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오늘 피의자 신분으로 대검 중수부(이인규 검사장)에 출두하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난처한 모습을 보게 된다. 검찰은 노 전 대통령 소환 조사에 앞서 심문사항 300개를 준비하고, 가능하면 30일 한 차례 조사로 끝낼 예정이지만 조사에 진척이 없으면 5월 1일 새벽까지 연장할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노 전 대통령은 검찰 소환에 앞서 검찰이 보낸 서면질의에 답변서를 제출한 바 있다. 그러나 중요 혐의점에 대해 불분명한 답변을 하거나 종전에 했던 말과 다른 주장을 담고 있는 것으로 밝혀져 심문과정에서 검찰과의 충돌이 예상된다.
알다시피 노 전 대통령은 청와대 정상문 총무비서관(구속)이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에게서 받아 권양숙 여사에게 전달했다는 3억원, 회갑기념으로 받은 개당 1억원 상당의 시계 2개, 역시 박회장으로부터 받아 청와대 관저로 전달했다는 100만 달러와 500만 달러에 대한 뇌물 수수혐의를 받고 있다. 이밖에 정 전 총무비서관의 청와대 특별활동비 횡령 사실까지 드러나 노 전 대통령으로서는 이래저래 곤혹스러운 처지가 되고 말았다. 그러나 피의 사실이 확증되기 전까지는 의심 가는 혐의일 뿐이기 때문에 속단은 금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히 해둘 것은 있다. 이번 사건은 노 전 대통령과 그 가족들이 연루된 대통령 일가의 총체적 비리라는 점에서 보다 엄격한 조사를 해야하고, 혐의가 사실로 드러나면 엄중한 사법 처리를 해야한다는 점이다.
노 전 대통령은 대선 과정과 재임 기간 동안 일관되게 도덕성과 청렴성을 강조하면서 이 땅에 만연된 부정부패를 뿌리 뽑겠다고 외쳐왔다. 부정부패에 진절머리 내던 다수의 유권자들은 그 말을 믿고 그를 대통령으로 뽑았고, 그는 대통령의 권좌에 앉을 수 있었다. 그러나 퇴임 1년여 만에 국민 앞에 드러낸 그의 진실은 표리부동(表裏不同)의 전형을 보여 준 것밖에 없다. 지금 국민들은 검찰이 밝히고자 하는 혐의 그 자체보다는 믿었던 대통령으로부터 당한 배신감 때문에 더욱 분노하고 있다. 따라서 검찰은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는 지키되 조사는 철저히 해서 사건의 진위를 밝혀내야할 것이고, 노 전 대통령은 법률전문가의 이점을 살려 방어권 행사만 하려 들 것이 아니라 죄가 있으면 처벌 받는 의연한 자세를 보여 주어야 할 것이다.
그래야만 배신감을 느끼던 국민들도 일부나마 분노를 삭일 수 있고, 노 전 대통령도 국민에 대한 최소한 예의를 지키는 길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