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시대일수록 소외계층이나 서민들의 삶은 더 팍팍해지게 마련이다. 부자는 망해도 3년은 간다지만 가난한 사람들이 망하면 더 이상 갈 곳이 없다. 하루살이가 문제인 것이다. 그래서 더 기대하게 되는 것이 부자들의 자선사업이다.
우리사회가 부자기업을 보는 눈은 지극히 부정적이다. 일반적인 사회적 정서가 그렇다는 것이다. 최근에 부상하기 시작한 ‘사회적 기업’이란 말이 아주 생경하게 들리는 것도 이 같은 반 기업 정서가 밑바탕에 깔려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즘 같은 극심한 경제 불황에도 장학재단은 속속 생겨나고 장학금 지원액수도 오히려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너무 깊고 넓게 깔려있는 반 기업 정서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필요한 시기가 아닌가 싶다.
현재 국내에는 자산 100억이 넘는 장학재단이 100곳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증여와 기부를 가장한 위장장학재단이라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장학활동이 어느새 우리사회 기부문화의 주체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것이다. 90년대 이후 등장한 사회적 기업의 정의를 글자 그대로 실천하는 모범사례들이 미친 영향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미국에서는 성장하고 있는 사회적 벤처기업들의 영향을 받은 청년단체들이 국가와 시장에서 실패한 사회 서비스 분야에서 활발한 활동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에서도 사회적 기업 육성법이 제정되어 대학 간 협력으로 진행되는 사회적 벤처기업경연대회 등이 치러지기도 했다. 이 같은 사회적 기업 운동에 적극 참여하고 있는 젊은이들의 대부분이 장학금을 지원받았던 대학생들이라는 사실이 우리사회의 큰 변화를 기대하게 하는 것이다.
오직 수출만이 살길인 대한민국 경제가 기댈 곳은 역시 수출기업뿐이다. 변변한 자원 하나 없는 이 땅에서 사람의 힘은 우리의 가장 소중한 자산이다. 탈법과 편법으로 떼돈을 버는 것 아니냐는 부정적인 시각을 모른체 하라는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기업이 일구어내는 기업들의 사회적 기여도는 인정해야 한다는 말이다. 미국의 사례지만 신원을 절대로 밝히지 않기로 약속한 후 각 대학에 수백억의 장학기금을 내 놓은 미담이 요즘 대학가의 화제로 떠올랐다. 그것도 유색인종, 소수민족, 장애학생을 중심으로 사용해 줄 것을 당부한 쾌척이었다. 또한 장학기금을 받은 대학의 총장들은 대부분 여성이었다. 소외계층, 약소계층에 대한 확실한 배려였다. 개같이 벌어서 정승같이 쓴다는 한국의 옛 말은 더 이상 우리만의 것이 아닌 세상이 됐다.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 세상을 더 좋게 만들 수 있다는 신념이 이들 사회적 기업을 경영하는 사람들이다. 우리도 기업을 보는 시각의 전환이 필요한 때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