인권 유린 심각
검-변 본질 외면 말고
자기 반성통해
사법 선진화 이룩해야

최근 대법원장이 취임 1주년에 즈음해 법관들을 상대로 한 훈시에서 공판중심주의를 도입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역설했던 발언을 둘러싸고 한국사회가 떠들썩할 정도로 격한 논쟁이 벌어졌다. 대법원장 훈시의 주된 요지는 조서재판의 폐해를 극복하자는, 즉 검사가 밀실에서 작성한 조서나 변호사가 제출하는 서류에만 의존하지 말고 법정에서 직접 증인들을 소환하는 등 객관적인 증거에 기초해 유무죄의 진실을 가려라는 주문이었던 것으로 이해된다. 이에 대하여 검찰과 변협은 몇 가지 표현방식의 부적절함 등을 지적하며 자신들을 폄하한 발언이라고 발끈했고, 급기야 검찰총장의 유감표명과 변협의 대법원장 사퇴요구까지 이어지는 사태로 번졌다.
필자는 몇 년전 한국의 형사재판의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 국내의 모 지방법원 형사법정을 일주일에 걸쳐 방청하고 모니터링한 적이 있다. 당시 연구결과에 의하면 실체심리가 진행된 300건 가량의 재판에 소요된 평균시간은 5분 47초에 불과했다. 검사가 기소장조차 낭독하지 않아 피고인이 자신이 정확히 어떠한 죄로 재판을 받고 있는지 제대로 모르고 있는 경우는 물론, 피고인이 법정에서 자신의 억울함을 주장하더라도 묵살 당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이러한 형식적인 심리를 토대로 몇 주후에 피고인들을 다시 불러 1분 간격으로 재판을 선고하고 있었다. 마치 자동화된 컨베이어에서 줄줄이 전과자를 양산하고 있는 형국인 것이다. 이러한 부실한 재판이 가능한 것은 검찰에서 제출한 수사서류에만 의존해서 심리하는 소위 조서재판의 관행을 극복하지 못하고, 검사가 작성한 조서에 무제한적인 증거가치를 부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조서재판은 청산해야 할 일제의 악습이기도 하다. 일본말을 못하는 우리나라 사람을 법정에서 입과 귀를 막고 수사기관이 제멋대로 작성한 조서로만 유죄로 처단했던 인권침해적 형사재판이 그 근원인 것이다. 이것이 광복 6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개혁되지 못한채 도도히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1954년 현행 형사소송법 제정 당시 일제 조서재판의 악습을 극복하기 위해 우리의 입법자들은 경찰이 피의자를 상대로 작성한 조서는 원진술자가 법정에서 그 내용을 인정하지 않는 이상 증거로서 사용할 수 없도록 하는 개혁조치를 단행했다. 하지만, 수사현실을 감안하여 절충적으로 검사가 작성한 조서에 대하여는 그 증거능력을 인정했으며, 이로 말미암아 조서재판은 여전히 우리나라 형사재판의 주류가 되어 왔다.
최근 몇 해 동안 우리나라 사법제도에 대한 전면적인 개혁작업이 우리사회의 중요한 이슈로 부각되었으며, 형사재판의 핵심적인 개혁과제의 하나로서 공판중심주의 확립방안이 모색되어 왔다. 국민들의 역량을 모아 조서재판 없애려고 검사조서 증거능력을 제한하려고 했더니 검찰이 집단적인 반발을 보여 물거품으로 만든 것이 불과 작년의 일이다. 수사기관이 일반에게 공개되지 아니한 밀실에서 만든 조서를 신주단지 모시듯 해서는 사법선진화는 백년하청일 수밖에 없다. 수사기관은 태생적으로 범죄를 입증하기 위해 유죄입증에 몰두할 수밖에 없는 속성을 지니고 있으며, 조서란 이러한 속성이 반영된 수사기관의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사법개혁의 일환으로 선진외국처럼 국민참여형 재판이 내년부터 5년간 시범실시될 예정이다. 소위 형사사법의 민주화가 이 땅에도 드디어 첫 포문을 여는 것이다. 국민참여형 재판은 조서재판은 물론 법조비리 등 형사사법의 고질적인 병폐를 치유할 수 있는 대안일 수 있다. 일반시민들로 구성된 재판부가 수사기관이 밀실에서 만든 조서 등의 수사서류에 의존해서는 유무죄의 실체를 가릴 수 없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증인의 법정증언과 증거물에 의한 객관적인 사실인정이 될 수밖에 없다.
검찰과 변협은 대법원장의 발언의 일부 표현의 부적절함을 문제 삼기 이전에 다른 나라처럼 법정에서 치열한 공방을 통해 실체진실을 가리는 능력을 배양하는데 노력해야 한다. 대법원장의 발언은 선진적인 형사사법제도가 이 땅에 정착되기를 소망하는 충정에서 비롯된 통렬한 자기반성이자 용기임을 인식해야 한다. 자기반성을 모르는 자에게 결코 발전이란 있을 수 없다. 해결해야 할 시대적 사명의 본질은 외면한 채 치부가 드러난 것에 움찔하여 발끈하는 이들을 바라보니 긴 한숨만 흘러나온다.








COVER 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