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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가 개인전을 연다고 할 때 어떻게 축하하면 좋을까. 얼른 생각나는 건 양란 화분이다. 명망가나 사업가라면 큼직한 화환을 떠올릴 것이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해 이는 바람직한 방법이 아니다.
인사동 거리의 한 화랑. 화가 모씨는 지하 1층과 지상 2층에 그림 40점을 내걸어 개인전을 열고 있다. 입구에서 지하 1층과 지상 2층에 이르는 비좁은 계단 양쪽을 줄줄이 메운 것은 크고 작은 화환과 화분들. 대형 화환과 화분이 10개가 넘고, 소형 화분도 30여개에 이른다.
이 화환과 화분들은 '축 ○○○ 개인전' 등의 문구가 쓰인 리본을 길게 늘어뜨리고 있다. 방문객은 미술품에 앞서 화환과 화분부터 비좁은 입구와 계단에서 감상해야 한다. 미술전시장이라기보다 화원에 와 있는 느낌마저 든다.
가족, 친척, 친구 등 가까운 미술가가 모처럼 전시회를 가질 때 이를 축하하고 싶은 것은 인지상정이다. 물론 인사치레로 보내는 경우도 많다. 동기가 무엇이든 화환과 화분은 전시회에 적합하지 않다고 미술인들은 입을 모은다. 본래 의도와 달리 전시회의 품격을 떨어뜨리기 때문이다. 가게나 회사 개업식 때의 크고 작은 화환은 행사를 빛낼 수 있지만 전시회에서는 전혀 그렇지가 않다.
전시회에서 시선을 끄는 것은 당연히 작품이어야 한다. 전시공간의 벽과 천정을 하얗게 칠하는 이유는 주인공격인 작품을 최대한 드러내기 위해서이다. 다시 말해 제대로 된 전시회라면 작품을 왜소화하거나 그 예술성에 간섭하는 요소는 사전에 철저히 제거해야 한다.
전시장 안팎의 화환과 화분은 이에 정면으로 배치된다. 이 '축하사절'들이 크고 화려하고 강렬할수록 작품은 빛을 잃는다. 축하한다는 게 그만 전시를 망치는 역효과를 낳는 것이다. 하객이 신랑신부보다 화려한 의상을 입고 결혼식장에 참석하는 경우와 유사하다고 하겠다. 한 마디로 관객의 시선은 작품에 집중돼야 한다. 그런데 대부분의 화환은 자극적 색깔인 붉은색이 중심을 이룬다.
이런 인식이 확산되면서 화환과 화분이 근래 들어 많이 줄어드는 추세다. 갤러리상의 큐레이터 신혜영씨는 "인사동 거리의 화랑에 국한해 볼 때 화환과 화분의 숫자가 해마다 감소하고 있음을 실감한다"고 들려준다. 다만 전시문화에 익숙하지 못한 사람들이 아직도 별 생각없이 화환 등을 보내는 관행이 일부 남아 있다는 얘기다.
화환과 화분이 많은 전시회는 공통점이 있다. 지방작가, 신진작가, 대관작가 그리고 체면을 중시하는 중견ㆍ원로작가일수록 화환을 앞세운다. 일부 작가는 전시회를 위세 과시의 기회로 활용하기도 하고, 인맥에 민감한 작가들도 은근히 화환에 신경을 쓴다.
화환과 화분은 사후처리도 쉽지 않아 이래저래 골치만 썩힌다. 특히 화환은 규모가 크고 재활용 가치도 없어 애물단지라는 것. 앞의 사례처럼 작품보다 화환과 화분이 더 많아 주객이 뒤바뀌는 사례도 가끔 발견된다. 화환의 경우 3일만 지나면 시든 꽃잎이 하나둘 떨어져 바닥을 지저분하게 한다.
사비나미술관 이명옥 관장은 "화환이 많은 전시일수록 프로 이미지가 없을 뿐 아니라 초보이거나 허세 부리는 작가라는 부정적 느낌을 준다"면서 "전시를 진정으로 축하해줄 수 있는 방법을 지혜롭게 방문객과 작가들이 함께 찾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 하나로 축의금이나 간단한 선물로 화환이나 화분을 대신하자는 것이다. 출판기념회 등에 가서 축의금을 건네는 것을 자연스럽게 생각하듯이 전시회 개막도 실속 중심으로 축하할 수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작가들은 전시준비에 제법 많은 돈이 들어 축의금을 내심 반길 수 있다. 화환이나 화분을 꼭 선물하고 싶다면 크기가 작고 나중에 집으로 가져갈 수 있는 화분이 차라리 낫다.
오는 22일까지 인사동 갤러리상 1층과 2층 전관에서 열리는 한국화가 하태진씨의 개인전은 그 모범사례에 해당한다. 올해 정년으로 대학강단에서 물러나는 하씨는 전시초청장에 '화환은 정중히 사양한다'는 문구를 넣었다. 한국 화단의 대표적인 작가가 정년퇴임 기념전을 연다면 당연히 대형 화환들이 즐비할 것이었다. 그러나 드넓은 전시장 입구에는 소형 화분 셋만이 덩그렇게 놓여 있다. 하씨는 이렇다할 전시개막 행사도 갖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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