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3.04 (수)

  • 구름많음동두천 2.2℃
  • 흐림강릉 2.9℃
  • 구름많음서울 5.3℃
  • 맑음대전 5.6℃
  • 흐림대구 6.3℃
  • 맑음울산 5.1℃
  • 맑음광주 8.0℃
  • 맑음부산 6.1℃
  • 맑음고창 4.4℃
  • 흐림제주 10.1℃
  • 흐림강화 3.2℃
  • 구름많음보은 5.9℃
  • 맑음금산 5.9℃
  • 구름많음강진군 7.4℃
  • 흐림경주시 5.5℃
  • 맑음거제 5.7℃
기상청 제공

<17> 가을 숲에 마음을 씻고

최 창 남 글

 

가을 숲으로 들어간다. 숲 밖 세상이야 가을을 맞기에 아직도 분주하지만 숲에서는 벌써 가을이 깊어지고 있다. 울긋불긋 새 옷을 입고 있는 나뭇잎들이 눈에 띄게 많아졌다. 단풍이다. 참으로 아름답다. 가슴으로 스며드는 아름다움이다. 가을 숲을 지나는 이들에게 단풍은 가슴으로 저며 드는 아름다움이지만 나뭇잎에게도 그런 것만은 아니다. 나뭇잎에게는 슬픔의 날들이기도 하다. 그러나 찬란한 슬픔이다. 가슴 저미는 아픔이다. 긴 이별의 아픔이다. 그러나 아름다운 이별이다. 긴 겨울을 이겨내고 생명 가득한 새 봄을 다시 맞이하기 위해 나무와의 이별을 준비한다. 지나 온 제 삶과의 이별이다. 제 스스로 나무에게서 떨어져 나간다. 그래서 나뭇잎은 제 스스로 광합성을 멈추고 줄기와의 사이에 분리 층을 만들어 뿌리와 줄기에서 공급되는 모든 영양분을 스스로 차단한다. 그래서 가을은 나뭇잎에게는 슬픈 계절이기도 하다. 그 슬픔을 위로하기라도 하려는 걸까. 그래서 가을 단풍은 저리도 가슴 시리도록 아름다운 것일까. 그런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가을이 나뭇잎에게 슬픈 계절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희망도 있다. 슬픔 때문에 더욱 아름답고 슬픔 때문에 더 깊은 희망을 품을 수 있는 것이다. 슬픔이 깊을수록 희망도 깊어지는 것이다. 가을의 이별이 가슴 저릴수록 다가오는 봄에 대한 희망도 삶에 깊이 뿌리를 내리는 것이다. 참다운 희망이란 언제나 슬픔 속에서 자라는 것이다. 단풍잎처럼 찬란한 슬픔이다.
가을 숲을 거닐면 찬란하게 빛나는 슬픔들을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비가 오지도 않았는데 돌을 깔아 놓은 숲길이 축축하다. 젖어 있다. 나무가 토해낸 물기 때문이다. 계곡으로 흐르는 물줄기 때문이다. 계곡으로 쏟아지는 폭포 때문이다. 조심스레 발걸음을 옮긴다. 폭포다. 참으로 장한 모습이다. 한 동안 비가 오지 않았는데도 수량이 제법 많다. 그 모습이 당당하다. 허공으로 난 길을 따라 물줄기가 쏟아진다. 물보라가 인다. 순간적으로 일었다가 흩어지는 물보라 가운데로 무지개가 인다. 마치 물안개에 색감을 뿌려 놓은 듯하다. 순간적으로 피어오른다. 바람이 인다. 바람을 따라 물보라가 흩어진다. 무지개도 흩어진다. 무지개도 바람을 따라 떠나는 모양이다. 그 모습이 참으로 슬프다. 눈부시도록 아름다운 모습을 오래 간직하지 못하니 말이다. 하지만 그래서 더욱 아름답다. 순간의 아름다움이기에 더욱 아름답고 더욱 슬프다. 그립다. 슬픔 때문에 더욱 깊은 그리움을 품게 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름다운 삶에 대한 그리움을 말이다.
삶이란 그런 것이다. 때로 그리워하고 때로 슬퍼하며 순간순간을 살아가는 것이다. 단풍잎처럼 제 삶을 아름답게 치장하면서 말이다. 이별해야 할 것들과의 이별을 준비하면서 말이다. 새로운 날들에 대한 희망을 품으면서 말이다. 새로운 삶에 대한 희망을 지난 삶과의 이별 안에 심으면서 말이다. 그렇게 자연의 온기를 따라 흘러가면 되는 것이다. 크고 작은 바위들이 가로 막고 있는 계곡을 의연하게 흐르고 있는 물줄기처럼 말이다. 그저 그렇게 흘러가면 되는 것이다. 있는 그대로 모든 것들을 받아들이면서 말이다.
가을이 깊어져 나뭇잎에 단풍이 드는 것도, 나뭇잎들이 그렇게 지나 온 제 삶과 이별을 나누는 것도, 허공으로 난 길을 따라 쏟아져 내리는 물줄기가 물보라를 만들어내는 것도, 흩어지는 물보라 속에 너무나 아름다운 무지개가 깃드는 것도, 무지개가 순간적으로 흩어지는 것도, 계곡물이 말없이 흐르고만 있는 것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되는 것이다. 가을 숲길을 걷고 있는 나 자신도 가을 숲의 하나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면 되는 것이다. 계곡을 따라 흐르는 물줄기를 바라보고 있는 나 자신도 물줄기 곁에 서있는 많은 생명들 중의 하나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계곡 물이 흐르는 것처럼, 가을 숲이 흐르고 있는 것처럼 제 삶도 흐르고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어리석기 그지없는 제 생각으로 바라보지 만 않으면 되는 것이다. 세상 욕심으로 가득 찬 마음으로 바라보지만 않으면 되는 것이다.
삶이란 그런 것이다. 모든 것들을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들이며 살아가면 되는 것이다. 제 욕심으로 덕지덕지 때 묻은 마음으로 걷지만 않으면 되는 것이다. 설혹 욕심으로 더렵혀진 마음으로 가을 숲에 들어섰다고 할지라도 흐르는 물에 마음을 씻어내면 되는 것이다. 물보라 속에 순간적으로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무지개처럼 마음을 흔드는 미망들을 흘려보내면 되는 것이다. 어리석은 제 생각들을 가을 숲에 씻으면 되는 것이다. 가을 숲에 묻고 오면 되는 것이다. 새로운 봄을 맞을 수 있도록 말이다. 메마르고 갈라진 내 마음에도 새 봄이 오도록 말이다. 세상 욕심에 지치고 찌든 제 영혼에 맑은 물줄기 흘러들 수 있도록 말이다. 세상이 가르친 거짓말들에 속아 제 삶을 삶답게 살지 못한 지난 날들을 흐르는 계곡물에 씻어내고 오면 되는 것이다. 그런 후 세상이 원하는 삶이 아니라 제가 원하는 제 삶을 살아가면 되는 것이다.
흐르는 것은 계곡을 따라 흐르는 물줄기만이 아니다.
삶도 흐르는 것이다. 제 욕심으로 가두어 놓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삶이란 참으로 흘러야 하는 것이다.
계곡을 따라 걷는다.
바위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흐르는 물줄기를 따라 걷는다.
바람이 분다. 바람을 따라 가을 숲을 걷는다.








COVER 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