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강대 장영희 교수와의 이별은 그분을 직접 알지 못하는 내게도 커다란 슬픔이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그녀를 열심히 응원하던 많은 사람들은 지난 일요일 억장이 무너지는 절망감을 느꼈을 것이다.
장영희 교수는 1급 장애의 어려움을 극복하며 항상 희망과 나눔을 실천하는 삶을 살았다.
그러기에 그녀의 죽음은 우리에게 더욱 커다란 슬픔과 비탄을 가져왔다.
기적을 바랐던 많은 사람들은 그녀만큼은 그래도 고통스런 암과의 투병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곁을 지켜주기를 바랬는지도 모르겠다. 마치 목발을 짚은 수호신처럼.
하지만 곰곰 생각해보면 지금 우리가 느끼고 있는 비탄과 절망 바로 이것이야말로 사실상 장교수가 오랫동안 온힘을 다해 사투를 벌였던 바로 그 적군이며 장교수는 아마도 우리 중 그 누구도 그녀의 상실로 인해 비탄의 절망으로 빠지기를 원치 않을 것이다.
오히려 그녀는 숨을 거두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운명과 싸운 그녀의 불굴의 의지를 강변하기를 원했는지도 모르겠다.
삶에 대한 깊은 감사와 희망에 대한 믿음, 바로 이것이 그녀의 삶이 우리에게 주는 강력한 메시지인 것이다.
지난 주 오랜 시도 끝에 대학원생 하나가 취업에 성공하였다.
그는 휠체어 길도 없던 척박한 교정으로 유학을 왔던 장애인이다.
학생은 장애로 인해 오른손을 잘 쓸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불굴의 의지로 교육과정을 훌륭히 이수하고 석사논문을 마쳤다.
휠체어를 타고 이 강의실 저 강의실로 옮겨 다니면서도 그는 언제나 학생들 중 가장 밝은 얼굴이었고 여전히 생활에 감사할 줄 아는 경이로운 사람이었다.
간혹 교도소 문턱을 넘어 재소자들과 상담을 할 때에는 온전한 사람들보다 더 많이 상대를 배려하였고, 온갖 불평을 이해심 있게 들어주던 사람이었다.
여러 번의 비슷한 상담 모임들을 운영하였을 때, 우리는 언제나 그가 있을 때와 없을 때의 분위기가 얼마나 다른지를 실감하였다.
상담자였던 우리와 피상담자였던 재소자들은 물과 기름처럼 서로 어울리기가 힘들곤 했었는데 그래도 그가 있는 날에는 이 같은 이질감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힘들게 휠체어를 움직여가며 이 사람 저 사람에게 그저 눈을 마주치려는 노력만으로도 사람들은 큰 감동을 받곤 했다.
배운 자이던 못 배운 자이던 우리가 그의 눈빛에서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은 커다란 희망이었다.
그가 남을 돕는 일을 하기까지 그의 삶에 놓여있었을 하반신 마비라는 장애의 무게와 그것에 맞서 싸워 오늘날 그가 이룬 업적은 우리에게 그저 감동으로만 다가왔다.
자신의 장애와 그로 인한 고통에도 불구하고 타인을 돕겠다고 나선 그의 아름다운 마음에서 우리는 구원의 희망을 찾았던 것이다.
그는 이제 사회인으로의 새로운 시작을 목전에 두고 있다.
언제나 낮은 문턱도 혼자 넘지 못해 동료들의 도움을 받아야 했던 과거 모습 그대로가 아니라 이제는 마음의 고통으로 절망하는 많은 청소년들을 치유하고 보듬어주는 희망의 전도사로 제 역할을 다 할 것이다.
희망은 강력한 전염력이 있다.
우리는 누구나 현재의 짐과 고통을 안고 있으며 결국에는 소망하는 바를 이루려는 역동적인 존재이다.
바로 이 지점이 장영희 교수가 우리에게 전하고자 했던 삶에 대한 비전이 시작되는 곳이다.
절망의 어두움에서 뚜벅뚜벅 걸어 나가 희망의 밝은 빛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용기. 바로 그것을 우리는 장교수로부터 그리고 장애를 극복한 그 대학원생으로부터 전해 받는다.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절대 굴하지 않는 의연함, 고통을 수용하고 심지에 고통을 극복해가는 과정을 즐길 수 있는 여유로움,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보다 타인에게 자신을 온전히 내어줄 수 있는 헌신, 바로 이 같은 가치들을 그들로부터 배운다.
사지 멀쩡한 우리보다도 더 존귀한 존재인 그들에게 진심으로 머리 숙여 감사를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