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특유의 유전자 중 하나가 바로 연고주의, 학연주의라 할 수 있다. 대한민국 건국 이래 지금까지 학연과 지연을 빼놓고는 정치권이나 공직사회를 구성하기 어려울 정도로 극성을 부리고 있는 것이다.
연고주의에 대한 세상의 인식은 부정적인 것 같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그 대열에 끼어들지 못해 안달을 하고 있다. 누구나 공적인 자리에서는 연고주의를 비판하지만 사적인 자리에서는 학연이나 지연을 통해 정을 느끼고 그들만의 자리를 즐기고 있는 것이다. 밀고 당기며 끌어주고 키워주는 선후배간의 자리는 여타의 경쟁대상자들이 끼어들 틈을 주지 않는다. 어려울 때 제일 먼저 도와주는 것이 바로 동문·동향인들이라고 생각한다. 한국 특유의 연고주의를 일방적으로 비판할 수만은 없는 사유가 된다.
경기도내 시·군 4급 이상 공무원 281명 가운데 절반 수준이 동향이요, 지역 고등학교 졸업자인 것으로 나타났다. 수원시의 경우 시장을 비롯한 간부공무원들이 대부분 특정 고등학교 출신으로 구성돼 있다는 것은 온 세상이 다 아는 사실이다. 심지어 공직으로 출세하려면 이 특정 고등학교를 나와야만 한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온 지도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
새삼스런 얘기가 되겠지만 연고주의의 속성은 공적영역과 사적영역의 현격한 괴리를 낳게 된다. 따라서 연고주의가 발달할수록 그 괴리가 크다고 볼 수 있다. 아무리 연고의식이 강한 사람이라도 공적영역에서는 연고를 드러내지 않는 게 상식으로 통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중구조는 그 지역사회의 발전을 저해하는 큰 요인이 될 수도 있다. 공적영역이 사적영역과 균형을 이루는 게 아니라 사적영역에 종속되는 정도가 강해지면 사적영역의 발전이 공적영역의 발전으로 둔갑해버리는 시대가 반드시 오게 된다. 따라서 특정학교를 비롯한 특정연고에 속한 사람들은 번영을 누려도 그 외에 다른 지역은 오히려 쇠퇴하는 일이 벌어지게 되는 것이다.
단체장 선거 때마다 벌어지는 웃지 못할 현상이 마치 특정학교 총동문회장을 뽑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킬 때가 있다. 누구는 몇 회, 누구는 무슨 과로 나뉘어 서로 선거의 공로를 주장한다. 연고주의를 탓하자는 게 아니다. 연고주의를 전면 부정한다는 것은 매우 비현실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도 일종의 타협책은 필요하다. 공공적 연고주의는 연고주의에 어느 정도의 공적성격을 가미하는가를 의미한다. 학연과 지연에 대한 새로운 시각전환이 필요하다.