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녀의 영역이 하나둘 사라진지 오래지만 5~6년 전까지도 그런 전통을 고수해온 직업이 말 수의사다.
여성이란 편견 때문이기도 하기만 워낙 위험하고 힘들어 전통적으로 남성들의 몫으로 으레 생각해왔다. KRA(한국마사회) 여성 수의사 정효훈(30)씨가 이 같은 관행을 깨뜨린 1호다.
그가 담당하는 분야는 산과진료와 망아지진료. 사람으로 치면 산부인과와 소아과를 동시에 맡고 있으나 일반인들이 상상하기 힘든 작업의 연속이다. 난산으로 인해 산도에서 죽은 망아지를 줄 톱으로 잘라 빼내는 절태술부터 난이도가 높은 수술은 산적하다.
남자도 하기 힘든 일을 너끈히 해내는 배짱과 담력을 가진 그녀는 지난 2005년 마사회에 입사했다. 국내 수의과대학에 편입, 개 피부학으로 석사학위를 따고 국가수의사고시에 전국 차석으로 합격했으나 우연찮은 기회에 말 수의사란 직업을 접한 것이 계기였다.
“어렸을 때부터 소나 말 같은 큰 동물을 좋아했어요. 말 수의사는 거부할 수 없는 나의 운명처럼 받아들이고 있어요.”
그의 말대로 말 수의사가 운명이라 하지만 진료과정에서 몸을 다치는 등 위험에 노출돼 항시 긴장의 연속이다.
특히 몸무게가 500kg이 넘는 경주마는 천성적으로 겁이 많고 잘 놀래 진료하는 도중엔 한시도 마음을 놓을 수 없다.
상처봉합과 목구멍으로 내시경 집어넣기, 거세수술 시 위험을 느낀 말이 본능적으로 뒷다리 발길질을 해대면 자칫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여자라고 이런 위험에서 비켜날 수는 없는 법. “한 번은 직장검사 도중 말이 주저앉는 바람에 팔이 꺾여 인대가 늘어난 적이 있어요. 아파서 죽는 줄만 알았어요.”
그럴 땐 그만두고 싶지 않았냐는 질문에 “선배 중엔 갈비뼈가 부러지거나 내장이 파열된 분들도 있어요. 그에 비하면 이 정도는 약과죠”라며 웃어넘겼다.
당찬 그녀도 입사 초기엔 여성이란 편견을 가진 주변 사람들로 인해 마음고생이 심했다. 진료소를 찾은 조교사들이 진료복을 입고 앉아 있는 그녀를 외면하고 “수의사는 어디 갔느냐”고 딴청을 부릴라 치면 상한 자존심에 눈물이 쏟아지는 걸 꾹 참아야했다. 이제는 성실한 진료를 인정받아 전폭적인 신뢰를 얻었으나 당시를 회상하면 걷어치우고 견딘 자신이 대견스러울 정도다.
“경주마가 다리가 부러져도 멈추지 않고 달려 1등을 차지하듯 저도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이 길을 꿋꿋이 걸어갈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