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 첫 번째 동북지역고대사연구자들이 고구려사를 왜곡하기 시작하였다. 이론적 원조인 쑨진지(孫進己)는 탄지냥(潭其?)의 ‘통일적 다민족국가론’을 차용하여 고구려사 연구에 적용하였다. 이 ‘통일적 다민족국가론’이 바로 중국정부가 내세우고 있는 “역사귀속은 현재의 영토와 정치적 지배력에 따른다”는 바로 그 주장이다. 쑨진지는 저서 ‘동북민족원류’의 서문에서 ‘1950년부터 이 작업을 준비했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 책은 1990년대 초에 한국에서도 번역되었다. 여기에 퉁화(通化) 사범대의 겅톄화(耿鐵華) 교수가 가세하였다. 이후 1978년 중국 교육계의 주도로 14개 대학이 공동 편찬한 ‘세계고대중세기사’는 고구려를 “중국에서 일어난 국경지대 민족”이라고 기술하면서 동북공정을 위한 본격적인 첫발을 내딛었다. 이제는 조선족 학자까지 참여하고 있다.
2006년 9월 10일과 11일 중국 지린성 옌벤조선족자치주 옌지(延吉)시에서 열린 ‘2006 고구려문제 학술토론회’에서 조선족 박찬규(朴燦奎) 교수는 “고구려사를 다루는 문제는 다민족 국가인 중국의 단결을 유지하는 데 중차대한 문제이며, 변방지역의 평온을 유지하는 데 중국의 생사존망이 달려있다”고 주장하였다.
중국, 1950년부터 준비
두 번째, 베이징국경사연구자들은 1995년 퉁화에서 ‘제1차 전국 고구려 학술대회’가 개최되면서 등장한 그룹이다. ‘동북공정’의 설계자로 불리는 마다정(馬大正)은 신장·위구르 지역의 중국사 편입(서북공정)을 끝낸 뒤 동북공정에 투입된 속칭 ‘국경공정 전문가’이다. 마다정은 겅톄화와 더불어 동북공정의 핵심학자이다. 이 그룹에는 조선족 권혁수(權赫秀) 교수도 동참하였다.
세 번째, 베이징고대사연구자들은 비교적 정치적 색채가 엷으며, 1997년 베이징대가 출간한 ‘중한관계사’ 등에서 ‘고구려사는 한국사’라는 기존 중국학계의 정설을 수용하고 있다.
그러나 2002년 동북공정의 공식적인 출범 이후에는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다만 최근에 베이징대 역사학과의 쑹청유(宋成有) 교수가 지난 9월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고구려는 (중국의 역사가 아니라) 외국의 역사라는 것이 베이징대 역사학과의 일관된 입장”이라는 견해를 밝혔다
한편 런민(人民)대 스인훙(時殷弘) 교수는 “중국은 한국과 북한의 강렬한 민족주의에 비춰 볼 때 미래의 통일국가가 역사를 내세워 중국에 영토를 요구할 가능성이 있고, 심지어 조선족 거주지역의 합병을 요구할 수 있다고 본다.
따라서 동북공정은 이에 대한 준비작업으로서 방어적 차원이지 결코 공격적 차원은 아니며, 한국의 민족감정을 건드리는 것이 손해라는 것도 인식하고 있다”고 말하였다. 이는 양국이 영원히 상대를 향해 영토문제를 제기하지 않는 영토의 현상유지를 원한다는 표현이다.
역사왜곡 대응 냉철해야
이러한 중국의 배타적 속지주의적 주장에 우리는 결코 동의해서도 안 되지만, 그렇다고 순간적인 감정으로만 대응해서도 안 된다. 통일 이후를 겨냥한 것이므로, 논리적으로 장기적으로 그리고 냉정히 대응하여야 한다. 따지고 보면, 복희·여와·치우·축용 등도 한족(漢族)이 아닌 동이족 신화의 주인공들이며, 치우천황이 이끌던 동이족의 한갈래가 한족과의 싸움에서 패배한 후 물러나 자리잡은 곳이 티벳이다. 또 중국이 고구려를 속국이라고 억지주장하지만, 막상 중국에서 33개 국가가 흥망하는 동안, 고구려는 750년 동안 건재하였다. 또 고구려와 통교하던 돌궐(突厥)의 후예인 터키의 국사교과서에도 고구려를 투르크의 형제국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하여는 동의도 순간적 감정적인 대응도 아닌, 통일이후를 대비한 논리적이고 장기적이고 냉정한 준비를 반드시 하여두어야만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