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문명이 발달하기 시작하면서 우리는 조상들이 누리지 못했던 많은 혜택을 누리고 있다.
자동차, 핸드폰, 컴퓨터 등이 등장하면서 보다 편리한 생활을 영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얻는게 있으면 잃는게 있다는 말처럼, 기계에 의존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알게 모르게 조금씩 잃어가는 것이 있는 것 같다.
그중 하나가 네비게이션의 등장으로 잃어가는 나의 기억력이다.
가끔 인천으로 출장을 가는데 나는 네비게이션을 구입하기 전에는 인터넷으로 약도를 복사하거나 직접 관계자와 통화를 해 위치를 확인한 후 목적지를 가곤 했다. 그렇게 몇 번 가고나면 어느정도 지리가 눈에 익고 나름 주변지역까지 폭넓게 기억해 두곤 했다.
하지만 네비게이션을 구입한 후에는 기계에 목적지를 입력해 용감하게 출발했고, 몇 번 편리함에 익숙해진 후에는 아예 기계를 전적으로 믿어버리게 된 것이다.
그런데 얼마 전 또 인천으로 출장을 가던날, 나는 거침없이 목적지를 누른 후 위치도 모르는 곳이지만 용감하게 출발을 했다.
네비게이션은 57분이라는 시간이 소요될 것이라고 했고, 여유있게 음악을 들으며 유유히 가고 있는데 40분쯤 지났을까 가는 길이 왠지 낯설지 않다는 느낌이 들었다. 골목 골목 안내를 하는 네비게이션을 따라 생각없이 가다보니 길을 구비구비 갔다는 것을 알았다. 한달 전 방문했던 회사의 건너편 건물인데 기계가 시키는 데로 골목길로 들어서는 바람에 빙 돌아서 간 것이다. 이 사실을 알고는 그냥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 일이 있은 후 친구들과 만난 자리에서 얘기 나누다 보니 나와같은 경험을 한 친구들이 생각보다 많았다. 몇 번 간 길도 아예 기억하지 못하거나 알고 있는 곳도 기억이 가물해 네비게이션을 아예 누르고 간다는 것이다.
때로는 우리 자신의 기억력과 우리가 갖고 있는 소중한 경험이 기계보다 더 좋을 수 있다.
그럼에도 우린 기계에 의존해 우리 자신을 외면하고 있지는 않은 지 한번 쯤 되돌아보는 것은 어떨까.
김 진 호 <안산시 고잔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