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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글폭력’ 심각 토론 의미 되새겨야

박 병 두 <작가 / 수원남부서 민원실장>

 

청아한 가을풍경이 무르익어 낙엽들이 팔을 활짝 벌리고, 짙게 물든 붉은 낙엽들은 황홀한 달밤의 진풍경이다.
나는 가끔 내 주변에서 일어나는 기이한 현상들을 발견하곤 한다. 아쉬운 일들이 언어라는 화법에서 주어지는 사람의 관계를 목도하면서 말과 글과 삶이 온전히 일치하는 과정이 잘 조합되지 않을 때 극심한 혼동을 겪을 때가 많다. 가장 많이 접하는 경우가 인터넷에서 비롯된다. 자신의 의견과 한 기사의 구분이 애매하고 정확성과 객관성의 기준도 모호하기 이를 데 없는 폭로성 인터넷을 보면 순간순간 놀라움으로 요동을 치며 시선을 두게 된다.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허위인지 확인할 길도 없는 인터넷의 무한성보다는 종종 주변에서 벌어진 내 삶에서 대화라는 채널이 자연스럽지 않은 경우에 봉착하고 보면, 판단의 시점과 관찰자의 시점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망설여지는 것이다.
토론에는 반드시 포용이 전제되어야 할 필요성이 있다. 물론 그 말이 잘못되고 왜곡된 현상까지 그대로 받아들이고 유지하라는 것은 결코 아니다. 한 사람이 쓰고 말하는 언어에서 인격의 모습이 나타나듯 토론에서의 화법은 포용이란 의미를 되새겨보아야 한다. 포용이란 그렇다고 적당한 타협도 무조건적인 감싸 안기도 아니며, 무기력이나 무소신을 의미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그것은 의견대립이나 갈등에서 극단주의를 택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또한 경직되지 않은 사고이며, 어떤 문제에 다양한 답이 있을 수 있음을 인정하는 태도다. 언어의 창구가 시대흐름과 무관할 수는 없다. 토론이라는 곳에서 문은 열어놓고 들어오지 말라는 시대를 여기저기서 발견하는 내안에 생각은 어두운 동굴을 빠져나온 듯하다.
하이데거의 말대로라면 언어는 존재의 의미를 세우는 집이다. 사색이 부족한 말과 언어로 인해 삶의 존재조차 흔들리는 것은 아닌지 고뇌 속에 잠긴 통로의 여행을 그렇게 가고 있는 내 모습은 진정한 지식인으로 민중이든 대중이든 동시대 사람들과 함께 어울린다는 게 이율배반인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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