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년 전 3월 1일 한반도는 독립만세의 함성으로 진동했다. 1910년 한일합방으로부터 10여 년을 인고하던 전 민족이 분연히 일어선 것이다. 함성의 무리에서는 신분, 연령, 남녀 차이도 없었고, 이념과 종교도 통합되어 있었다. 동학을 계승한 천도교를 중심으로 운동의 대중화, 일원화(대동단결) 그리고 비폭력이라는 3대 원칙이 정해지고 기독교와 불교계가 동참했다. 종교계가 중심일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평화적 운동방식을 고수했기 때문이었다.
서울을 기점으로 시작된 독립만세는 전국으로, 3월 말에는 만주, 시베리아, 미주 등 해외에서까지 조선이 자주독립국가임을 선언케 했다. 2만여 회에 걸친 시위에 동원된 인원이 500만 명을 넘었다. 투옥된 조선인이 4만7천여 명에 이르렀다. 특히 운동의 3대원칙 중 비폭력 무저항이라는 운동방식은 세계에 충격을 주기에 충분했다.
무저항은 만세운동을 잔인하게 압살하던 일제를 무력감에 빠져 스스로를 부끄럽게 만들었다. 훗날 우리의 3·1운동 소식을 접한 인도의 시성 타고르는 “동방의 등불 코리아, 그 등불이 다시 켜지는 날에, 너는 동방의 밝은 빛이 되리라”라고 찬탄했다. 그 빛은 간디의 사티아그라하(satyagraha) 운동으로 이어졌다. 간디는 영국정부의 통치에 비협력, 불복종, 무저항함으로써 영국을 스스로 굴복하게 만들었고, 1763년부터 시작된 영국의 인도통치를 종식시켰다. 우리의 3·1운동이 없었다면 20세기의 성인 간디도 없었고, 인도의 자랑스러운 독립도 불가능했다.
이 위대한 3·1 정신은 오늘 우리에게 어떻게 계승되고 있는가. 운동의 대중화는 곧 민주주의적 정책결정과 집행에서 국민의 참여를 의미할 것이다. 국민이 원하는 그리고 희망하는 정치로의 추구가 곧 이 시대의 대중화이다. 일원화는 어떠한가. 작금은 민족대통합이란 말을 꺼내기도 부끄러울 정도이다. 대선의 해인 금년은 더욱 어려워 보인다. 그러나 더 어려운 때에도 지도자들은 그것을 이루었다. 시기가 문제가 아니라 여전히 지도자의 능력이 문제인 것이다.
결국 3·1정신의 올바른 계승은 국민통합을 어떻게 이어받느냐에 달려있는 셈이다. 그리고 비폭력 정신은 건조하게 황폐해진 우리의 마음에 여유를 줄 것이다. 오늘 모든 운동에 비폭력무저항 보다 더한 무기는 없다. 작금의 모든 운동단체들이 3·1정신을 배워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처럼 3·1정신은 영원히 살아 우리의 소중한 자산이 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