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일독립운동의 상징이자 조국의 통일을 위해 노력하다 암살된 비운의 영웅인 백범(白凡) 김구(金九)선생이 경마를 즐겼다는 사실은 무척 흥미롭다.
이봉창·윤봉길 의사의 폭탄투척 의거를 지휘하는 등 항일 무력투쟁 선봉에 섰고, 해방 후엔 통일정부 수립을 위해 노력한 김구 선생의 취미가 경마였다는 것은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당시 주말마다 경마가 열리던 신설동 경마장 3층 귀빈실에서 언제나 두루마기를 입고 마권을 흔드는 김구 선생을 보는 것은 어렵지 않은 광경이었다. 다만 그가 어떤 말을 좋아했고 베팅을 어떻게 했는지 여부는 자세한 자료가 남아 있지 않다.
백범이 경마를 좋아한 이유는 자신의 호방한 기질에 딱 맞아 떨어졌고 기수들과 각별한 사연도 한몫했다. 1946년 조국광복을 보지 못하고 중국 충칭에서 타계한 모친 곽낙원(郭樂園) 여사의 유골을 조국으로 모셔다 정릉 뒷산에 안장할 때 기수들이 기마의병대로서 호송을 맡아주었다. 곽 여사는 생전에 자신의 생일잔치 비용을 항일투쟁 무기구입자금으로 헌납하고, 찬거리를 줄여 군자금에 충당하는 등 아들 못지않은 애국자였다. 김구 선생은 기수들이 어머니의 유골을 호송해준 것에 대해 무척 고맙게 생각했다고 전해진다. 기수들에 대한 이런 고마움이 경마에 대해 각별한 애정을 갖게 된 계기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해방 직후 신설동 경마장은 국내 요인들의 휴식처와도 같은 곳이었다. 당시 3층 귀빈실에서 경마를 즐겼던 주요 인물로는 이승만 박사와 프란체스카 여사, 조선주둔 초대 미군사령관 하지 중장, 2대 군정장관 러치 소장, 해공 신익희 선생, 조병옥 박사, 조소앙 선생, 초대 대법원장 김병로 선생, 의산 최동오 선생 등이 있었다.
조선마사회는 지금의 대상경주에 해당하는 상전(賞典)레이스를 개최했다.
조선주둔군 미사령관 하지상, 미 군정장관 러치상, 군정청농무부장상, 한국마사회장상 등이 계절마다 시행됐다.
또한 귀빈실을 찾는 명사들의 이름을 따서 특별상 경주를 편성하기도 했는데, 주목할 만한 상은 이승만상과 백범 김구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