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렇다고 담쟁이만 불타고 있는 것은 아니다. 담쟁이가 조금 먼저 불타고 있을 뿐이다. 나무들도 불타고 있다. 나무들만 불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산도 불타고 있다. 산만 불타고 있는 것은 아니다. 내 마음도 불타고 있다. 바람을 타고 내려와 앉은 붉은 나뭇잎들처럼 불타고 있다. 깊은 가을 산의 나무들처럼 불타오르고 있다. 산처럼 불타오르고 있다.
그렇게 모든 것이 불타오르는 가을 산이건만 산은 고요하기만 하다. 깊고 고요하다. 가을 산의 숲길은 적막하기만 하다. 가도 가도 사람 하나 만나질 것 같지 않다. 다 타오르고 떨어진 나뭇잎들로 덮인 숲길이 끝날 것 같지 않다. 메마른 나뭇잎들이 발에 밟힌다. 바스러진다. 메말라 바스러진 나뭇잎들이 바람에 날린다. 바람이 세차게 불어온다. 깊은 숲 속에서 나무들 사이로 바람이 지나면 나뭇잎들이 흔들리고 부딪치며 파도소리를 낸다. 마치 어스름내린 저녁 가을 바닷가를 걷는 듯하다.
‘쏴아~ 쏴아~’
‘쏴아~ 쏴아~’
깊은 울림이 있는 파도소리가 들린다. 그 소리 때문일까. 숲길을 걸으면서도 때론 어디를 걷고 있는지 잊는다. 그래서인가. 산길을 걸으면서도 때론 바닷가를 거닐기도 하는 것이다. 그래서인가. 때론 마음 길을 거닐다가 길을 잃기도 하는 것이다. 길을 잃은 채 그렇게 걷고 걷다가 어디선가 들려오는 졸졸졸 시냇물 흐르는 소리에 마음을 내려놓고 쉬기도 하는 것이다. 그렇게 마음 길 걷고 걷다가 저도 모르게 산길로 다시 접어들기도 하는 것이다. 걸어가던 길로 찾아들기도 하는 것이다. 그렇게 걷고 걷다가 산도 저도 모르는 제 길로 걸어들기도 하는 것이다.
그렇게 가을 숲길을 걷는다. 가을 숲 속에서 살아갈 듯 걷는다. 샛노랗게 물든 나뭇잎, 붉게 물든 나뭇잎들이 어쩌면 저리도 아름다울까. 눈부시다. 가슴이 저리도록 아름답다. 가을 숲으로 들어간다. 끝없이 이어진 것만 같은 숲길로 들어간다. 어디쯤 왔을까. 이곳은 어디일까. 나는 어디쯤 있을까. 걸음을 멈추고 주위를 둘러본다. 나무들도 나처럼 서서 주위를 둘러보는 듯하다. 적막하기만 깊은 숲 속에 ‘휘잉~’ 하는 소리가 마음을 울린다. 나무들 사이를 지나는 바람이 내는 소리이다. 깊고 적막한 숲 속에 바람 소리만 고즈넉하게 울리는 것이 아쉬워서 일까. 나뭇잎 우수수 떨어지며 마음을 적신다. 나뭇잎 떨어지는 사이로 작은 소리가 들려온다. 귀를 기울인다. 마음을 기울인다. 물이다. 물 흐르는 소리이다. 졸졸졸 시냇물 흐르는 소리가 들린다. 시내가 있구나. 깊은 산 중에 시냇물이 흐르고 있구나. 발걸음을 재촉한다. 시내를 이루며 흐르고 있는 계곡물이다. 맑은 물이다. 깊은 산 깊은 계곡을 지나 흘러내리는 맑은 물이다. 지나는 이들의 마음을 씻어줄 맑은 물이다. 살아가는 일에 내몰려 마음을 빼앗긴 이들의 마음을 맑게 씻어줄 맑은 물이다. 바람 부는 깊은 가을 숲을 걸으면서도 열병을 앓은 듯 땀에 흥건히 젖은 얼굴을 씻어줄 맑은 물이다. 가을 숲길처럼 나뭇잎 깔려있는 길이 아니라 진창길을 걸어온 이들의 더러워진 발을 씻어줄 맑은 물이다.
흐르는 물 가운데로 돌다리가 가지런히 놓여있다. 앞서 지난 이들이 마음을 느끼며 돌다리를 건넌다. 흰 참나무 한그루 서 있다. 흰 참나무 아래 키 낮은 바위에 앉는다. 흰 참나무에 기대어 앉는다. 흐르는 물에 손을 담그지 않아도 서늘한 기운이 몸을 감싼다. 땀이 식는다. 흐르는 물에 손을 씻는다. 물이 차다. 마음까지 서늘해진다. 몸을 일으킨다.
갑작스레 집은 안개가 피어오른다. 앞이 보이지 않는다.
깊은 가을 숲 속세 웬 안개일까.
구름이다. 구름이 지난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구름만이 있다.
나는 구름 가운데 있다. 구름 사이에 서있다. 아니다. 구름이 나를 품고 있다.
구름 위를 걷는다.
구름도 나를 품고 함께 걷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