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은 길들여지는 순간부터 부리기 쉽게 발굽에 편자가 박았다. 편자가 만들어지기 전엔 칡(葛)으로 신발 같은 것을 짜서 편자대용으로 쓰기도 했다.
편자는 지금의 이란 지방에 있었던 파르티아(B.C.247~A.D.226)왕국에서 유래한 것으로 알려져 있고 중국은 철제 편자를 당나라 (618~907년)이후에 사용했다고 전해진다.
옛날 중국 편자는 제철(蹄鐵)이라 했으나, 우리나라는 중국 제철과는 연관없이 독자적으로 편자를 개발해 사용했다.
우리나라에서 편자를 처음 발명한 사람은 바로 조선시대의 문신 윤필상(尹弼商, 1427~1504년)이다.
윤필상은 파평 윤씨로 세종 때 문과에 급제, 승승장구하며 영의정까지 지냈으나, 연산군 때 연산군의 생모 윤씨의 폐비를 막지 못했다하여 사약을 받고 죽은 인물이다.
‘증보문헌비고’에 따르면, 성종 10년(1479년)에 윤필상이 건주(建州)의 여진족을 정벌하러 갔을 때 땅이 얼어 미끄럽고 말이 발을 붙이지 못하자 발굽처럼 둥글고 아래가 양 갈래로 갈라진 쇳조각을 만들어 발굽 밑에 붙였다.
그 후로 사람들은 윤필상을 본받아 계절을 가리지 않고 쇠를 발굽에 붙이니 먼 길을 가더라도 말이 발굽을 다치지 않으므로 편리하게 여겼다고 한다.
윤필상의 발명품은 칡으로 만든 미끄럼방지 신발을 대신한 것으로 대갈(代葛)이라 불렀다.
하지만 이토록 편리한 편자에 대해 반대론자도 없지 않았다.
장자는 일찍이 편자가 말을 부리기에는 편한 것이나 자연적인 생리현상을 거슬러 말을 혹사시켜 빨리 노쇠하게 만든다고 했고 조선후기 실학자인 이익도 ‘말에게 물어본다면 편자만큼 말에게 해로운 것이 없다고 대답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편자는 이제 없어서는 안 될 ‘말의 신발’이 되었고 윤필상은 우리나라 마정사(馬政史)에서 가장 획기적인 업적을 이룬 인물로 남았다. 일부 학자들은 발해의 유적에서 편자가 출토된 사례로 미뤄 우리나라 편자의 유래는 보다 심층적인 연구가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