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수원시가 시로 승격된지 60주년이 된다. 광복 이듬해(1949년) 8월 14일 수원읍을 수원부(水原府)로 승격시켰다가 다음날(8월 15일) 수원시로 재승격시켜 오늘에 이르렀다.
부(府)는 일제 때 행정구역 명칭으로 광복 전 경기도에는 경성부, 개성부, 인천부가 있었다. 수원의 경우 부로 승격시켰다가 하루만에 시로 바꾸는 편법을 섰는데 이런 예는 수원시가 오직 유일하다.
수원시는 시 승격 60돌을 맞아 다양한 기념행사를 준비 중인데 그 중 하나가 ‘수원시사(水原市史)’ 편찬이다. 지난 5월 8일 수원문화원 회의실에서 편찬위원(13명) 위촉에 이어 제1차 회의와 현판식을 마침으로써 5개년 계획의 편찬 작업이 시작됐다.
지금부터 꼭 100년 전, 그러니까 한일합방 직전해인 1909년 수원면에서는 어떤 일들이 있었을까.
수원상업회의소 부설 수원상업강습소 설치(2.2), 수원-온천리 간 1구간 시외전화 증설(2.10), 수원군측량학교 졸업식(3.12), 농림학교(서울대 농대 전신) 수의과 속성과 폐과(4.10), 수원 사립삼일여학교 인가(4.28), 수원우체국 수입인지 판매(5.8), 수원팔달학교 설립(6.1), 농림학교 2년제를 3년제로 개편(6.1), 목기계염직공장 설립(7.1), 수원역전우편소 장거리 전화 취급(9.1), 경성지방법원 수원지원 개설(12.1) 등 여러 가지 일이 있었다.
사립 삼일여학교는 1908년 폐교 위기에 처하였는데 수원 유지 이하영, 차유순, 나흥석 등이 스크랜톤 여서와 연서하여 학부로부터 인가를 받았다. 오늘날의 매향여고로 개교 100주년이 된다.
수원상업회의소 부설 수원상업강습소(화성학원)는 1908년 4월 15일 홍건섭, 김흥선, 양성관 등이 남수동에서 설립한 수원상업회의소가 개설한 강습소로 오늘날의 수원중·고등학교 전신이다. 역시 개교 100주년을 맞이하였다.
수원군측량학교는 교사(校舍)가 없어서 남창리 차재윤의 행랑을 빌려 수업을 했지만 측량기술의 요람이었다. 수원의 향후 100년이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