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는 일에 마음을 빼앗긴 이들이 가을을 느낄 사이도 없이 깊어졌다. 가을의 한가운데에서 자신을 돌아보며 다시 만날 시간을 갖기도 전에 깊어졌다.
살아가는 일에 마음을 빼앗긴 이들에게만 그처럼 서둘러 가을이 깊어진 것이 아니다. 못내 가을을 그리워하며 기다리던 이들에게도 가을은 눈 내리는 겨울 저녁의 어둠처럼 재빠르게 깊어졌다.
가을 저녁 지는 노을을 바라보며 자신을 다시 만나기를 원하였던 이들에게도 가을은 나뭇잎 떨어져 황량해진 가지를 지나는 바람처럼 그렇게 깊었다.
가을이 깊어지더니 그 길로 겨울이 찾아들었다.
떠나는 가을도 그렇게 서두르더니 찾아오는 겨울도 그렇게 서둘러 왔다.
아침 산책길에 놓여진 탁자의 갈라진 틈마다 얼음이 끼었다. 채 떠오르지도 않은 아침 햇살이 탁자를 비췬다.
아침 햇살을 받은 얼음 조각들이 반짝이며 빛을 발한다. 영롱하다. 아름답다. 가슴 서늘해지도록 아름다운 기운이 내 가슴으로 스며든다. 눈부시다.
살아가는 일도 저처럼 아름다우면 얼마나 좋을까.
살아가는 일도 저처럼 아름다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푸드드드덕-’
‘푸-드-드-드-덕-’
나뭇가지 위를 바라본다. 수 십, 수 백 마리의 새들이 날아오른다. 날개 짓 소리 힘차다. 하늘을 향해 질서 정연하게 날아오른다.
한 무리가 아니다. 한 무리, 두 무리, 세 무리가 연이어 날아오른다. 새들이 날아오를 때마다 나뭇가지들이 흔들린다. 나무도 흔들린다.
어디로 가는 것일까.
남서쪽으로 날아가는구나. 갑작스런 추위에 서둘러 따뜻한 곳을 찾아 떠난다. 겨울을 따뜻한 곳에서 지내기 위해서 길을 떠난다.
봄을 기다리며 서둘러 길을 떠난다. 어느새 하늘 끝으로 사라진다. 하늘도 숲처럼 텅 빈 것만 같다.
새들조차 떠난 아침 숲길을 나뭇잎 사이로 드리우는 아침 햇살을 벗 삼아 걷는다.
그래도 모두 떠난 것은 아니다. 남아 있는 것들도 있다. 제 살던 곳이 그리워 차마 떠나지 못하는 새들도 있다.
나뭇잎 떨어지고 찾아오는 이의 발길도 끊어져 나무는 가난해지고 숲은 황량해졌지만 그래도 그리워하며 떠나지 못하는 새들도 있다.
바람만이 쓸쓸하게 머물고 있는 겨울 숲을 찾는 이들이 외로울세라 겨울 숲을 지키는 새들도 있다.
풍요롭고 아름다웠던 지난 날에 대한 그리움으로 모진 겨울을 견디는 새들도 있다.
‘시시티- 시시티-’
내 마음을 느낀 것일까. 내 마음의 말을 들은 것일까. 박새가 운다. 모두 떠나고 남아 있는 것들도 없는데 누구에게 알리느라 울어대는 것일까. 아니면, 모두 떠나 황량해진 겨울 숲을 찾은 내가 반가워서 우는 것일까.
고개를 들어 둘러본다.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울음소리는 여전히 정겹게 들려온다.
모두 다 떠난 겨울 숲에 박새와 나만 남아 있는 것 같다.
그래, 그러고 보니 너와 나는 참 닮은 것 같구나. 모두들 떠나고 먹을 것조차도 없어진 겨울 숲을 지키고 있는 것을 보니 말이다.
그래- 그런지도 모르겠구나. 화려하지도 않고 초라하지도 않은 검박한 모습으로 겨울 숲을 지키고 있는 네 모습을 보니 말이다.
아무리 겨울 숲을 지키고 있는 새라 할지라도 큰오색딱따구리처럼 화려하고 아름다운 새를 닮은 것 같지는 않구나.
언젠가 봄이 오겠지.
눈보라치는 이 밤만 지나면 봄이 오겠지.
모질고 모진 겨울만 지나면 봄이 오겠지.
그러면 따뜻한 봄날이 오겠지...
이렇게 하루하루를 지나며 봄을 기다리고 있는 네 모습을 닮은 듯 하다.
겨울이다. 깊어진 가을에 마음 풀어 놓을 사이도 없이 겨울이 왔다.
바람이 차다. 아침 숲을 지나는 겨울바람이 온 몸으로 스며든다.
옷깃을 여민다. 단단히 여민다.
몸으로 스며드는 바람이야 흘려보내면 그만이지만 마음으로 스며드는 바람이야 그럴 수 없다.
그래서 옷깃을 여민다.
아침 겨울 숲을 걸으며 옷깃을 여민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