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 연출가는 태어난지 100일때부터 소아마비로 불편한 양 다리를 목발에 의지하며 살아왔다.
“아버지가 국문과 입학원서를 보고 크게 화를 내셨죠. 평생 부모가 같이 살아줄 수 없으니 기술을 배우라는 것이었죠.”
하지만 아버지의 반대를 무릎쓰고 글을 쓰기 위해 한신대 국문학과에 입학했다. 대학 3학년, 축제의 마지막날 본 마당극은 그에게 문화충격이었다. 이날부터 그는 마당극을 선보인 학내 민속연구회에 매일 찾아가 마당극 각색과 연출을 시작했다.
“3학년이지만 몸까지 불편한 장애우를 받지 않으면 안좋은 소문이 날까봐 허락했죠. 연출자가 되기 위한 첫 걸음이었습니다.”
졸업 이후 88년 극단 ‘성좌’에 극작가로 입단해 조연출부터 음향 등 다양한 분야를 섭렵했다.
아르바이트로 아마추어 극단의 연출을 맡아 실력도 쌓았다. 92년에는 직장인 연합팀 ‘꿈을 지키는 바보들’을 꾸려 장애인 야학과 관련시설 마련을 목표로 작품을 무대에 올렸다.
‘꿈지바’는 그에게 다양한 작품을 실험할 수 있는 수단이자 96년 전국 근로자 대통령상 수상의 기쁨을 안긴 의미있는 극단. 수상을 계기로 용인시청에서 시 예총 연극분과 극단 상임연출 섭외전화를 받게 됐다.
용인으로 삶터를 옮겼지만 지역 텃세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결국 97년, 시극단에서 나와 ‘유리’를 창단했다.
“처음에 ‘10년안에 경기도를 뚫겠다’는 말을 했죠. 말이 씨가 됐는지 전국연극제 출전하고 상을 탔잖아요. 이제 8년안에 전국을 뚫겠습니다.”
/류설아기자 rsa@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