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한 예술품으로서 그리스 시대의 조각을 예로 들자면 플락시텔레스나 피디아스의 작품을 들 수 있다.
두 작가의 작업은 공통적으로 대리석 덩어리를 쪼고 다듬어 생명력을 불어 넣는 것인데 작품 성향은 각기 전혀 다르다.
프락시텔레스의 작품은 비교적 여유로움과 부드러움이 담긴 유연한 곡선이 특징이며, 자율적인 창의성과 고유성을 자율적인 관조 속에서 찾고자 한다.
차가운 대리석에 뜨거운 생명을 불어넣다
작품이란 거울에 비쳐지는 것과 같은 형상이 아닌, 대상을 어떻게 보고 느끼는가에 따른 개인의 창조세계라는 의미에서 볼 때 당시 플락시텔레스의 작품 세계는 주목할 만한 일대 사건이었다. 반면에 피디아스의 작품은 숭고함과 장엄함을 바탕으로 한 것이었다. 이처럼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예술작품이란 개개인의 예술성에 달려있으므로 위대할 수 있고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이다.
유연함과 순수함을 바탕으로 대리석 작업을 하고 있는 이경재의 작품은 이런 의미에서 볼 때 흥미로움을 준다. 그의 작품은 마치 어린 시절의 순수한 추억이 마음 한 구석에 자리하고 있는 것처럼 아름답고 순결하기까지 하다. 또한 독특하고 서정적인 감흥을 주며 나와 내 이웃의 삶의 모습을 정감 있게 시적으로 형상화했으므로 미술을 잘 모르는 사람들도 쉽게 접근할 수 있고 금방 이해할 수 있다.
이경재의 작업실은 경기도 용인의 어느 나지막한 산 옆에 자리하고 있다. 필자가 처음 그의 작업실에 갔을 때 그는 그리 크지 않은 단아한 여인의 모습을 형상화시키는 데 온 힘을 쏟고 있었다. 절제된 볼륨감과 정제된 순수함을 바탕으로 우리 여성의 부드러운 이미지가 조탁되고 있었다.
그의 작업실은 작품에서 느껴지는 특별한 감성적 이미지와는 달리 참으로 덤덤한 차림새를 하고 있었다. 입구에 서있는 오죽(烏竹)의 무리들과 작업실 앞을 지키는 두어 마리의 국내산 견공을 제외하고는 눈길을 줄만한 것이 거의 없어서 썰렁하기조차 하였다. 그곳은 한 예술가가 잡념 없이 작업에만 몰두해 온 치열한 삶의 현장처럼 느껴졌다.
이경재의 작품은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소재로 하면서도 외적인 모습에만 치중하지 않고 순수성을 지향하고 있다. 따라서 그의 작품에 내재되어 있는 인간적인 정감은 보는 이에 따라 각각 다르게 전달될 수 있다. 그의 작품들은 대체적으로 부드러운 여성의 이미지뿐만 아니라 어머니와 아들의 모습 또는 다정다감한 부부의 형상, 무언가 상념에 빠진 듯한 어린 소년의 모습 등을 담고 있으며 인물들은 마치 각자 마음에 담은 어떤 이야기를 전하는 듯 하다. 작품의 크기는 대체적으로 비슷하며 유연하고 부드러운 선의 흐름을 지니고 있다. 특히 포근한 표정의 여인네의 모습에서는 어머니의 숨결을 느낄 수 있다.
작가 이경재는 줄곧 대리석 작업에 열중해 온 작가이다. 그가 대리석을 대하는 자세는 하나의 의식을 행하는 것처럼 정중하다. 그는 인간에게서만 느껴지는 추상적인 감성을 더욱 구체적으로 형상화시키는 고난도의 작업에 열중한다. 그의 일련의 작품들은 절제된 볼륨과 곡선으로부터 축약된 신체의 골격을 지닌 감미로운 균제(均齊)로부터 시작된다. 흐름에 따른 대담한 가감 속에서 드러나는 함축된 생략은 한 인간이 지닌 행복과 아픔을 오묘하면서도 여과 없이 드러낸다. 여기에 인간적인 따스함과 포근함이 하나가 되어 다양성에 통일감을 이루고, 그 기저에는 삶으로부터 나온 정신적인 충만함이 함께 한다. 인간에 대한 애정 그리고 삶에 대한 번민이 조화를 이루고 여기에 신의 사랑이 녹녹하게 녹아있는 게 그의 작품의 특징이다.
아직 겨울바람이 시리지만 작가 이경재의 손은 쉴 틈이 없다. 그는 사람과 사람간의 이야기 혹은 신과 사람의 이야기를 직접 조각하고 사포로 밀며 무념무상의 시간들을 보낸다. 한 사람의 조각가가로서의 삶을 신이 주신 숙명처럼 여기고 묵묵하게 삶을 조탁하는 외로운 길을 걷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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