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4일부터 12일까지 본사 최연식 기자는 김포시 금학회의 네팔 문화교류 팀과 합류해, 네팔의 풍광과 문화교류팀의 활동을 취재한 후 귀국했다. 세계의 지붕이라 일컫는 히말라야의 만년설과 네팔인들의 생활상 그리고 그들의 문화와 풍경을 생생하게 보고 온 최연식 기자의 취재기를 3회에 걸쳐 연재한다. -편집자 주-
-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 석가 탄생지 룸비니 동산 -
일행은 카투만두를 떠나 석가모니가 탄생했다는 룸비니로 가기 위해 공항으로 향했다. 40여분을 비행하는 동안 비행기 우측 창문으로는 저 멀리 히말라야의 설봉들이 나란히 서서 따라왔다. 그 모습은 달력에서나 보았던 바로 그 모습이었다. 신들의 고향 히말라야! 하늘을 향해 팔 벌리고 서 있는 그 늠름한 자태는 어쩌면 저 산을 오른다는 것 자체가 신의 영역을 침범하는 불경죄라고 생각되기에 충분했다.
룸비니 동산으로 가는 길은 비포장으로 일행이 탄 버스는 꽁무니에 흙먼지를 날리며 달렸다. 룸비니 동산으로 가는 중에 석가의 탄생지에 자국의 사찰을 지으려는 세계 각국의 요청으로 네팔이 100년간 사용을 허락한 지역을 둘러보았다.
긴 행렬을 따라 석가의 발자국이 안치된 사원 안으로 들어갔다.
30여분을 기다려 드디어 석가의 발자국을 친견할 순서가 됐다. 석가의 발자국을 보는 시간은 불과 3-5초에 불과했다. 뒤에서 밀고오는 사람이 너무 많아 살필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주지 않았다.
드디어 차레가 되어 한길 깊이의 석가모니 부처님의 발자국을 보려니 조명도 어두운데 그 돌을 유리로 감싸놓아 자세히 보이지 않았다. 그저 바위에 움푹 패인 흔적 정도로만 니식될 뿐이었다. 안내 경계인의 독촉에도 불구하고 모르는 척 카메라로 서너 컷을 열심히 눌렀으나 후레쉬가 터지면서 유리에 반사되어 제대로 형체를 알아볼 수 없었다. 다행히 그 중 한 컷은 그나마 어렴풋이 흔적이라도 알아볼 수 있어 이를 기쁨으로 여겨야 했다.
룸비니 사원을 나서니 저녁 햇살이 힘을 잃고 서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열대의 숲은 푸른 숨을 쉬었고 붉은 꽃들은 이국적 정취를 가슴에 안겼다. 숙소로 돌아가는 동안 버스 안에서 많은 생각이 스쳐갔다. 석가의 발자국을 친견한 것이 축복이라도 받은 기분이 들었고 힘든 걸음을 옮겨 룸비니를 돌아본 것도 축복으로 여겨졌다.
더구나 수많은 라마승들이 어디론가 바삐 향하는 모습을 보면서, 왕족의 신분을 버리고 고행을 택해 깨달음을 얻은 석가를 생각하면서, 화장터에서 본 삶과 죽음의 경계를 생각 하면서, 내가 살아온 날과 남은 날들을 생각 하면서, 삶이 무엇인지, 무엇 때문에 사는지, 살아야 하는지, 스스로 부처가 될 수 있는 깨달음은 무엇인지, 윤회는 있는 것인지, 나는 왜 여기에 머물게 된 것인지 등을 생각하며 숙소로 향했다.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