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5년 지방자치시대가 열리며 각 지자체들은 앞다퉈 자기 도시만의 정체성을 찾는데 전행정력을 동원했다. 지자체 마다 이색 축제를 유치한게 그렇고 ‘CI(이미지 통합)’ ‘BI’ 작업을 통한 혁신적 이미지를 구축한게 그 대표적 사례다.
그러나 시흥시는 민선4기의 시대를 열었지만 아직 그 ‘정체성’을 찾지 못했다. ‘시흥’이란 ‘지명의 정체성’이 분산돼 혼선을 주기 때문이다.
‘뻗어가는 땅’을 의미하는 ‘시흥’은 그 이름에 걸맞게 영등포 구로 금천 관악 동작 서초구와 경기도의 안양 광명 과천 군포 의왕시를 분가시켰다. 그 종가답게 시흥은 이제사 발돋움의 힘찬 날개짓을 하고 있다.
그러나 ‘시흥’의 지명은 일찍이 분가한 서울 금천구에서 전철 역사인 ‘시흥’을 비롯, ‘시흥대로’ ‘시흥IC’ 등을 모두 사용하는 탓에 ‘경기도 시흥’은 잊혀졌다. 이 지명의 혼선은 숱한 ‘실수담’을 낳고 있다. 전철을 이용해 시흥을 찾는 대다수 사람들이 금천구 ‘시흥역’에 내려 헤매고, 자가 운전자들 역시 ‘시흥대로’ ‘시흥IC’에서 회차하기 일쑤다.
지난 79년 시흥군 공무원으로 임용됐던 모씨는 채 2년이 안돼 고향인 강원도 영월군으로 옮겨갔다. 모친이 ‘경기도 시흥’인 것을 알곤 ‘어차피 시골인데 고향에서 근무하라”고 아들을 불러들였다. 이같은 사례는 수없이 많다.
다행히 근래 백원우 의원(시흥갑·열린우리당)이 이 문제에 앞장서 대정부질의를 통해 ‘불합리성’에 대해 시정을 촉구했고 몇차례 금천구청측과 협의했다. 그러나 법적 절차가 있고 금천구와 시흥시간의 지자체 협의가 우선이므로 그는 도로 및 철도 노선과 역사의 개명 문제는 시간을 갖고 의견수렴 및 지명위원회 심의를 거쳐 건교부에 다시 건의키로 했다.
시흥시도 근래 이 사안의 절박성을 깨닫고 적극적 자세로 ‘시흥’지명 찾기에 나섰다. 본래의 내 지명을 찾는 것 보다 지자체의 ‘정체성 확립’은 없기 때문이다.
오는 2010년을 전후해 50~100만 인구의 서해안 거점도시로 거듭날 시흥시로선 이 사안을 지금 해결하지 못하면 두고두고 후회할 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