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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룡문]사채의 비극

이태호 <객원 논설위원>

도스토예프스키의 걸작 소설 ‘죄와 벌’의 주인공인 가난한 학생 라스코리니코프는 선택된 강자는 인류를 위해 사회의 도덕률을 딛고 넘어설 권리가 있다는 나폴레옹적인 결론에 심취하여 이(蝨)와 같은 고리대금업자 노파를 살해한다. 옳은 일을 했다고 믿었던 그는 예심판사 포르필리의 추궁에는 논리적으로 맞서나가면서도 양심의 가책을 받아 희생과 고뇌를 달게 받으며 살아가는 윤락녀 소냐에게 찾아가 범행을 고백한 후 자수하여 시베리아로 유형 당한다.

살인적인 높은 이자를 받고 돈을 빌려주는 사채업자들이 은행과 제2금융권으로부터 신용불량자로 낙인찍힌 채 급하게 돈이 필요한 서민들에게 수혈(輸血)하는 긍정적 역할을 담당하기도 하지만 연 300-400%의 높은 이자를 받거나 채무자들이 하루 이틀만 연체돼도 욕설, 공갈, 위협을 일삼음은 물론 부녀자들에게 폭행을 가하거나 윤락가로 넘기는 등 파렴치한 주인공으로서 악명을 떨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서양이나 동양이나 같다.

안성경찰서는 3월 1일 오후 8시 사채업을 하며 함께 사는 40대 여성 2명을 안성시 사곡동 야산으로 데리고 가 엽총으로 살해한 뒤 시신을 파묻은 혐의로 유모(47)씨에 대해 23일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유씨는 숨진 여성들이 자신의 아내에게 빌려준 돈 5천만 원을 갚으라며 심하게 독촉하자 이를 변제하겠다고 속여 범행한 것으로 드러났다. 피의자는 고통을 받는 채무자들의 한을 드러내고 있지만 돈을 빌려준 사람들을 죽여서 암매장까지 하는 잔인성을 드러냈다.

우리나라에는 등록된 대부업체가 1만 3천여 곳에 이른다. 하지만 등록하지 않은 대부업체까지 포함하면 4만여 곳이 성업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급전이 필요한 서민들에게 돈을 빌려주고 높은 이자를 받아 원금보다 수십 배의 이자를 챙기기도 한다. 경제 관리들은 경제지표가 좋아지고 있다고 흐뭇해하지만 서민경제는 위축되고 서민들은 사채의 올가미에 걸려 쓰러지고 있다. 경제가 위에서 아래까지 풀려 사채를 둘러싸고 피를 보는 비극이 더 이상 없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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