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리움 때문이다. 지나 온 날들에 대한 그리움이다. 살아온 날들 동안 만났던 모든 것들에 대한 그리움이다.
사랑했던 모든 것들이다. 아버지, 어머니, 코흘리개 유년 시절을 함께 보내었던 얼굴조차도 희미한 친구들, 물고기 지천이던 시냇가, 거머리에 물리며 메뚜기를 잡던 미나리 논, 술래잡기를 할 때마다 나를 숨겨주던 옥수수 밭, 언제나 그늘을 드리우며 나를 위로해주던 키 큰 버드나무와 뒷마당에 있었던 우물 등이 그것들이다.
어디 그것뿐이랴. 인생의 길목마다 나를 기다리며 위로하고 이끌어주던 친구들, 산들, 나무들도 있다. 낯선 여행길에서 내 손을 잡아주던 낯모르던 이들도 있다.별도 있고 바람도 있고 비도 있다. 나뭇잎도 있다. 그 모든 것들에 대한 그리움이다.
사랑했던 것들에 대한 그리움만 있는 것은 아니다. 미워했던 것들에 대한 그리움도 있다.
내 마음에 지울 수 없는 깊은 상처를 주었던 사람들, 찢어지게 가난하기만 했던 유년 시절의 날들, 아기들의 버려진 주검들을 의미도 모른 채 바라보던 참담했던 어린 날들, 아무리 희망을 담아 띄워 보내도 언제나 돌아오지 않던 종이배들, 결코 용서할 수 없었던 나 자신의 어리석음에 이르기까지 미워했던 것들에 대한 그리움도 있다.
그 모든 것들에 대한 그리움이다. 그 모든 것들이 지나가버렸다. 흐르는 시간의 강에 몸을 싣고 흘러가버렸다.
다시는 만날 수 없다. 볼 수 없는 것들이다. 그래서 이처럼 그리워지는 것일까.
그런가. 정말 그런가.
참으로 바보 같은 생각이다. 어리석은 일이다.
지나간 것은 그들이 아니다. 나뭇잎이 아니다. 나무가 아니다. 바람이 아니다. 돌이 아니다. 산이 아니다. 지나는 것은 그들이 아니라 나의 삶이다. 내가 흐르고 삶이 흐르는 것이다.
그들은 지나간 것 같지만 언제나 거기 그렇게 있다.
그들은 사라진 것 같지만 언제나 거기 그렇게 있다.
지난 봄 그처럼 순수하게 움트던 여린 잎들도, 여름날 쏟아지는 빗속에서도 의연하게 자태를 뽐내던 나뭇잎들도, 가을날 제 몸 아름답게 물들이며 내게 그래도 삶은 아름다운 것이라고 말해주던 나뭇잎들도 모두 떨어졌지만 사라진 것은 아니다. 언제나 거기 그렇게 있을 뿐이다.
그들은 내가 살아가기 전에도 거기 그렇게 있어 서로를 느끼며 살아가고 있었고 내가 살아가 동안도 늘 거기 그렇게 머물러 있었다.
사라져 보이던 나뭇잎들도 다시 새로운 잎으로 살아나고 태풍에 뽑히고 넘어져 썩어버린 나무들도 다시 새로운 나무로 자라며 늘 거기 그렇게 머물러 있었다.
황량하기만 한 겨울의 들녘에서 사라진 듯 보이던 이름 모를 들풀들조차도 봄이 오면 어김없이 자라나 바람에 제 몸 흔들며 거기 그렇게 늘 머물러 있었다.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 것만 같은 바위들도 지나는 바람에 제 몸 나누어주며 흙이 되어 늘 그 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때로 다시 바위가 되기도 하면서 말이다.
그들은 늘 그 곳에 머물러 있었다. 지나는 것은 그들이 아니라 나 자신일 뿐이다.
사라지는 것은 그들이 아니라 우리의 삶일 뿐이다. 흐르는 것은 그들의 삶이 아니라 우리의 삶이다. 우리의 삶이 흐르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겨울의 한가운데에 서서 무엇을 그리워하고 있는가. 무엇을 그리워하며 아파하고 있는가. 무엇을 그리도 아쉬워하고 있는가.
그저 이 순간 그들을 느끼고 그들의 말을 들으며 그렇게 살아가면 되는 것을. 사랑했던 것들만 아니라 미워했던 것들의 마음의 말도 듣고 느끼며 살아가면 되는 것이다.
아픔은 아픔대로, 고통은 고통대로, 분노는 분노대로, 회한은 회한대로, 슬픔은 슬픔대로, 어찌할 수 없는 어리석음은 어찌할 수 없는 어리석음대로, 아쉬움은 아쉬움대로, 기쁨은 기쁨대로, 사랑은 사랑대로 그렇게 느끼며 살아가면 되는 것이다.
그러면 다시 맞을 인생의 봄날 모두 새로운 생명으로 자라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되는 것이다.
겨울이 깊어간다.
겨울만 깊어가는 것이 아니다.
산도 나무도 바람도 모두 저마다 많은 이야기들을 가슴에 담으며 깊어간다.
그렇게 우리의 삶도 깊어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