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시 매사 좀 굼뜬 편이라 그 유명한 워낭소리를 얼마 전에 관람했다. 처음엔 원앙(鴛鴦)소리인줄 알았다. 잉꼬와 더불어 금술 좋은 부부들의 대명사로 불리는 원앙 한 쌍, 다정스러운 부부의 사랑의 목소리, 약간의 콧소리(鼻音)가 섞인 조금은 에로틱한...
그런데 거리에 붙은 포스터를 보니 ‘사람은 가끔 마음을 주지만, 소는 언제나 전부를 바친다’라는 무거운 말을 적어 놓고 그 밑에는 코심지 밑에 종(鍾)을 단 늙은 소가 다소곳이 서 있다.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격조(格調)높은 다큐멘터리 영화였다. 사람은 자기 수준에서 모든 걸 연상한다더니, 나는 왜 항상 이 정도 수준에 머무르고 있을까?
아내의 강요도 있었지만, 개봉 한 달도 안돼 200만명 돌파라니 얼마나 대단한 영화인지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해 봐야겠다는 호기심도 발동했다. 상영시간 1시간20분동안 멀리서 팝콘 먹는 사각사각 소리까지 크게 들릴 정도로 관객 모두가 영화에 빠져 있었다. 좋은 다큐멘터리란 인위적(人爲的)인 연출이 없어야 더욱 훌륭한 법이다.
평생 극장 한 번 가지 않았을 듯 보이는 두 분 노인들을 보니, 연출이 있을 수 없고, 또 감독이 의도하는 연출을 따라주었을 리도 없다. 그러고 보니 주인공 두 분의 순수함이 더욱 영화를 가치 있게 만든 것이 아닐까? 어느 명배우가 이처럼 감동을 줄 수 있을까?
주인공은 팔순 농부와 평균수명(소의 평균수명 10~15년)을 훨씬 넘긴 40년 된 늙은 소. 할아버지에게 자가용이자 트랙터, 콤바인, 경운기, 그리고 친구이자 자식... 하여간 전부였다. 나뭇가지처럼 앙상한 다리 걷기도 힘든 노인이 소꼴을 베는 데는 도대체 어디서 그런 기운이 나오는지... 제발 농약을 치자는 마누라에게 “농약 친 풀을 먹은 소는 죽어”라며 고집스럽게 손사례를 치면서 거절한다. 그 소 한 마리로 자녀 9명을 뒷바라지 한 보은(報恩)인 셈이다.
우시장(牛市場)에 가서 엉터리 값을 불러 놓고 그 값이 마음에 안 든다고 다시 소를 타고 집에 오는 할아버지, 결국 소는 흰 눈이 날리는 날 세상을 하직한다. 노인도 제 몸 챙기기 힘들지만 소의 장례를 직접 치른다. 한 뼘, 두 뼘 무덤에 쌓여 가는 눈을 보며 망연자실 멍하니 쳐다 보는 할아버지였다.
하염없이 담배 연기를 날리는 모습이 얼마나 마음 쓰리던지... 손톱 밑에 박혀버린 새까만 흙, 그리고 깊게 패인 주름... 밤새 끙끙 신음소리를 내다가도 댕그랑댕그랑 워낭소리에 불끈 뜨는 눈! 이승에서 인연(因緣)의 끈은 참 질기기도 하다.
사람 사는 것이 무엇일까? 한여름 구름처럼 이리저리 흘러가다 다른 계절을 맞고 또 그 계절을 보내고 참으로 무상할 것 같지만 평생 한나절을 함께 한 자식이자 친구인 소 한마리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것도 윤회(輪廻)의 업보(業報)! 소가 힘들어 겨우 한발자욱 한발자욱을 뗄 때마다 저 소가 세상을 뜨면 허망한 마음에 앞으로 두 분 노인네는 어떻게 살아갈지 조바심으로 다가왔다.
영화는 끝났으나 대부분 자리를 뜰 줄 몰랐다. 어떤 이는 코를 훌쩍이며 소리 낮게 울고 있고, 어떤 이는 이미 껌껌해진 화면을 넋 놓고 바라보고 있었다.
이 영화의 감독 이충렬 씨는 백상예술대상을 받을 때 “세상에 제일가는 효자, 효녀들이 혹시 이 영화 때문에 손가락질 받는 게 가장 두렵다”고 했다. 하기야 서울 구경 한번 못했을 것 같은 두 노인네를 새장 같은 아파트에 가둬 놓으면 그것보다 더한 불효가 어디 있으랴.
집에 오면서 갑자기 아내가 올드 파트너(Old Partner)라고 하면서 다정스럽게 손을 잡기에 앞으로 늙어가면서도 친구처럼 살자고 하는 뜻으로 생각했더니 이 영화의 영어제목이라고 하더라. 근사했다.
폭우가 쏟아지는 저녁나절 아니면 봄꽃이 흐드러진 대낮에 감정이 하늘과 땅 사이를 왔다 갔다 할 때 쓰디쓴 보약처럼 홀짝거리며 맛보아야 할 영화! 워낭소리는 결코 재미로 보는 게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